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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자의 줌인
[인터뷰] 한지은, 30대에 ‘드라마 블루칩’ 된 이유
2020. 06. 29 by 이민지 기자 sisaweek@daum.net
데뷔 9년 만의 첫 주연에 이어 지상파 주연까지 성공적으로 마치며 '꽃길' 행보를 보이고 있는 배우 한지은 / HB엔터테인먼트 제공
데뷔 9년 만의 첫 주연에 이어 지상파 주연까지 성공적으로 마치며 '꽃길' 행보를 보이고 있는 배우 한지은 / HB엔터테인먼트 제공

시사위크=이민지 기자  최근 2년 동안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배우를 꼽자면 한지은을 빼놓을 수 없다. ‘멜로가 체질’을 통해 데뷔 9년 만에 첫 주연으로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은 데 이어, ‘꼰대인턴’으로 첫 지상파 주연까지 성공적으로 마친 것.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30대에 드라마 블루칩이 된 한지은, 그녀의 ‘꽃길’은 단순 운발인걸까.

한지은은 2010년 영화 ‘귀’로 데뷔한 10년 차 배우지만, 이름을 알린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수상한 그녀’(2014)를 비롯해 △‘상의원’(2014) △‘기술자들’(2014) △‘극적인 하룻밤’(2015) △‘부산행’(2016) 등 다수 작품에서 조·단역으로 활약하며 오랜 무명의 시절을 가졌다. 2016년 김수현 주연 영화 ‘리얼’ 한예원 역으로 4,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돼 화제를 모으긴 했지만, 작품이 기대 이하의 평을 얻으면서 큰 빛을 보진 못했다.

그러던 2019년 JTBC ‘멜로가 체질’로 데뷔 9년 만에 첫 주연에 도전,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 한주의 상황을 현실적이되 무겁지 않게 그려내며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톡톡히 찍었다. 짠내나면서도 코믹함과 러블리함까지 갖춘 연기는 한지은 이름 석 자를 알리기 충분했다. 

이태리 역으로 인생캐릭터를 경신한 한지은 / MBC '꼰대인턴' 방송화면
이태리 역으로 인생캐릭터를 경신한 한지은 / MBC '꼰대인턴' 방송화면

기세를 이어 2020년 한지은은 MBC ‘꼰대인턴’을 통해 첫 지상파 주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꼰대인턴’은 최악의 꼰대 부장을 부하직원으로 맞게 된 남자의 통쾌한 갑을체인지 복수극이자 시니어 인턴의 잔혹 일터 사수기를 그린 코믹 오피스물이다. 극중 한지은은 ‘준수식품’ 마케팅영업팀 인턴사원 ‘이태리’ 역을 맡아 ‘태리 태리 이태리’ 유행어를 남기는 것은 물론, ‘이라꽁’(이번엔 라면에 꽁치를 넣어봤어) 등 쉽게 잊지 못할 명장면을 남기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이뿐 만이 아니다. 가열찬(박해진 분)의 라면뮤즈를 시작으로 이만식(김응수 분)의 딸이었다는 사실까지. 이태리가 품고 있는 특급 비밀들은 ‘대반전’을 선사, 작품 중후반부 터닝포인트로 작용했다. 

존재감 굳히기에 성공한 한지은. 첫 지상파 주연작인 만큼 작품을 마치는 소감이 유독 특별할 터. 26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시사위크>가 한지은을 만나고 왔다.

'멜로가 체질'에 이어 '꼰대인턴'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낸 한지은 / HB 엔터테인먼트 제공
'멜로가 체질'에 이어 '꼰대인턴'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낸 한지은 / HB 엔터테인먼트 제공

- ‘꼰대인턴’ 종영하는 소감이 어떤가.
“지난 23일 촬영을 마치고, 오는 7월 1일 마지막 방송을 앞두고 있다. 아직 방송이 한 회분 남았다보니 완벽하게 종영이 실감나지는 않는다. 그래도 촬영이 끝났다는 게 아쉽더라. 마지막 촬영날에는 정말 끝난다는 생각에 현장을 가기가 싫었다. 다 같이 눈을 안 마주치고 알아서들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너무 배려가 많고 행복하게 촬영을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또 ‘꼰대인턴’을 시청자분들이 재밌게 봐주셨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 ‘멜로가 체질’에 이어 ‘꼰대인턴’까지 공감과 코믹을 앞세운 연기를 선보였다. ‘멜로가 체질’과는 다른 어떤 면을 더욱 보여주고 싶었나.
“‘멜로가 체질’ 속 한주와 ‘꼰대인턴’ 태리라는 친구는 코믹적인 요소가 공통적으로 많지만, 180도 다른 인물이다. 한주가 ‘외유내강형’이었다면, 태리는 ‘외강내유형’이라고 생각했다. 한주를 연기할 때는 (감정을) 안에 많이 가지고 있었다면, 태리로 분했을 땐 발설하는 것에 포커스를 맞췄던 것 같다. 날 것 같은 느낌이랄까? 꾸며지지 않은 것 같은 느낌으로 연기하는 것에 포커스를 뒀다.”

