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통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 배우 이주영. /싸이더스
작품을 통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 배우 이주영. /싸이더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시의성을 담고 있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 평가받듯, 좋은 배우는 지금 사회가 낼 수 있는 목소리를 작품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데뷔 9년 차 배우 이주영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독립영화든 상업영화든, 주류든 비주류든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면 무대가 어디든 주저하지 않고 뛰어든다. 가출 청소년부터 성소수자까지 여러 약자들의 삶을 대변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배우 이주영이 목소리를 내는 방법이다.

이주영은 영화 ‘조우’(2012)로 데뷔한 뒤 ‘여행의 묘미’(2013), ‘전학생’(2015), ‘춘몽’(2016), ‘채씨 영화방’(2016), ‘꿈의 제인’(2017), ‘어떤 알고리즘’(2017), ‘누에치던 방’(2018) 등 다수의 독립영화에 출연하며 연기 내공을 쌓았다. 드라마 ‘역도요정 김복주’(2016),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2018), ‘오늘의 탐정’(2018) 등 브라운관에서도 활약했다.

최근 행보도 눈길을 끈다. 이주영은 지난해 영화 ‘메기’를 통해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하며 진가를 입증했고, 지난 3월 인기리에 종영한 JTBC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는 트랜스젠더 마현이로 분해 진정성 있는 연기와 독보적인 분위기로 안방극장까지 접수했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종횡무진 활약 중인 이주영은 탄탄한 연기력과 성별을 뛰어넘는 캐릭터 소화력뿐 아니라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대변하는 작품을 주로 택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독립영화 아이돌’이라고 불릴 정도로 두터운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이유도 그의 소신 있는 행보 때문이기도 하다.

천재 야구소녀로 분한 이주영. /싸이더스
천재 야구소녀로 분한 이주영. /싸이더스

오는 18일 개봉하는 영화 ‘야구소녀’(감독 최윤태)도 이주영의 단단한 소신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야구소녀’는 천재 야구소녀라는 별명을 지닌 주수인(이주영 분)이 졸업을 앞두고 프로를 향한 도전과 현실의 벽을 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담은 여성 성장 드라마다.

지난해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돼 첫 선을 보인데 이어 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에 초청, 호평을 이끌어낸 작품이다. 이주영은 독립스타상을 수상했다.

이주영이 연기한 수인은 ‘천재 야구소녀’라고 불리는 동시에, ‘여자가 야구를 해?’라는 시선을 오롯이 감내해야 하는 인물로, 재능과 실력의 부족에 앞서 세상의 편견과 보이지 않는 유리천정과 맞선다. ‘야구소녀’는 이런 수인을 통해 여전히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과 사회적 편견을 현실적으로 그려내 호평을 얻고 있다.

개봉에 앞서 <시사위크>와 만난 이주영은 수인을 ‘히어로’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굽히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는 모습이 나보다 낫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기자의 눈에 이주영은 단단하고, 뚝심 있는 수인과 똑닮아 있었다.

이주영이 ‘야구소녀’로 관객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다. /싸이더스
이주영이 ‘야구소녀’로 관객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다. /싸이더스

-‘야구소녀’를 택한 이유는.
“영화 시작할 때 ‘1999년 이후로 여성이 프로야구에 진출할 수 없다는 법이 사라졌다. 하지만 아직 여성 프로야구 선수는 탄생하지 않았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시나리오에도 똑같이 쓰여있었다. 그 문장 자체가 충격으로 다가왔다. 차별이라기보다 어쩔 수 없이 스포츠에서 여성, 남성이 구분되는데, 야구는 여성이 프로에 갈 수 없다는 법이 없는 데도 아직까지 탄생한 선수가 없다는 것이 신기했다. 실제로 그 길(주수인과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선수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나와 다른 분야지만, 내가 살아오면서 느꼈던 부분들이 시나리오 안에 담겨있었고, 공감하면서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수인을 표현해내고 싶었다.”

