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가기
李씨네
[자산어보] 소박한 그 시대의 이야기, 그래서 더 묵직한
2021. 03. 19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영화 ‘자산어보’(감독 이준익)가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영화 ‘자산어보’(감독 이준익)가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순조 1년, 신유박해로 세상의 끝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전(설경구 분). 호기심 많은 정약전은 그곳에서 바다 생물에 매료돼 책을 쓰기로 한다. 바다를 훤히 알고 있는 청년 어부 창대(변요한 분)에게 도움을 구하지만, 창대는 사학죄인을 도울 수 없다며 단칼에 거절한다.

창대가 혼자 글공부를 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정약전은 서로의 지식을 ‘거래’하자고 제안하고, 거래라는 말에 창대는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인다. 둘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점차 서로의 스승이자 벗이 돼간다.

그러던 중 창대가 출세하기 위해 공부에 매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정약전은 크게 실망한다. 창대 역시 정약전과는 길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정약전의 곁을 떠나 세상 밖으로 나가고자 결심한다.

영화 ‘자산어보’(감독 이준익)는 흑산으로 유배된 후, 책보다 바다가 궁금해진 학자 정약전과 바다를 벗어나 출셋길에 오르고 싶은 청년 어부 창대가 <자산어보>를 집필하며 벗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이준익 감독의 열네 번째 연출작이다.

흑백 필름 안에 담아낸 ‘자산어보’ 스틸컷.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흑백 필름 안에 담아낸 ‘자산어보’ 스틸컷.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자산어보’는 대중에게 친숙한 정약용이 아닌, 그의 형이자 조선시대 학자 정약전의 생애를 조명,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낸다. 특히 역사 속 사건을 중심으로 위인의 삶을 비추는 여느 시대극과 달리, 하나의 개인으로서 ‘인간’ 정약전의 모습을 담아내 시대를 관통하는 울림을 선사한다.

명망 높은 사대부 집안의 학자 정약전이 신분이 낮은, 그 시대에 몸부림치며 살아왔을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우정을 쌓아가는 모습이 그렇다. 신분 질서가 강했던 사회에서, 양반과 평민, 서로 다른 신분과 가치관으로 좀처럼 어울릴 것 같지 않던 이들이 서서히 가까워지고 벗이 되는 과정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하고,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하며 마음을 흔든다.

영상미도 좋다. 색채를 덜어내고 흑백으로 조선시대를 담아냈는데,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 아름다운 미장센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또 설경구‧류승룡(정약용 역)의 목소리로 옮겨낸 한시도 색다른 재미 포인트다. 정약용이 실제 지은 한시를 인물이 맞닥뜨린 상황과 절묘하게 조화시켜 스토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자산어보’에서 탄탄한 연기 내공을 다시 한 번 입증한 설경구(왼쪽)과 변요한(오른쪽 위), 이정은 스틸컷.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자산어보’에서 탄탄한 연기 내공을 다시 한 번 입증한 설경구(왼쪽)과 변요한(오른쪽 위), 이정은 스틸컷.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배우들의 열연은 두말할 것 없다. 첫 사극에 도전한 설경구는 정약전 그 자체로 존재한다. 호기심 많은 학자의 엉뚱하면서도 순수한 모습부터 백성을 위한 지식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찰하는 참된 스승의 모습까지 폭넓게 소화, 탄탄한 연기 내공을 다시 한 번 입증한다.

청년 어부 창대로 분한 변요한은 그동안 보지 못한 새로운 얼굴은 물론, 한층 깊어진 연기 내공을 보여준다. 외적인 모습뿐 아니라, 인물의 감정선을 완벽히 이해하고 섬세하게 담아내 몰입을 높인다. 가거댁을 연기한 이정은 역시 뚜렷한 존재감을 보여준다. 그에게 주어진 단 한 컷도 허투루 하지 않고, 관객의 시선을 단단히 붙잡는다.

이준익 감독은 “‘자산어보’는 우리가 그리워하는 삶의 모습, 인간 사이의 관계, 그리고 그 속에서 느끼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라며 “대단한 영웅의 이야기가 아닌 소박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관객의 가슴 깊숙이 남길 바란다”고 전했다. 러닝타임 126분, 31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