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덕후’가 될 수 있다. 마니아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지는 대상이 꼭 아이돌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아이돌 덕후는 아무나 할 수가 없다. 인기 많은 아이돌일수록 더 그렇다. 아이돌 문화산업에서 인기는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기 때문이다. 팬의 입장에선 음반·음원은 물론이고 사야할 것, 사고 싶은 게 많아진다는 얘기다. 아이돌의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는 일명 ‘홈마(홈마스터)’들이 내놓는 상품도 소장 목록에 포함된다. 이를 두고 혹자는 부가가치라 말하고, 또 다른 혹자는 상술이라고 말한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 편집자주

국내 가요 시상식이 과거와 달리 변질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충성도 높은 팬덤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 뉴시스
국내 가요 시상식이 과거와 달리 변질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충성도 높은 팬덤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 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덕질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도리어 나이가 많을수록 팬덤 사이에서 박수를 받는다.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 하지만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팬덤은 동지애가 강하다. 팬카페와 개인의 SNS 등을 통해 일상생활에서 덕질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위로를 받기도 한다. 뿐만 아니다. 서로 독려하면서 팬덤을 키워나간다. 목표는 하나다. 가요 시상식에서 응원하는 아이돌의 수상 소식이다.

아이돌에게 음악방송에서 1위를 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시상식의 본상과 인기상이다. 영예의 대상을 받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간 발표된 앨범의 성적이 반영되는 것은 물론 시상을 위한 팬 투표 결과가 더해진다. 팬덤 간의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문제는 돈이다. 국내에서 진행되는 시상식 대부분이 유료 회원을 대상으로 투표권을 주는데다 일정 부분은 결제를 통해 추가 투표권을 얻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팬들에게 투표권 장사하는 시상식

결국 시작부터 공정하지 못한 시상이다. 특히 추가 투표가 허용되는 시상 부문의 경우 팬덤이 클수록 유리하다. 다시 말해, 팬덤이 큰 아이돌이 트로피를 쥐게 되는 것이다. 이를 주최사 측에서 상업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팬들이 모르는 게 아니다. 알면서도 속아 넘어가는 것, 그것이 팬덤의 자존심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처음으로 열린 KPMA(대한민국 대중음악 시상식)는 두 거대 팬덤의 자존심에 상처를 냈다. 

당시 KPMA 측은 인기상 부문을 100% 온라인 투표로 선정한다는 방침을 세운 뒤 아이디(ID)당 최장 20장까지 투표권 구매가 가능하도록 했다. 주최 측에서 20장의 투표권을 4,000원에 판매한 것. 접전을 펼친 끝에 아이돌 그룹 워너원이 151만 7,900표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엑소가 149만6,101표로 2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주최 측은 1위와 2위를 공동 수상자로 발표했다. 이에 워너원 팬덤에선 주최 측에 환불을 요구했다.

워너원과 엑소 간 표차는 2만1,799표다. 이를 유료 결제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436만원이다. 논란이 일자 조직위원회에선 “모두의 축제로 만들자는 의미에서 차점자인 엑소에게도 수상을 결정하게 됐다”면서 “충분히 공지하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조직위원회의 불찰임을 인정한다”고 사과했다. 그럼에도 비판은 계속됐다. 정말로 ‘모두의 축제’를 만들려고 했다면 두 팬덤이 과열 경쟁을 보였을 때 공동수상 방침을 알렸어야 했다는 지적에서다. 

사답법인 한국음악콘텐츠협회도 팬덤 간의 경쟁을 부추기는 유료 결제 방식이 연예사업의 비즈니스 모델로 제시되고 있는 최근의 행태에 우려를 표시했다. 언론사들까지 매출의 창구로 시상식을 만들면서 본래의 시상식 취지가 퇴색해졌다는데 고민이 커졌다. 최광호 사무국장은 “지금 시상식은 매출을 중시한다. 매출을 이끌 수 있는 가장 큰 팬덤을 가진 아이돌을 먼저 섭외하고 이들에게 맞는 상을 만들어 준다”면서 “이런 식의 악순환이 계속될수록 팬들에겐 피로감이 쌓이고 시상식의 권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한국음악콘텐츠협회은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2011년부터 주최해온 가온차트 뮤직 어워즈에서 인기상을 폐지했다. 주최하는 입장에서 매출을 끌어올릴 수 있는 인기상을 폐지한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으나, 시상식의 본질을 되찾는데 의미를 뒀다. 최광호 사무국장은 “아이돌 음악이 케이팝(K-POP)을 이끌고 있는 굉장히 큰 축인 것은 맞지만 아이돌 음악이 전부가 아니”라면서 “BTS(방탄소년단)가 케이팝의 뿌리를 보여주고 있는 것만큼 컨츄리, 클래식 등 소외된 음악도 존중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예매에 실패한 팬들은 티켓 중개 사이트를 통해 원하는 티켓을 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웃돈 거래가 심각한 상황이다. 티켓베이는 정가 거래를 유도할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 티켓베이
예매에 실패한 팬들은 티켓 중개 사이트를 통해 원하는 티켓을 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웃돈 거래가 심각한 상황이다. 티켓베이는 정가 거래를 유도할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 티켓베이

