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선호가 편안한 매력으로 대중들의 마음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솔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김선호가 편안한 매력으로 대중들의 마음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솔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첫눈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이가 있는 반면,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사람이 있다. 뚜렷한 개성은 없지만, 한 번 보면 궁금하고, 두 번 보면 자꾸 보고 싶은 마성의 매력. 배우 김선호가 편안한 매력으로 대중들의 마음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맞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는 법이다.

2009년 연극 ‘뉴 보잉보잉’으로 연기 생활을 시작한 김선호는 오랜 시간 연극 무대에서 내공을 쌓은 뒤 브라운관으로 활동 반경을 넓혔다. 지난해 KBS 2TV ‘김과장’에서 경리부 선상태 역을 맡은 그는 순진무구한 매력으로 안방극장에 얼굴을 알렸다. 이어 ‘최강 배달꾼’에서 철부지 재벌 3세 오진규로 분해 호연을 펼쳤고, MBC ‘투깝스’에서는 미워할 수 없는 매력남 공수창 역을 완벽히 소화하며 연말 시상식에서 신인상과 우수상을 수상,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올해도 활약은 이어졌다. MBC 단막스페셜 ‘미치겠다 너땜에!’에서 오랜 친구와 연인이 되는 김래완으로 분해 상대 배우 이유영(한은성 역)과 달달한 ‘케미’를 발산, 시청자들의 연애 세포를 자극했다. 주목받는 신인이었던 김선호는 이 작품을 통해 주연 배우로서 가능성을 입증했다는 평을 받았다.

지난 10월 30일 인기리에 종영한 케이블채널 tvN ‘백일의 낭군님’ 속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조선 최고의 ‘뇌섹남’ 정제윤으로 분한 그는 탄탄한 연기력과 사극에 최적화된 발성, 완벽한 캐릭터 소화력까지 무엇 하나 부족함 없는 활약을 펼치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드라마 자체도 큰 인기를 끌었다. 기대작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극 중반부터 매회 자체최고시청률을 경신했다. 마지막 회 시청률은 14.1%(닐슨코리아 기준)까지 치솟으며 역대 tvN 전체 드라마 시청률 4위에 해당하는 높은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브라운관 데뷔 2년 사이에 무려 다섯 작품을 소화하며 ‘열일’을 이어왔지만, ‘백일의 낭군님’을 향한 반응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김선호는 “부모님이 너무 좋아하셨다”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부모님이) 너무 좋아해 주셨어요. 사극이라서 더 좋아하신 것 같아요. 어머니는 주변에서 드라마 얘기를 많이 하고, 아들을 현감이라고 부르니까 기분이 좋으신가 봐요. 아버지도 피곤하신데 잠도 안 주무시고 기다렸다가 보신다고 하더라고요. 가족들도 너무 좋아해 주니 기분 좋고 뿌듯했어요.”

김선호가 연기한 정제윤은 그야말로 ‘짠한’ 캐릭터다. 백과사전급 지식에 식견은 삼정승을 뛰어넘는 수준이지만 서자 출신인 탓에 앞길이 꽉 막혔다. 안면 상실증까지 앓고 있다. 게다가 유일하게 알아볼 수 있고, 처음으로 마음에 품은 여인은 왕세자와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정제윤은 시종일관 밝고, 유쾌하다. 김선호는 겉으로 보이는 ‘밝은’ 정제윤과 내면에 아픔을 간직한 외로운 정제윤을 이해하기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제윤의 서사가 크게 드러나는 장면이 없었기 때문에 저라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작가님, 감독님이랑 대화를 많이 했죠. 처음 대본을 보고 ‘제윤이가 왜 이렇게 밝고, 농담을 하냐’고 (작가와 감독에게) 물어봤는데 밝은 모습 속 내면에 깔린 아픔을 표현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제윤을 제대로 알지 못했을 때는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이 있었는데, 점차 이해하게 됐어요. 제윤이라면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농담 한 번 더 하고 웃어넘길 수 있겠구나 하고요.”

김선호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 중 하나는 안면 상실증에 걸린 제윤이 유일하게 홍심(이서, 남지현 분)을 알아본다는 설정이었다. 김선호는 대본에도 없는 제윤의 서사를 직접 쌓고 만들어나가며 제윤을 더 입체적으로 완성하고자 노력했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대본이 끝까지 나와 있지는 않잖아요. ‘백일의 낭군님’은 그렇지 않았지만, 당일에 나와서 촬영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요. 만약을 대비해서 인물에 대한 기둥을 세워놓지 않으면 장면마다 캐릭터가 달라지더라고요. 그래서 제윤 캐릭터의 전사를 세워놓고 인물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안면 상실증인데 홍심이만 알아보잖아요. 그 부분이 처음에는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아마 홍심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닮은 게 아닐까 생각을 했어요. 가장 사랑했던 혹은 가장 가까웠던 사람과 닮은 사람이라면 꼭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더라도 느낌으로 기억하지 않을까 하고 했죠.”

