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장충단로에 위치한 신세계건설 본사 전경. <시사위크DB>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최근 상생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건설업계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발생했다. 그룹 계열사 일감을 통해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신세계건설에서 협력사 직원을 홀대한 일이 발생해서다. 시공사의 귀책사유로 인해 발생한 안전사고에도 신세계건설은 협력사 직원을 마치 금전적 보상을 노린 블랙컨슈머로 취급한 것으로 알려져 빈축을 사고 있다.

◇ 구덩이 ‘추락’ 협력사 직원… “사과 한 마디 없었다”

지난 20일 <SBS>에는 대기업 계열 건설사의 무책임한 태도에 상처를 받아야 했던 근로자 A씨의 사연이 소개됐다.

보도를 통해 알려진 A씨의 사연은 다음과 같다. 지난 8월 경기도 일산의 쇼핑몰 건설현장에서 작업 중이던 A씨는 별안간 땅으로 꺼지는 일이 발생했다. 현장 한 복판에 약 1.5m 깊이의 구덩이가 파져 있었는데, 이를 A씨가 미처 알아채진 못한 것이다.

A씨가 구덩이의 존재를 알 수 없었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구덩이가 파란 천막으로 덮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평평한 평지에 천막에 깔려 있다고 생각한 A씨는 구덩이 위를 자연스레 밟고 지나가려다 봉변을 당한 것이다. 갈비뼈와 무릎을 다친 A씨는 10분 가까이 옴짝달싹 하지 못한 채 구덩이 속에 갇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를 곤경에 빠뜨린 구덩이의 정체는 다름 아닌 시공사인 신세계건설이 배선 설치를 위해 파놓은 공간이었다. 문제는 사시사철 안전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건설 현장 한복판에 성인 한명이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는 구덩이를 파두고도 별다른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해당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A씨는 “짐승 잡으려고 덫을 만들어 놓은 거랑 똑같다”고 말했다.

A씨를 더욱 분노케 한 건 신세계건설의 태도였다. A씨는 사고 치료비로 130만원 가량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는데, 신세계건설이 보상은커녕 사과의 말 한마디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A씨를 금전적 보상을 노린 블랙컨슈머로 취급한 정황도 드러났다. “제가 돈 때문에 그러는 거라고 생각하세요?”라는 물음에 “그것 때문에 그러시잖아요”라는 A씨와 신세계건설 직원 간 통화 내용이 이날 방송을 통해 보도됐다.

A씨와 신세계건설의 갈등은 사고 발생 다섯달이 지나서야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신세계건설이 최근 A씨에게 적절한 수준의 보상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신세계건설 관계자는 “A씨는 자사와 계약을 맺은 협력사 직원이 아니라 발주처와 계약을 체결한 협력사 직원이다 보니 보상 문제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했었다”면서 “지난주 비용 등에 대해 합의했다”고 말했다.

◇ 말뿐인 ‘상생’… 참 의미 깨닫지 못한 신세계건설

이번 사고는 건설현장에서 흔히 발생할 수 있는 해프닝에 그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협력업체를 동반자가 아닌 여전히 ‘을’로 바라보는 대기업 계열 건설사들의 시각을 여실히 보여주는 일례라는 날선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진정한 상생이란 ‘동반성장펀드 조성’과 같은 거창한 협약을 맺는다고 해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는 따가운 일침도 나온다.

지난 2월 신세계건설은 금융권과 손잡고 협력사와 동반 성장을 위한 펀드 운영에 들어갔다. 주요 은행에 신세계건설이 정기예금으로 예치한 116억원의 이자로 마련된 재원으로 협력사들이 대출 금리 인하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한다는 게 핵심이다.

신세계건설이 상생의 방법으로 펀드 조성을 선택한 건 “가장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지원 수단이 금융 지원”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물질적 지원이 최선의 상생이라는 신세계건설. 신세계건설이 상생의 참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구덩이 사고는 반복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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