◇ 살 수도, 안 살 수도 없는 ‘플미표’

이와 함께 케이팝의 미래를 위해선 암표 거래에 대한 제재 방안이 필요하다. 국내 아이돌판에선 프리미엄(웃돈)을 얹어 고가로 재판매하는 이른바 ‘플미표’의 거래가 횡행하고 있다. 사실상 불법이다. 때문에 보통 음지에서 개인 간의 거래로 이뤄지고 있으나, 구매자가 판매자의 정보를 알기 어렵고 티켓의 소장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다. 그래서 ‘사기를 당했다’는 내용의 SNS 게시글이 올라오기도 한다. 

실제 피해사례는 더 많다. 사기피해 정보공유 사이트 ‘더 치트’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8년까지 티켓 거래 관련 사기피해 신고가 ▲1,454건 ▲1,767건 ▲2,998건 ▲4,663건 ▲3,644건 ▲3,780건 ▲5,004건 ▲7,719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그만큼 2차 티켓 구매에 대한 이용자의 니즈 역시 증가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래서 고안된 플랫폼이 바로 티켓베이와 같은 티켓 중개 사이트다.

티켓베이는 안전한 거래를 위해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 인증된 회원만 이용이 가능하도록 한다거나 구매자가 티켓을 받기 전까지 결제 대금을 보관하는 식의 절차를 마련했다. 2015년 6월 런칭한 이후 지금껏 단 1건의 사기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은 자부할 만하다. 하지만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고가 거래에 대해선 방관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정가보다 수십 배 비싼 가격의 티켓이 사이트에 등록된 경우를 봐왔기 때문이다.

티켓베이를 운영하고 있는 (주)팀플러스 측의 답변은 사뭇 다르다. “공연 당시 주목을 끌었던 고가 등록 상품은 대부분 거래가 성사되지 않으며, 등록된 티켓 가격대와 거래가 이뤄지는 가격대는 큰 차이를 나타냈다”는 것. 2018년 티켓베이 빅데이터 기준으로 전체 거래 중 100만원 이상의 고가 거래 비중은 0.6%, 정가 수준 또는 정가 이하 거래 비중은 48.0%, 10만원 이상 30만원 미만 거래 비중은 39.6%로 조사됐다.

물론 팀플러스 측에서도 “부정적 방법으로 이익을 편취하는 부분에 대한 규제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난 4월부터 낮은 가격으로 거래 시 수수료 무료 혜택을 제공하는 ‘정가 이하 티켓 거래 서비스’를 실시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팀플러스 측은 “추가적으로 가능한 보완책을 논의할 계획”이라면서 “2차 티켓 거래를 양성화한다면 오히려 판매자들이 가격 경쟁을 통해 프리미엄이 낮아질 수 있고, 정당한 세금을 부과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관건은 2차 티켓 거래의 수용 여부다. 소속사 측에선 플미표 근절을 위해 티켓 양도를 금지하고 있는 추세다. 소지한 티켓과 신분증, 예매내역서를 비교해 본인 인증이 확인돼야만 공연장 입장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가족관계증명서를 지참하는 조건으로 직계가족의 입장이 허가되기도 했다. 하지만 BTS는 지난 6월 부산에서 열린 팬미팅에 직계가족이 예매를 했더라도 입장 불가 방침을 내세웠다. 예매자와 관람자가 동일인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엄격하게 지킨 것. 티켓을 되파는 입장과 간격이 크다. 근본적 대책 없인 팬들 주머니만 동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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