김선호는 최근 종영한 케이블채널 tvN ‘백일의 낭군님’에서 조선 최고의 ‘뇌섹남’ 정제윤으로 분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 tvN ‘백일의 낭군님’ 캡처
김선호는 최근 종영한 케이블채널 tvN ‘백일의 낭군님’에서 조선 최고의 ‘뇌섹남’ 정제윤으로 분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 tvN ‘백일의 낭군님’ 캡처

“잠시 내 얘기부터 들어주시겠습니까. 어느 봄밤이었습니다. 그날 전 기분이 몹시 울적했습니다. 서자로 태어난 게 억울해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원망했고, 어머니를 원망했던 제 자신이 못마땅했습니다. 그때 누군가를 만났습니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은 믿지 않았는데 겪어보니 가능한 일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 여인에게 연모한다는 말을 해야겠습니다. 마음은 얻는 것이 아닙니다. 주는 것일 뿐.” (‘백일의 낭군님’ 정제윤 대사 중)

제윤은 마음에 품은 홍심을 이율(원득, 도경수 분)에게 양보한다. 사랑하는 여인을 빼앗기 위해 두 사람을 방해하기는커녕 누구보다 든든한 조력자로 활약한다. 그런 제윤이 마지막으로 홍심에게 진심을 전한다. 여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가 아닌, 온전히 주기 위함이다. 이 장면에서 김선호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은 애틋한 눈빛 연기로 마음을 흔들었다. 홍심의 마음은 사로잡지 못했지만, 시청자들은 제대로 저격한 김선호다.

“그 장면 찍을 때 감독님이 ‘울면 안 돼’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온전히 감정이 담겨 있다 보니 눈시울이 붉어진 것 같아요. 마지막이잖아요. 홍심이에게 마지막으로 전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니 숨기려고 해도 숨겨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 대사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홍심과 원득을 이어주고 제윤의 감정이 그냥 끝나는 것보다 용기 있게 말한 게 좋았어요. 이렇게 말할 수 있게 해준 작가님한테 감사했죠. 너무 멋진 말이잖아요. 현대극으로 하면 ‘내가 좋아할 테니 너는 안 좋아해도 돼, 내가 좋아서 하는 거야’라는 느낌인데, 참 좋았어요.”

실제로 만난 김선호는 제윤과 똑 닮아있었다. 밝고 유쾌한 입담으로 기분 좋은 에너지를 발산하고, 진중한 대답으로 신뢰감을 더했다. 훤칠한 외모에 편안한 매력은 덤이었다. 능글맞다가도 결코 가볍지 않은 제윤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김선호는 본인에 대해 “나는 겁쟁이에 ‘쫄보’”라는 믿기 힘든 고백을 털어놨다. (쫄보는 졸보(拙甫)를 구어적으로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제윤이 홍심을 두 번 보고 고백하는 자신감이 부럽더라고요. 용기가 진짜 대단한 거잖아요. 아무리 어머니를 닮았고, 첫눈에 반했다고 해도 ‘그게 되나?’ 싶었거든요. 저는 제윤이랑 다르고 조심성도 많아요. 저는 ‘쫄보’예요. 쿨하게 얘기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저를 조금이라도 알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실 거예요. 공연을 하고 연기를 하다 보니 사람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말하게 됐는데 그런 모습만 보면 그렇게 보일 수 있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하지만 기자의 눈에 김선호는 ‘쫄보’ 보다 ‘인싸’[인사이더(insider)의 줄임말로, 아웃사이더와는 다르게 무리에 잘 섞여 노는 사람들]에 가까웠다. 이에 대해 김선호는 “유쾌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밝혔다.

“유쾌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편이에요. 연기 얘기할 때는 이상하게 사람이 진지해져서 재미없긴 한데, 그때 빼고는 유쾌하게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저로 인해 불편한 게 싫거든요. 그런 사람 있잖아요. 누구한테 불편함을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자신도 그렇기 때문에 노력하는 거라고. 저도 제가 소심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이기 때문에 일부러 더 유쾌하게 하려고 하고,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김선호는 본인에 대해 “나는 겁쟁이에 ‘쫄보’”라는 믿기 힘든 고백을 털어놨다. /솔트엔터테인먼트 제공
김선호는 본인에 대해 “나는 겁쟁이에 ‘쫄보’”라는 믿기 힘든 고백을 털어놨다. /솔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잘생긴 외모에 훤칠한 키, 누가 봐도 훈훈한 비주얼을 소유한 그지만, 외모에도 유난히 자신이 없단다. 대신 ‘평범함’으로 편안하게 대중들의 마음에 스며드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미남 배우’ 김선호다.