-살아오면서 느꼈던 부분이라면.
“지금 이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고 있는 차별도 있을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꿈을 향해 달려오는 과정 안에서 느꼈던 것, 주변의 만류나 걱정들 공감할 포인트가 많았다.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10대나 20대는 수인에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고, 엄마나 아빠 캐릭터에 공감할 수 있는 연령층까지도 아우를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모든 인물들의 행동이 다 이해가 가고, 캐릭터 각각에 애정이 담긴 시나리오라서 끌렸다.” 

-수인이 꿈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조금은 무모하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수인의 상황만 떼놓고 봤을 때는 무모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포기하는 것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말을 내내 듣지 않나. 조금 타협해서 돌아가라고 하는 말도 계속 듣는다. 나도 수인에 대해 그런 (무모하다는) 인상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수인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야구를 해왔던 아이다. 야구를 사랑하는 마음 보다 현실적인 상황을 보라고 강요하는 것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연기하지 말고 다른 편한 길을 가라고 했으면 ‘왜 그래야 하지’라고 했을 것 같은데, 나조차 다른 사람처럼 수인을 보려고 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수인을 더 이해하게 됐다.”

-수인과 비슷하다고 느낀 점이 있다면.
“비슷하다고 느낀 부분도 있지만, 나보다 더 단단하고 뚝심 있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수인은 주변인들, 더 나아가서는 이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작은 히어로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계속해서 부딪히면서도 굽히지 않고 나아가는 것 자체로 수인이 나보다 낫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나라면 과연 수인이처럼 할 수 있었을까, 한 번 더 고민하고 굽히려고 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더라.

수인은 여자라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왜 140km를 던지지 못하지’에 접근하는 게 정말 대단해 보였다. 나도 외부요인이 아닌 나로 기준을 두려고 한다. 다른 사람의 평가를 받을 수 있고, 그들에 의해 규정될 수 있지만 나 스스로는 그렇지 않으려고 한다. 배우로서 작품을 택할 때도,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그러려고 한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사로잡은 배우 이주영. /싸이더스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사로잡은 배우 이주영. /싸이더스

-투구폼에 대한 부담도 컸을 것 같은데.
“신체적으로 부딪혔던 힘듦보다 부담감이 훨씬 컸다. 주어진 시간 안에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었고,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프로가 되고자 하는 아이를 표현해내기에는 무리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담감을 갖고 임했다. 처음에는 감독님이 대역도 있고 CG도 있으니까, 그럴듯하게 나올 거라고 안심을 시켜주셨다.

그런데 훈련을 하면서 어느 정도 실력이 느니까, 촬영장에 가도 대역이 없더라. 결국 온몸으로 부딪혀서 했어야 했다. 할 수 있는 시간 안에 최대를 하자는 것이 목표였다. 모든 투수가 똑같이 정석대로 던지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했을 때 화면에 가장 그럴듯하게 나올지 효율을 따지는 작업을 했다. 어떤 각도로 찍어야 폼이 예쁘게 잡히는지 얘기하고 생각하면서 만들어 나갔다.”

-수인은 진태를 만나 한 발 더 나아가게 되는데, 본인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나.
“살아가면서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잠깐 극단에 있을 때 연기를 가르쳐주신 선생님. 연기를 배운다는 것이 기술적인 것만 아니라 살아온 인생을 배우는 것이라는 걸 그 선생님을 통해 알게 됐다. 내가 잘 살아갈 수 있어야 좋은 연기가 나오고, 나 스스로 떳떳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셨다. 또 많은 영향과 영감을 받았던 친구들도 생각난다. 수인의 곁에 진태나 가족, 친구가 있어서 지금의 수인이가 있듯 나도 그렇지 않나 생각이 든다.”