- 연달아 코미디를 선보였는데, 자신감이 있었나.
“어느 정도는? 왜냐하면 저 자체가 웃긴 사람인 것 같다. 장난기도 많고 재밌는 걸 워낙 좋아하기도 한다. 유쾌하기도 하고 웃긴 지점들이 있다는 평을 듣는 편에 속한다. 그래서 코믹적인 건 제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 황한주(‘멜로가 체질’)와 이태리(‘꼰대인턴’) 중 누구와 가장 비슷한가.
“굳이 따지자면... 태리랑 가까운 것 같다. 앞에서 씩씩해 보이고 싶어 하는 게 비슷한 것 같다. 사람들한테 연약해보이거나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성격이 있는 것 같다. 앞에서는 센 척해도 뒤에서는 여리다고 해야 하나? 진중한 이야기를 나눌 때 나의 여린 모습이 나온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인지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은 몇 안 되는 것 같다.” 

- ‘태리태리 이태리’가 유행어로 남았다. 대본에 있던 대사였나.
“‘태리태리 이태리’는 내가 애드리브로, 대본보고 연구하면서 생각해낸 거다. ‘안녕하세요 이태리입니다. 이태리타월 할 때 이태리입니다. 이태리 가본 적 없고요’라고 독특하게 자기소개를 하지 않나. 태리는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고 싶었을거라 생각했다. 그러면 강력한 한 방의 마무리가 있으면 좋겠다 싶었고, 고민 끝에 ‘태리태리 이태리’를 현장에서 애드리브로 했는데 남성우 감독님도 좋아해주셨다. 그 이후부터는 사람들이 ‘태리태리 이태리’를 고유명사처럼 불러주시더라.(웃음)”

- 지상파 첫 주연으로서 부담감은 없었나.
“부담이 없었다면 거짓말인 것 같다.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태리라는 인물 자체가 독특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캐릭터다보니 시청자들로 하여금 설득시키는 게 숙제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부분에 대해 고민과 생각이 많았다. 다행히도 현장분위기가 부담을 가지면서도 끝까지 촬영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남성우 감독님이 분위기를 굉장히 열어주셨다. 김응수 선배와 박해진 선배가 작품 중심에서 다른 느낌으로 리드해주었다. 그 안에서 편안하게 놀았던 것 같다. 어느 순간은 주연이라는 생각 자체를 안 하고 사무실 식구로서 연기를 하게 됐던 것 같다.”

'꼰대인턴' 주연으로 활약한 소감을 전한 한지은 / HB엔터테인먼트 제공
'꼰대인턴' 주연으로 활약한 소감을 전한 한지은 / HB엔터테인먼트 제공

- ‘꼰대인턴’을 하면서 애드리브가 많았나.
“매 순간은 아니지만, 대본 안에 국한되지 않고 상황에 맞다면 이것저것 해보는 것에 대해 남성우 감독님이 긍정적으로 봐주었다. ‘이라꽁’(이번엔 라면에 꽁치를 넣어봤어) 장면도 남성우 감독님의 요청 아래 애드리브로 진행됐다. 현장에서 ‘대사를 읽지 말고 리드감 있게 해볼래?’라고 요청해서 제 필(느낌)대로 즉흥적으로 표현했다. 파마머리하고 샤워하면서 중얼중얼 노래를 부르는 장면 속 흥얼거림도 즉석으로 했다. 이런 식으로 탄생한 장면이 꽤 있다.”

- 이만식(김응수 분)과 부녀 관계라는 사실이 큰 반전으로 작용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나.
“처음엔 몰랐다. 다만 김응수 선배보단 빨리 알았던 것 같다. 만식의 서사는 처음에 많이 나오는 반면, 태리의 서사는 후반부에 들어나지 않나. 연기를 위해서 서사를 알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대신 엄청난 반전이 되어야하기 때문에 연기로서 어디까지 드러낼 지에 대해 감독님, 작가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 방송인 장성규와 트로트가수 영탁의 특별출연이 큰 화제가 됐었다. 함께 호흡 맞춘 소감 어땠나.
“두 분한테 되게 놀랐다. 왜 ’꼰대인턴‘에 출연하는 카메오들은 연기가 처음이라고 하는데 다 잘하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하. 두 분의 내공이 보통이 아니었다. 연기가 처음이어서 확실히 긴장을 하긴 했지만, 긴장한 게 빠른 시간에 풀어지면서 감독님의 디렉팅(지시)을 빠르게 수용하더라. 변화도 빠르고 나중엔 애드리브까지 했다. 카페에서 티격태격하다가 나가는 장면에서 장성규가 주절주절 하던 게 모두 애드리브였다. 가열찬이 버려진 슬리퍼를 보고 (차형석 역과) 티격태격하는 장면에서 먼지를 손으로 닦아서 입으로 부는 등 영탁은 행동 애드리브를 하더라. 대단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인 장성규와 전애인으로 호흡을 맞췄던 한지은 / MBC '꼰대인턴' 방송화면
방송인 장성규와 전애인으로 호흡을 맞췄던 한지은 / MBC '꼰대인턴' 방송화면