“자신감 없어요. 외모에 대한 자신은 더 없어요. 오디션에 가면 대한민국에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은 여기 다 있구나 생각이 들 정도로 화려하고 예쁜 분들이 정말 많거든요. 그런데 어떤 드라마 오디션에서 감독님이 저한테 ‘되게 평범하다, 누가 널 배우인지 아냐’라고 하시더니 ‘그게 장점이다, 연기하는 게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주위에서 말하는 것 같아’라고 하셨어요. 그게 제 장점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배우가 돼야지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최근 ‘아 왜 이러지, 처음에는 별로였는데 갈수록 잘생겨 보여’라는 댓글을 봤어요. 그게 너무 웃기고 기분이 좋은 거예요. 제 연기가 비호감이거나 뭔가 걸리는 게 있으셨으면 그렇게 보지 않으셨을 텐데 그래도 편안하게 괜찮게 보고 장점으로 봐주시는 거잖아요. 그런 칭찬을 해주시니까 정말 그런 배우가 되고 싶고,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던 평범한 학생 김선호는 ‘친구 따라 강남간다’는 말처럼 우연히 찾게 된 연기 학원에서 인생 최대 전환점을 맞았다. 자신의 속 얘기도 잘 털어놓지 못하던 그는 연기를 통해 울고, 웃으면서 성장했다.

“원래 정말 내성적이고 말이 없었어요. 어머니가 치과만 가도 손을 떠시고, 말도 잘 못하시는 성격이세요. 아버지는 반대인데 제가 그 중간 어디쯤 있었던 것 같아요. 친구들 앞에서는 용감하고 장난도 잘 쳤지만, 어디 나가서 책을 읽으라고 하면 책도 못 읽고 그랬던 성격이었어요. 친구 따라 연기학원에 갔는데, 선생님이 한번 해보라고 시키시더라고요. 엉망이었죠. 자신감이 없으니까 소리가 나갈 리가 없죠. 선생님이 ‘너는 연기를 떠나서 사람 자체가 변해야 한다’고 말하셨어요. 누군가 저를 꿰뚫어보는 걸 좋아하지 않았는데 선생님의 말씀은 와닿더라고요. 따뜻했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시작하게 됐는데, 다른 친구들 연기 보면 너무 잘하니까 못하겠는 거예요. 그래서 같은 대본이면 항상 제가 먼저 하겠다고 하고 발표했던 것 같아요. 보고 나면 자신감이 없어지니까. 그게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고, 그러면서 변해갔던 것 같아요. 선생님도 나중에 제가 학교 갈 거라고 예상 못하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정도로 내성적이고 나서는 걸 못하는 성격이었는데 왜 거기에 꽂혀서 이렇게 됐는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재밌었나 봐요. 누군가에게 제 속 얘기를 잘 못하는 성격이었는데, 연기하면서 울고, 웃고 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지 않았나 싶어요.”

브라운관에서는 아직은 낯선 ‘신인’이지만, 김선호의 연기 경력은 무려 9년에 달한다. /솔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브라운관에서는 아직은 낯선 ‘신인’이지만, 김선호의 연기 경력은 무려 9년에 달한다. /솔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당시 연기 학원 선생님은 그의 마음을 흔드는 질문을 던졌다. ‘너는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고 싶니?’ 제대로 대답조차 하지 못했지만, 김선호가 김선호를 처음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10여 년이 흐른 후 김선호에게 그 질문의 답을 청했다.

“저는 되게 겁쟁이에요. 눈치도 많이 보고 ‘쫄보’ 그 자체였는데, 연기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제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았고, 많이 변하게 된 것 같아요. 평범한 학생이었는데 연기하면서 내가 조금은 특별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거든요. 지금도 저는 평범해요. 그게 무기인 것 같고, 그 편안함이 배우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이지 않나 싶어요.

어떻게 살아왔냐면, 어려운 곳에서 차근차근 올라온 것 같아요. 제가 무슨 일이든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것은 어려운 곳에서 사람 냄새나는 사람들과 함께 섞여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행복하고 부유한 가정에서 고민 없이 자랐다면, 우리의 삶과 가까운 연기는 못했을 것 같아요.

앞으로 살고 싶은 인생은 제 목표 중에 변함없는 것 하나가 다음 작품에도 함께 하고 싶은 배우가 되는 거거든요. 연기뿐 아니라 모든 것이 뒷받침돼야 하는 거잖아요. 다음 작품에서도 같이하기에 괜찮은 배우였나라고 항상 생각해요. 그렇게 살아야죠.”

브라운관에서는 아직은 낯선 ‘신인’이지만, 김선호의 연기 경력은 무려 9년에 달한다. 다수의 작품을 통해 무대에 오르며 연기 내공을 쌓았고, 연극계에서는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스타다. 하지만 김선호는 그동안 자신에게 박하기만 했다. 부족한 점만 먼저 눈에 들어왔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 ‘벽’을 깨기로 결심했다. 더 크고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다.

“‘백일의 낭군님’을 찍고 나서 자책하고 아쉬워하고 그랬는데, 드라마가 잘 됐잖아요. 나 혼자 판단하고 결정하고, 힘들어할 일이 아니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그렇게 생각했던 연기를 봐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많았잖아요. 열려있다고 생각했는데 혼자 갇혀서 힘들어했던 것 같아요. 우물 안 개구리였어요. 자기 자신에 대해 비판적이면 발전하는 것은 맞지만 자신감이 없으면 시도조차 할 수 없잖아요. 자신감을 더 가졌으면 좋겠어요. 더 열심히 하려고요.”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