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문소리와 박해일이 처음으로 연기 호흡을 맞췄다.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감독 장률)를 통해서다. /트리플픽쳐스 제공
배우 문소리와 박해일이 처음으로 연기 호흡을 맞췄다.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감독 장률)를 통해서다. /트리플픽쳐스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문소리와 박해일이 처음으로 연기 호흡을 맞췄다.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감독 장률)를 통해서다. 사랑을 시작하지 않는 남자와 사랑을 시작해야 하는 여자로 만난 두 사람이 그려낸 로맨스는 어떤 모습일까.

전직 시인 윤영(박해일 분)은 한때 좋아했던 선배의 아내 송현(문소리 분)이 ‘돌싱’이 돼 기쁘다. 술김에 둘은 군산으로 떠나고 일본풍 민박집에 묵는다. 송현이 과묵한 민박집 사장 남자에게 관심을 보이자, 윤영은 자신을 맴도는 민박집 딸이 궁금해진다. 군산에서의 둘의 마음과 시간은 서울과 달리 자꾸 어긋나기만 한다. 시작하지 않는 남자와 시작해야 하는 여자, 애매모호한 두 남녀의 ‘군산이몽’이 시작된다.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는 오랜 지인이던 남녀가 갑자기 함께 떠난 군산 여행에서 맞닥뜨리는 인물과 소소한 사건들을 통해 남녀 감정의 미묘한 드라마를 세밀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춘몽’으로 2년 만에 돌아온 장률 감독의 신작이자 배우 문소리, 박해일이 처음으로 호흡을 맞춰 관심을 모은다. 또 올해 개최된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선정돼 이목을 끌기도 했다.

장률 감독은 특정 지역의 공간과 시간 속에서 발견한 흔적과 정서를 스크린에 담아내는데 탁월한 감독으로 정평이 나 있다. ‘당시’(2004) 베이징, ‘경계’(2007) 몽골, ‘경주’(2013) 경주와 ‘춘몽’ 수색을 배경으로 했던 그는 이번 영화에서는 전라북도 군산의 정취를 스크린에 고스란히 옮겨놨다. 일본식 옛 가옥들과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길 마을 등 1930년대의 역사가 멈춰 버린 듯한 군산의 이국적 정취를 부드러우면서도 경쾌하게 담아내 눈길을 끈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는 일반적인 영화 스토리가 지닌 기승전결의 흐름 대신, 승과 전을 보여주고 기를 경유해 다시 중간에서 끝나는 구성을 택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주인공 윤영과 송현이 군산에 막 도착한 것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두 남녀가 전날의 음주로 인해 즉흥적으로 군산을 찾았다는 단서만 줄 뿐, 이들이 어떤 관계인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아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군산의 정취에 빠져들 때쯤 두 남녀는 어느새 서울로 돌아오고, 군산과는 미묘하게 다른 서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시작점에서 타이틀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가 뜨는데 이는 극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후 영화는 군산 전의 시간으로 돌아가 지금까지 지나온 이야기들의 여백을 채우며 흘러간다. 이를 통해 관객은 윤영과 송현이 왜 군산에서 다른 꿈을 꾸었는지,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품었던 의문점들에 대한 답을 찾게 된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문소리(왼쪽)과 박해일 스틸컷 /트리플픽쳐스 제공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문소리(왼쪽)과 박해일 스틸컷 /트리플픽쳐스 제공

장률 감독은 ‘썸’을 타고 있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그들의 일상을 통해 조선족에 대한 한국인들의 이중적인 태도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송현은 연변 동포의 인권 향상을 위한 시위에 참가하고, 과거 만주에 갔던 할아버지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자신도 조선족이었을 거라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이 조선족으로 오해받자 불쾌감을 드러낸다. 윤영도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연변 출신 가정부 순이의 이름도 몰랐지만, 그녀가 윤동주 시인의 증조부 사촌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그녀를 달리 본다. 윤동주 시인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지 않고 연변에서 쭉 살았더라면 그도 조선족이었을 거라는 시선도 새롭다.

문소리는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부터 세밀한 감정 표현까지 자유자재로 오가며 송현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얼굴의 박해일은 꾸미지 않은 본연의 모습처럼 편안한 연기를 펼친다. 이번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배우 문소리와 박해일은 이미 다수의 작품을 소화한 것처럼 익숙한 ‘케미’를 발산한다. 두 사람 외에도 정진영·박소담과 문숙·명계남·이미숙·윤제문·한예리·정은채 등 반가운 얼굴들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곱씹을수록 깊은 맛이 난다. 숨겨진 의미와 겹겹이 쌓인 비밀에 매료되고, 적재적소 터지는 유머는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군산의 이국적인 풍광도 큰 볼거리다. 문소리와 박해일의 만남은 옳았고, 장률 감독의 인간을 바라보는 ‘특별한 시선’은 새로우면서도 현실적이다. 오는 11월 8일 개봉, 러닝타임 1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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