한미일 연합이 도시바 반도체 인수전에서 우위를 차지했다. 사진은 쓰나카와 사토시 도시바 사장.

[시사위크=장민제 기자] 혼돈 속을 거닐던 도시바 반도체 인수전이 ‘한미일 연합’의 승리로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다만 앞서 지정된 우선협상대상자도 협의단계에서 번복됐던 만큼, 이번에도 속단하긴 이르다는 지적이다.

21일 니혼게이자이 등 일본매체에 따르면 도시바는 지난 20일 이사회를 열고 한미일 연합에 반도체 사업을 매각키로 결정했다. 한미일 연합은 우리나라의 SK하이닉스와 미국 사모펀드 베인캐피탈, 애플, 일본 산업혁신기구(INCJ)와 정책투자은행 등이 참여한 컨소시엄이다.

도시바와 이들은 세부적인 조건 등을 협의한 뒤 최종계약을 맺을 예정이다. 인수액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업계에선 총 2조4,000억엔(약 24조원) 규모로 추산 중이다.

◇ 혼돈의 연속 ‘도시바 반도체 인수전’… 애플 참전에 갈렸다

올해 2월부터 시작된 도시바 반도체 인수전은 혼돈의 연속이었다. 지난 6월 일본현지에선 미국 브로드컴과 투자펀드업체 실버레이크가 유력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지목됐다. 도시바가 제안한 매각금액 2조엔 보다 높은 2조2,000억엔을 제시했고, 지속적인 투자까지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경제산업성이 INCJ와 일본 정책투자은행을 이끌고 베인캐피탈과 SK하이닉스의 진영에 합류하면서 상황은 변했다. 기술유출에 대한 우려가 적고 일본 정부가 반도체 사업에 대한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단순투자자로 알려진 SK하이닉스가 추후 지분으로 바꿀 수 있는 ‘전환사채권’을 요구하면서 협상은 지연됐고, 도시바와 협력관계였던 WD(웨스턴디지털)이 매각반대 소송을 제기하면서 인수전은 미궁으로 빠졌다. 이에 도시바는 반도체 매각을 원점으로 돌렸고, WD가 주축인 신 미일연합에 매각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분위기를 반전시킨 건 도시바 반도체 최대 고객사인 애플의 참전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애플은 당초 WD 컨소시엄 진형에 참여를 고려하고 있었지만, WD가 도시바 지분에 욕심을 내자 입장을 변경했다. 이후 애플은 베인캐피탈 주도의 한미일 연합에 합류했고, 협상과정에서 “WD가 경영권을 가져갈 경우 도시바와 거래하지 않겠다”고 압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 아직 축배 들기엔 이른 시점

다만 최종 계약까진 까진 아직 안심하기엔 이르다. 앞서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이 번복됐던 만큼, 이번에도 다양한 변수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우선 예전보다 더 많은 사업자가 컨소시엄에 참여한 만큼, 지분협상 등에 난항을 겪을 수 있다. 당초 한미일 컨소시엄은 미국의 베인캐피탈, 한국 SK하이닉스, 일본 INCJ와 정책투자은행으로 시작됐지만, 현재 미국 애플을 비롯해 델, 시게이트, 일본 호야 등 다수의 업체가 합류한 상태다.

또 도시바 협력사인 WD의 발목잡기도 큰 난관이다. WD는 이번 소식을 접한 직후 “최근 도시바가 진행 중인 반도체 메모리 공장 증설투자는 합작법인 설립계약의 위반”이라며 국제상업회의소(ICC)에 소송을 제기했다. 여기에 WD가 앞서 제소한 ‘도시바의 반도체 사업 매각 중단 소송’도 재개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SK하이닉스는 “아직 주요사항에 대한 협의가 남았다”며 “딜 프로세스에 따라 이익에 부합하도록 협상을 계속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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