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백만장자가 처음으로 20만명을 넘었다는 소식과 함께, 저소득층의 빈곤탈출 확률이 갈수록 낮아진다는 분석 결과가 동시에 전해졌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우리사회 양극화 현상, 그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씁쓸함이 커지고 있다.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한국의 백만장자수가 처음으로 지난해 총 20만명을 돌파했다.” 
                 “빈곤을 벗어날 수 있는 확률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대비되는 내용의 두 가지 뉴스가 동시에 전해져 눈길을 끌고 있다. 한 가지는 한국 백만장자가 처음으로 20만명을 넘었다는 소식이고, 또 다른 한가지는 저소득층의 빈곤탈출 확률이 갈수록 낮아진다는 분석 결과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우리사회 양극화 현상, 그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씁쓸함이 커지고 있다.

◇ 백만장자 늘어나고, 가난은 대물림되고…

8일 글로벌컨설팅업체 캡제미니가 발표한 ‘2017 세계 부(富) 보고서(WWR)’에 따르면 한국에서 작년 투자 가능 자산을 100만 달러(약 11억5,000만원) 이상 보유한 백만장자(HNWI) 수는 20만8,000명으로 집계됐다. 전년보다 1만5,000명(7.8%) 늘어난 것으로, 처음으로 20만명을 넘어섰다.

한국은 인도(21만9,000명)에 이어 백만장자 수 13위를 기록했다. 작년 전 세계 백만장자의 자산이 늘어난 것은 자산관리자에게 맡긴 자산의 투자 수익률이 24.3%에 달한 것으로 추정되는 등 금융자산이 많이 증가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이에 앞서 7일에는 ‘대물림 되는 가난’에 대한 연구보고서가 발표돼 눈길을 끌었다.

윤성주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이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소득계층별 가구의 계층 이동률을 분석한 결과, 매년 소득분위의 이동이 없을 확률은 40.4%를 기록했다. 또 소득분위가 올라갈 확률은 30.1%, 내려갈 확률은 29.5%로 약 70%의 가구는 소득분위가 제자리걸음 하거나 떨어질 것으로 예측됐다.

경제적 취약계층이 빈곤을 벗어날 수 있는 확률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것으로, 보고서는 “빈곤 지속성은 일자리가 중요한 결정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이를 위한 연령·가구주 성별 등에 근거한 정부의 차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도 덧붙였다.

이처럼 대비되는 두 가지 소식은 우리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저성장·양극화가 그것이다. 이는 한국경제의 고질적인 문제다.

우리나라는 2012년 이후 지속적으로 2%대 경제성장률에 머물러 있다. 2014년 3.3%로 반짝 올라갔지만 곧 2%대로 떨어졌다. 2%로 떨어진 경제성장률이 개선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한국은행은 7월 13일 발표한 ‘경제전망보고서’에서 2016~2020년 잠재성장률을 연평균 2.8~2.9%로 추정해 공식적으로 3%대가 무너졌음을 알렸다.

저성장이 지속되는 기간 동안 국민소득도 정체됐다.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만7,561달러로 전년보다 1.4% 증가하는데 그쳤다. 벌써 11년째 2만달러대에 머물러 있다.

우리나라는 2012년 이후 지속적으로 2%대 경제성장률에 머물러 있다. 2014년 3.3%로 반짝 올라갔지만 곧 2%대로 떨어졌다. 한국은행은 7월 13일 발표한 ‘경제전망보고서’에서 2016~2020년 잠재성장률을 연평균 2.8~2.9%로 추정해 공식적으로 3%대가 무너졌음을 알렸다. <자료=한국은행, 그래프=시사위크>

◇ ‘지니계수’와 ‘상대적빈곤율’ 악화가 던지는 메시지

양극화도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5월 통계청이 내놓은 ‘2016년 소득분배지표’에 따르면 소득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처분가능소득 기준 0.304로, 지난해보다 0.009 증가했다. 지니계수는 0이면 완전 평등을, 1이면 완전 불평등을 나타낸다. 또 다른 소득분배지표인 ‘상대적 빈곤율’도 악화했다. 중위소득 50% 이하인 계층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인 ‘상대적 빈곤율’은 지난해 14.7%로 2015년(13.8%)보다 0.9%포인트 증가했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1년 동안 소득이 많은 사람보다 적은 사람이 더 많이 늘었다는 뜻이다.

