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남구에 있는 기사 식당의 모습. 원래 이곳의 벽면(사진 왼쪽)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들로 채워져있었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후 이곳을 찾는 손님들의 항의로 도배를 새로 했다고 한다. 남은 사진 일부(사진 오른쪽)는 손님들 눈에 띄지 않은 곳에 배치했다 한다<신영호 기자>

[시사위크|대구=신영호 기자]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29일 오전 경상북도 구미시에 있는 박정희 대통령 생가. 5m가 살짝 넘는 높이의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주변을 ‘새마을 노래’가 휘감고 있었다. 이 노래는 새마을 운동과 함께 박정희 시대를 상징한다. 근면, 자조, 협동, 희생의 가치로 배고픈 보릿고개를 넘어보자는 내용이다. 이때를 관통해 온 사람들은 국가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묵묵히 걸었다.

이곳을 매일 찾는다는 이정명 할아버지(73)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묻으려는 하자 “그런 것 묻지 마라. 여기(구미)는 달라진 거 아무것도 없다. 묻고 싶으면 구미경찰서 가서 물어 보소”라며 기자의 말허리를 잘랐다.

박정희 생가 안쪽 보릿고개 체험장에서 식당일을 보는 여지숙(55) 씨는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하는 사람들이다. 박 전 대통령 존경하지 않나요”라고 되물었다. 여 씨는 “작년에 험한 일이 있었지만 올해 들어 방문객의 발길이 예년 수준으로 회복하고 있다”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이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탄핵 때문에 마음은 무겁지만 어쩌겠느냐”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보수가 그동안 나라를 이끌어왔다고 생각했다. 이 만큼 잘사는 건 지도자와 국민이 합심해 앞만 보고 달려왔기 때문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렇다고 공치사 하는 건 어른스럽지 못하고 어딘가 어색했다. 그저 후세들이 기억해 주길 바랐다. 한데 작년 탄핵 정국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보수가 쪼그라들었고 누군가는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손가락질 받는 일이 잦아졌다. 문재인 정부가 잘 되기 바라면서도 나라가 잘못된 방향으로 갈까봐 조마조마 했다.

이곳을 매일 찾는다는 할아버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묻으려는 찰나 “그런 것 묻지 마라! 여기(구미)는 달라진 거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사진은 박정희 생가에 있는 박정희 대통령 동상.<신영호 기자>

대구 남구에 있는 ‘한진기사님 식당’ 사장인 박인석(57) 씨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원래 이 식당 안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옛 사진으로 둘러쳐져 있었는데, 이날 방문해보니 도배가 새로 돼 있었다.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박인석 씨의 표정이 묘했다. 한참을 주저한 박 씨는 “작년 탄핵 때부터 손님들이 사진 떼라고 시비해서 계속 싸우게 되니깐 장사 문제도 있고 해서 올해 초에 도배를 해버렸다”고 했다.

박인석 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 잘했다는 거 아니지만, 좌파가 정권을 잡으니 박근혜 전 대통령을 세월에, 역사에 묻는 수밖에 없지 않겠나. 방법이 어디 있겠노”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나중에 정권 바뀌면 그때 다시 사진 걸어 놓을 것”이라며 “그때 가면 많이 사람들이 사진을 보고 밥을 먹으면서 ‘야 우리나라가 이렇게 만들어졌구나’하고 생각하겠지. 이게 참교육이지”라고 말했다.

 

◇ “보수 중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

이날 대구 방문에 앞서 지난 28일 경산에서는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대구·경북 합동연설회가 열렸다. 박인석 씨에게 물었다. 전대 보니 어떠냐고. “내가 한 달에 2,000원 씩(당비를) 내고 있는데 그거 확 빼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요.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분이 없다”고 했다.

서문시장 입구 한 켠 리어카를 세워놓고 태극기 등 각종 잡화를 파는 오기석(55) 씨의 생각도 박 씨와 유사했다. 오기석 씨는 “한국당 전대에 관심 없어요. 보수 갈라지고 나서 이제는 관심이 없다”고 했다. “진보 쪽은 단합을 잘하고 죽기 살기로 하잖아요. 보수는 먹고 살만해서 그런지 하는 거 보면 답답해”라고 말했다.

보수의 미래가 암울하다고 너나없이 말했다. 선배들의 지혜를 계승하면서도 더 나은 비전을 제시해 줄 인물에 대한 갈증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졌다. 그래도 새 보수를 위한 씨앗은 누군가는 뿌려야 했고 가시밭길인 걸 알면서도 걸어가야 했다.

경북대 사범대학에 다니는 조기영(24) 씨와 오석훈(24) 씨는 새로운 보수 움직임에 희망을 거는 듯 했다. 조기영 씨는 “보수도 잘못한 것에 대해 반성하고 사죄하고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이 맞다”고 했다. 오석훈 씨는 “정치에 대해 잘 모르고 관심도 많은 편은 아니지만 낮은 자세로 소통하고 먼저 허리 굽히는 자세에 마음이 가더라”면서 “보수뿐 아니라 진보 정치인도 이렇게 해줬으면 싶다”고 했다.

박정희 생가 보릿고개 체험장에서 식당일을 보는 여지숙 씨는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하는 사람들이다. 박 전 대통령 존경하지 않나요”라고 되물었다. 사진은 박정희 대통령 생가 정문에 놓여있는 새마을 운동 조각상의 모습.<신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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