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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뉴스
[국회 관행이 문제다①] 다선의 요직독점, ‘선’수가 깡패
2019. 07. 30 by 은진 기자 jin9eun@sisaweek.com
우리나라 국회는 상임위원장 선출을 할 때 다선·연장자 의원을 우대하는 관행을 고수하고 있다. 사진은 20대 국회 문희상 국회의장의 개회사 모습. / 뉴시스
우리나라 국회는 상임위원장 선출을 할 때 다선·연장자 의원을 우대하는 관행을 고수하고 있다. 사진은 20대 국회 문희상 국회의장의 개회사 모습. / 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17·18대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지낸 이계진 전 의원은 초선의원 시절 ‘맨 앞자리에 앉은 국회의원의 비애’라는 삽화를 그렸다. 17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국회 본회의장 좌석 배치를 상상해 그린 것이다. 맨 앞줄에 초선, 그 뒤로는 재선→3선→4선→5선 중진 의원이 차례로 앉아 있는 그림이다. 부제는 ‘의사당 본회의장의 경사도에서 느끼는 감성과 부작용 상상도’다.

이 전 의원은 삽화에서 맨 앞줄에 앉아야 하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포말 피해감(침 튀김)’ ‘무한주시 긴장감’ ‘후면상황 궁금증’ ‘단독잔류 불안감’ ‘후면기습 망상증’ ‘화재탈출 막막감’ 등으로 서술했다. 또 뒷자리로 갈수록 성취감과 여유, 편의, 우월감, 안정감 등을 느낄 것으로 예상했다. 사실상 ‘선수’에 따라 본회의장 좌석이 지정돼있는 국회 관행을 비꼰 해학적 그림인 셈이다.

이 전 의원이 삽화를 그린 지 14년이 지났고 국회는 21대 총선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초선의원들의 ‘비애’는 여전하다. 본회의장 좌석은 물론이고 국회의장, 각 상임위원장 등 국회직과 원내대표직 같은 주요 당직까지도 ‘선수’가 좌우한다. 한 초선의원은 “정치권에 입문하기 전엔 각자 전문분야에서 날고 기는 사람들이었는데, 국회의원 ‘배지’를 달자마자 정치 초년생이 된다. 예전처럼 군기 잡는 문화는 덜해졌다지만, 여전히 초선의원이면서 당의 계파 진영논리나 불합리한 당론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한계가 있다”라고 토로했다.

‘4년 짜리 비정규직’인 국회의원들은 선거가 끝나자마자 다음 선거를 준비한다. 무엇보다 재선을 꿈꾸는 초선의원들의 경우 국회직·당직을 맡아 이름과 얼굴을 알리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요직’은 초선의원과는 거리가 멀다. 상임위원장 또는 원내대표는 중진, 상임위 간사나 원내수석부대표 등 실속 있는 자리는 주로 재선의 몫이다. 초선에게 주어지는 자리는 당 대변인 정도다.

◇ “상임위원장 다선 원칙, 계파보스 정치 산물”

특히 상임위원장은 예산 정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국회 파행사태까지 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역할과 권한이 상당하다. 자유한국당 박순자 의원이 같은 당 홍문표 의원과 대립하면서도 국토교통위원장직을 내려놓지 않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문제는 민주화 이후 국회는 상임위원장 선출에 대해 ‘다선원칙’이라는 불분명한 관행을 고수해왔다는 것이다. 초선 법제사법위원장이나 재선 예산결산특별위원장 같은 ‘파격 인선’은 지금까지도 없었고 21대 국회에서도 없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다보니 ‘국회의원의 전문성을 고려한 상임위 배분’은 요원한 일이 됐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게재된 한국의회발전연구회의 ‘국회 상임위원장 선출에서 다선원칙의 현실적 의미 분석’ 연구논문은 “한국 국회의 상임위원장 선출은 (중략) 소수의 원내 지도부와 다선의원 중심으로 한 특정 의원들만이 국회 권력자원을 배분받는다”며 “다수의 초·재선의원들은 자신이 소속된 위원회의 상임위원장을 선택할 권리도 없을뿐더러 왜 선출되었는지에 대한 정보도 제공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다선 원칙’은 상임위의 전문성 자체를 살리기 어렵게 만든다. 이 논문은 “한국 국회는 재임 경력을 기준으로 한 연공이 아니라 당선 횟수에 따른 선수와 연장자를 기준으로 한 순번제에 따른 정치자원 배분 시스템에 불과하다”며 “상임위원회제도가 전문성 강화를 목적으로 도입된 제도라면 그 취지를 살려 원구성 단계부터 위원장 선출이나 위원 배정에 전문성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선 원칙이 현재까지 관행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과거 ‘계파보스 정치’와 관련이 있다는 설명이다. 논문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뿐만 아니라 민주화 이후에도 국회는 정부여당과 야당의 대결구도를 형성하면서 물리적 충돌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며 “야당은 지도부를 중심으로 다선과 초·재선으로 이어지는 조직적 위계질서의 전통을 이어왔다. 한편 야당에 맞서 정부의 요구를 가감 없이 관철시켜야 하는 여당 또한 위계적 조직으로 동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여야 간 대립과 협상에 따른 국회 권력자원의 배분 또한 위계적 질서 하에 배분되는 내부 관행이 성립됨으로써 상임위원장에 다선 연장자 우선 원칙이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시사위크>가 만난 초선의원들은 대부분 다선 원칙을 관행으로서 ‘존중한다’면서도 “국회 의사일정 합의를 지도부에서 한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국회는 상시적으로 열려야 하고 의원의 활동은 보다 폭넓고 자율적으로 보장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쓴소리를 냈다. 또 다른 초선의원은 “당 지도부에 큰마음을 먹고 쓴소리를 했는데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화로 돌아올 때가 많다”고 위계적 정당 문화를 비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