물론 2016년의 경우, 사드문제로 인한 중국 관광객 급감을 비롯해 조선업계 대규모 구조조정, 대통령 탄핵 등 특수한 상황에 따른 영향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국민들이 체감하는 사회적 양극화는 비단 수치와 상관없이 심각한 상황이다. 우리 경제가 많은 문제와 도전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 만큼은 변함없다는 얘기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 7월 일반국민 1,000명과 경제 전문가 33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 10명 중 4명 이상은 한국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소득 양극화’를 꼽았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문재인 정부는 저소득층의 소득감소를 한국사회의 양극화와 갈등 구조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다만 ‘고도성장 중심’의 이전 정부와 달리 분배 중심의 ‘소득주도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과거 정부가 추진해온 ‘고도성장’과 ‘수출 대기업 중심 추격형 성장’이 양극화를 키웠다고 판단한데 따른 것이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가 ‘747(연평균 7% 성장·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세계 경제 7대 강국)’, 박근혜 정부가 ‘474(연평균 4% 성장·고용률 70% 달성·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등 성장을 앞세웠음에도 오히려 양극화는 심화됐다.

최근 국회예산정책처가 17대 국회(2004~2008년)부터 20대 국회(2016년~)에서 발의된 2,416개 조세법안을 분석한 결과, 조세법안의 흐름도 ‘성장’에서 ‘격차해소’로 옮겨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의 대표적 예는 최저시급 인상이다. 임금을 올리면 가계소득이 늘고, 가계소득이 늘면 소비가 늘고, 소비가 늘면 생산이 늘어나 경제성장의 선순환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선(先) 성장 후(後) 분배가 아니라, 분배와 성장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취지가 강하다.

문 정부는 이와 함께 일자리 창출에 역량을 집중해 일자리·분배·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양극화 해결을 위해 고소득·고액자산가·대기업 등에 세금을 더 물리는 ‘부자증세’ 추진하겠다고도 발표했다. 저성장과 양극화 극복을 최우선 경제 과제로 삼고, 재정을 성장과 복지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저소득층의 소득감소를 한국사회의 양극화와 갈등 구조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문 정부는 최저시급 인상을 비롯해 일자리 창출에 역량을 집중해 일자리·분배·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사진은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 설치된 대한민국 일자리 상황판을 보며 추진상황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 시간과 인내·협조 필요 

물론 일각에서는 지속가능성, 재정건전성 등에 우려를 제기하며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한계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온다. 수많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대안도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모든 정책에는 빛과 그림자가 존재한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국문학)는 앞서 경향신문 기고를 통해 이 같이 말했다.

“기억하고 싶다. 그나마 촛불의 힘으로 이렇게 어렵게 시급이 1,060원 오르고 월급이 겨우 200만원대로 진입하는 동안, 누워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수조원을 번 사람들도 있고, 한 푼도 세금을 내지 않고 큰 종교 기업을 운영하는 분들도 많고, 한 푼도 세금을 안 내고 영세 자영업자들의 고혈을 빠는 지주·부동산 임대업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천 교수는 그러면서 “최저시급 1만원’의 의미는 단지 ‘경제’가 아닐 것”이라며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기반을 둔 성장모델을 바꾸고, 노동 혐오·노동 분할의 연쇄로 된 ‘헬조선’의 정치·문화 재생산의 고리를 끊는 중요한 실천일 것이다. 분명 시간과 인내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