- 고려 중인 차기작이 있나.
“몇 작품 고민하고 있지만, 하나로 압축되진 않았다. 어떤 모습으로 뵐 지는 미정이다. (전작들과는) 다른 결의 역을 해보고 싶긴 하다. 조금은 코믹적인 연기가 배제된 장르를 해보고 싶다. 드라마 ‘또 오해영’이나 영화 ‘연애의 온도’를 되게 좋아한다. 그래서 또 한 편으로는 로맨스물을 해보고 싶기도 하다. ‘멜로가 체질’ ‘꼰대인턴’ 모두 멜로 라인은 있지만 감성적으로 깊진 않았다. 감성적으로 깊이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

- 무명시기가 길었는데, 슬럼프가 있진 않았나.
“3년 연기를 안 한 공백기가 있다. 연기를 하고 싶어 (동덕여대 방송연예학) 진학을 하고 독립영화를 운이 좋게 찍게 됐다. 그때 스스로 연기에 대한 간절함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부끄러웠던 것 같다. 원래 스스로한테 떳떳하지 못하면 잘 못하는 성격이다. ‘연기는 재미있는데, 직업으로 독하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간절함을 못 느껴 3년 간 방황을 하면서 스피치 강사 일을 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연기에 대한 간절함을 느끼고 갈증을 느꼈다. 다시 배우로 돌아오고 난 이후로 쭉 연기를 하고 있다.”

- 20대와 비교했을 때 달라진 부분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연기보단 사람으로서 가치관이 많이 바뀐 것 같다. 예전에는 미래지향적이고, 목표지향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5년 후엔 이렇게 돼야지’라는 계획을 세우고 이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은 오늘 하루를 즐겁게 지내자는 가치관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마음도 많이 편해지고 연기하는 게 더 재밌어졌다. 옛날에는 부담도 느끼고 ‘기회를 놓치면 안되는데’ 전전긍긍하며 스트레스도 받았는데 그런 마음이 많이 없어졌다.”

배우로서 자신의 가치관을 전한 한지은 / HB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로서 자신의 가치관을 전한 한지은 / HB엔터테인먼트 제공

- 가치관이 바뀐 특별한 계기가 있나.
“특별한 계기보단... 자연스러운 흐름에 가까운 것 같다. 작은 일들이 쌓여 바뀌었던 것 같다. 막상 목표를 두고 계획을 세우다보면 기대가 커지지 않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 기대에 못 미쳤던 것 같다. 마음이 더 힘들고 무너지는 것 같더라. 내가 지나온 세월들까지도 아깝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허무하고 속상했다. 이게 반복되니 행복한 삶이 아닌 것 같았다. 결국 이건 내가 행복하게 하는 일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면서부터 바뀌었던 것 같다.

영화 ‘리얼’을 할 때까지도 목표지향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때도 약간 방황하는 시간을 겪었는데 영화 ‘창궐’을 하면서 회복하는 시간을 가졌고, 그 이후 가치관이 바뀌었다. ‘어떻게 되겠지’하는 마음이 든 시기가 tvN ‘백일의 낭군님’ 할 때부터다. 그러면서 연기가 더 재밌고, 나를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 오히려 연기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던 것 같다.”

- 가치관이 바뀜에 따라 구체적으로 주변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멜로가 체질’ 때 오디션을 봤는데, 편하더라. ‘오늘을 열심히 살자’로 변하니까 누군가에게 잘 보이자라는 마음부터가 없어졌다. 예전엔 오디션장에 들어가면 ‘심사위원이 어떻게 생각할까’ ‘심사위원이 무엇을 원하는걸까’ 맞출려고 했던 것 같다. 이런 마음을 내려놓으니 있는 모습 그대로를 당당하게 비출 수 있게 되더라. 그러면서 오히려 오디션 결과가 좋아졌던 것 같다.”

- 마지막으로 한지은에게 ‘꼰대인턴’이란 어떤 의미인가
“‘꼰대인턴’은 포장되지 않은 선물로 남을 것 같다. 태리가 날 것 같은 느낌이 강한 친구였고, 겉과 속이 비슷했다. 앞으로 이런 역을 해볼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게 너무 행복했다. 저한테 ‘꼰대인턴’은 선물인데, 태리 역 자체가 포장되지 않은 느낌이라 ‘포장되지 않은 선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누군가는 갑자기 주연으로 우뚝 선 한지은을 보고 운발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배우가 좋은 작품을 만나는 것 자체가 일종의 인연인 만큼 운의 영향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완벽하게 황한주였고, 이태리였던 한지은의 연기는 그녀가 무명시절 했던 고민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충분히 입증해냈다. 하나의 캐릭터로 다채로운 색깔을 그릴 줄 아는 배우 한지은. 그녀가 30대에 ‘꽃길’을 맞이할 수 있던 이유이자, 그려나갈 내일이 더욱 기대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