-다수의 독립영화에서 활약했는데 최근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로 대중적 인지도도 높아졌다.  앞으로 작품 선택함에 있어서 영향이 있을까.
“작품 선택에 있어서 그때의 상태라든지 욕구가 반영이 안 될 수 없는 것 같은데, 상업적인 영역으로 나가야겠다는 마음도 분명히 있었다. 메인스트리트 장점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배우로서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기회이고, 인지도라는 건 더 많은 기회의 장이 열린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런 장점을 취하고 싶을 때는 상업 무대를 택하고, 진득하게 집중할 수 있다고 한다면 독립영화를 찍을 수 있고, 그때그때 선택들로 작품을 하게 될 것 같다.”

-독립영화계에선 이미 스타라고 불리고 있는데.
“독립영화를 아무리 많이 해도 찍은 영화가 무조건 영화제에 출품되고 무조건 개봉하는 현실은 아니다. 작품 운이 정말 좋아서 독립영화계에서는 내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스타는 아니고, 스타이고 싶다. 관객들의 관심도 너무 감사하다. ‘야구소녀’도 그렇고, 상업영화가 아닌 작품들은 관 확보나 관객 확보에 있어서 유리한 입장은 아닌데, 이렇게 힘들게 찍은 영화도 많은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다는 게 참 소중하다.”

-‘야구소녀’를 선택할 땐 어떤 상태였고, 어떤 욕구가 반영된 건가.
“최근 여성 서사를 다룬 작품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긴 했지만, 아직 물리적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벌새’나 ‘메기’처럼 여성이 이런 캐릭터도 할 수 있고, 이야기를 끌고 나갈 수 있는 여성 서사도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작품들이 나올 때 배우로서 반갑다. 여성 서사라는 것에 주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주영이 작품을 택하는 기준을 이야기했다. /싸이더스
이주영이 작품을 택하는 기준을 이야기했다. /싸이더스

-성소수자가 등장하는 작품이나, 트랜스젠더 역할을 소화하며 ‘젠더 프리’ 이미지가 강하게 각인됐는데.
“캐릭터만 봤을 때 비슷한 건 없었는데, 작품의 결이나 갖고 있는 메시지가 성소수자나 약자를 대변하고 있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그런 이미지가 생긴 것 같다. 작품성이나 캐릭터에 대한 애정으로 작업을 한 것이지 스스로 그런 이미지를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다. 배우 생활을 계속 해나가면서 외연을 넓혀갈 것이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들을 대변하는 이야기에 끌리는 이유가 있다면.
“요즘은 소수자나 약자, 인권, 여권일 수도 있고 이러한 권리들이 기본적으로 시나리오 안에 탑재돼있는 것 같다. 그런 시나리오가 좋은 시나리오라고 평가를 받는 것 같고, 배우뿐 아니라 제작진도 그런 부분들을 간과하지 않는 것 같다. 나도 시나리오나 대본을 보면서 더 배우는 것도 있고, 이제 깨어있어야 하는 때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그런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받은 게 있을까.
“20대 초반부터 연기를 시작했지만, 그전부터 좋은 영화들이나 미디어를 접하면서 가치관이 많이 견고해졌던 것 같다. 어렸을 때도 주로 약자나 소수자의 입장을 잘 대변하고 있는 영화들을 좋아했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들을 보면서 좋은 작품이란 저런 작품이겠거니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놓치고 있었던 부분이나 삶에 쫓겨서 잊고 살아가고 있었던 부분을 영화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최근에는 ‘미안해요 리키’(2019)를 보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노동권에 대한 생각도 다시 한 번 해보게 됐다. 시의성을 담고 있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듯, 좋은 배우도 지금 사회가 낼 수 있는 목소리를 작품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는 분들이나 대중들이 좋은 영향을 받으면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나 스스로 배울 수 있는 창구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야구소녀’를 통해서는 관객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나. 
“메시지적인 측면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많지만, 전 연령층을 아우를 수 있는 오락영화로도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재밌는 스포츠 오락영화로 소비해도 되고, 메시지적으로 접근해서 재미를 느껴도 좋다. 많은 관객을 끌어드릴 수 있는 대중성을 갖고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많은 분들에게 여러 가지 의미로, 혹은 재미로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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