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47개의 병상을 갖춘 ‘영리병원’ 허가를 두고 논란이 거세다. 관광산업과 지역사회 활기를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주장과 국내 건강보험체계를 무너뜨릴 구멍이 될 것이라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16년에 달하는 영리병원 도입 연혁부터 찬반 논란까지 이슈를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의료민영화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 의료영리화저지 및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주 도민운동본부 관계자들이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열린 제주 녹지국제병원 철회를 위한 문재인 정부 행동 촉구와 원희룡 제주도지사 퇴진 운동을 벌이고 있다. /뉴시스
의료민영화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 의료영리화저지 및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주 도민운동본부 관계자들이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열린 제주 녹지국제병원 철회를 위한 문재인 정부 행동 촉구와 원희룡 제주도지사 퇴진 운동을 벌이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김민우 기자] 제주도가 지난 5일 중국 국유 부동산개발업체인 녹지그룹이 추진한 녹지국제병원 개원을 허가하면서 영리병원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영리병원에 반대하는 측의 주장은 영리병원을 허용하면 결국 건강보험체계가 무너지고, 과잉진료·의료비 폭등·의료양극화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 핵심이다. 일단 제주도에 생긴 영리병원이 잘 되면 전국의 민간병원이 앞다퉈 영리병원을 세우고, 이는 능력있는 의사들이 영리병원으로 이탈해 대부분의 비영리 일반병원은 질 낮은 2류 병원으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1류가 된 영리병원에서 일반 국민들은 진료를 받기 위해 비싼 보험료를 내고라도 민간보험에 들 수밖에 없게 되고 의료민영화와 함께 현재의 건강보험체계가 무너진다는 시나리오다.

◇ 정부, 영리병원 확대 의지 일축

시나리오대로 건강보험체계가 무너지려면 우선 영리병원이 전국으로 확산돼야 한다. 그러나 현행 의료법은 기본적으로 영리병원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이같은 우려가 나오는 것은 제주도 외에 경제자유구역 8곳에도 외국자본 유치 활성화를 위해 예외적으로 허용하기 때문이다. 현재 인천, 부산·진해, 광양만권, 황해, 대구·경북, 새만금·군산, 충북, 동해안권의 경제자유구역이 조성·운영 중이다.

다만 제주도와 달리 나머지 육지에서 영리병원을 개설하려면 중앙정부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현 정부는 영리병원을 추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제주 녹지국제병원은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제주특별자치도 보건의료 특례 등에 관한 조례'에 따라 그 허가권이 제주도에 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제주를 제외한 경제자유구역의 영리병원 허가권자는 복지부"라며 "더 이상의 확대는 없을 것이다. 국민들이 영리병원에 대해 조금의 희망도 갖지 않도록 비영리와 공공성을 강화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현재 국내 의료진 능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고 정부가 의료공공성을 강화하는 상황에서도 한해 외국인 환자 40만명이 국내로 들어오고 있고 지금도 외국인에게 고급 의료를 제공하고 있는데 과연 영리병원이 필요한지 의문"이라며 영리병원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의료정책인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의 핵심 역시 이미 있는 비급여 항목을 급여화하는 등 의료공공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으로 의료민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복지부는 녹지국제병원의 향후 파급력에 대해서도 "내국인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병상 규모·의료인·지리적 제한 등을 감안할 때 국내 보건의료체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역시 지난 19일 여의도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문재인 정부에서 영리병원을 늘릴 생각은 전혀 없다"라며 "참여정부 때 요양기관 지정에서 예외로 하는 방침을 결정했는데 지금도 유효해 건강보험을 적용해줄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내국인 진료와 건강보험 적용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제주 녹지국제병원 이외 육지에서의 영리병원 확대는 없을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뉴시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제주 녹지국제병원 이외 육지에서의 영리병원 확대는 없을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뉴시스

◇ 영리병원 확대 사실상 불가능

정부가 영리병원을 늘리겠다는 의지도 없을뿐더러, 설령 늘리려고 해도 수많은 법개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통해 모든 의료기관이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계약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에서 병원이 문을 열면 무조건 건강보험 환자를 진료하고 건보를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법이 고쳐지지 않는 이상 의료민영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제주 녹지국제병원이 이번에 건보 당연지정제 예외 병원으로 인정받은 것은 진료 대상을 외국인으로 한정하기 때문이다. 내국인 진료는 금지하고 있으며 건강보험도 적용받지 않는다. 과거 의료계에서는 이러한 건보 당연지정제가 위헌이라며 위헌소송을 제기했지만, 헌법재판소는 이미 합헌이라고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헌재는 지난 2002년 판결문에서 '개인의 핵심적 자유영역(생명권, 신체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등)을 침해하는지, 다른 입법 중에서 강제지정제가 가장 기본권을 적게 침해하는지'에 대해 "강제지정제에 의해 의료인의 직업 활동이 포괄적으로 제한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강제지정제에 의해 제한되는 기본권은 '직업선택의 자유'가 아닌 '직업행사의 자유'다"라고 진단했다.

아울러 "직업선택의 자유 제한은 개인의 핵심적 자유영역에 대한 침해를 의미한다. 하지만 일단 선택한 직업의 행사 방법을 제한하는 경우에는 개성 신장에 대한 침해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적다. 핵심적 자유영역에 대한 침해로 볼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제주 녹지국제병원을 계기로 의료계에서는 내국인 진료 확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의료법 제15조는 '의사는 정당한 사유 없이 환자 진료 거부를 할 수 없다'고 명시하면서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지난 6일 원희룡 제주지사를 만난 자리에서 "면역항암제의 경우 만약 녹지국제병원에서도 맞을 수 있다면 국내 환자들은 상대적으로 역차별을 느끼게 될 것"이라며 "영리병원 첫 허용으로 둑이 무너질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입법부도 이같은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행보에 나서고 있다.

국회에서는 범부처 차원의 법률 점검과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확대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법과 경제특구법을 개정해 영리병원이 외국인 진료로 제한한다는 내용을 명시함으로써 내국인 진료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이에 대해 행정안전부와 국토교통부와 협의해서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김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21일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건보 당연지정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앞으로도 뒤집어질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라며 "당연지정제를 폐지하면 병원이 건강보험 환자를 진료하지 않을 가능성을 우려해 합헌 판결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시행은 인간의 존엄성 실현과 인간다운 생활의 보장을 위해 헌법상 부여된 국가의 사회보장의무의 일환인 만큼 당연지정제 폐지 가능성을 일축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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