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후 6시30분부터 시작된 서울 성수동에서 열린 제화노동자 결의대회에 참석한 탠디 제화공들. <탠디 제화공 제공>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구두 노예’ 논란을 일으켰던 탠디 제화공들의 투쟁이 작지만 큰 성공을 거두며 일단락 됐다. 제화공들이 점거농성 16일 만에 노사 합의서를 작성한 것. 당초 요구했던 공임 2,000원 인상은 못 미치지만 8년 만에 1,300원의 공임 인상을 끌어냈다. 탠디 제화공들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은다. 아직 해결되지 못한 ‘소사장제 폐지’는 물론 전국의 제화공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연대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 파업 한 달여 만에 거둔 8년만의 공임 인상

탠디 제화공들이 값진 성과를 거뒀다. 지난달 6일부터 파업에 돌입한 제화공들은 사측이 묵묵부답으로 대응하자 같은달 26일 본사를 점거, 16일간 농성을 벌였다. 지난주 어버이날 만해도 사측에서 고용한 용역들이 출입구를 관리하는 탓에 자녀들과 손도 잡아보지도 못하고 창문을 통해 인사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30만원이 넘는 수제화를 팔면서 제화공에게는 6,000~7,000원을 지급한다는 사실에 여론의 분노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결국 사측은 지난 11일 새벽 2시 탠디 본사에서 노사 협상을 타결했다. 이날 오후 6시30분에는 ‘수제화의 거리’ 서울 성수동에서 제화노동자 결의대회가 예정돼 있었다.

탠디와 하청 노동자인 제화공들의 합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임료 1,300원 인상 ▲정당한 사유 없이 제화 조합원의 일감 축소 및 차별금지 ▲근로조건, 공임단가, 소사장제 폐지 등을 결정하는 협의회를 상·하반기 각각 1회 이상 개최 ▲파업으로 인한 쌍방 소송 취하 등이다.

이에 대해 박완규(조합원) 탠디 제화공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오늘부터 모두 공장으로 돌아가기로 했지만 파업 기간 중 폐업한 업체가 있는 등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상황”이라며 “그에 따른 퇴직금이나 폐업 업체의 회생문제, 소사장제 폐지 등은 ‘추후 협의’로 미뤄져 다소 아쉬운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상된 공임도 아쉽긴 하지만 워낙 연세가 높으신 분들도 많고 점점 많이 힘들어했다”면서 “그래도 모든 제화공들이 한마음으로 여기까지 버틸 수 있던 것에 감사하다”고 전했다.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김형수 위원장(가운데)를 비롯한 조합원들과 정기수 탠디 대표이사(왼쪽 두 번째)가 합의서를 작성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민주노총 서울일반노동조합>

◇ “성수동 제화공들, 우리 승리에 박수쳐줘”

이날 오후 6시30분에는 제화공들이 몰려있는 성수동에서 결의대회가 열렸다. 탠디 제화공들은 새벽에 노사 합의를 맺고 성수동 제화공들에게 함께 싸워줄 것을 부탁했다. 성수동은 국내 제화공장 최대 집결지로 수제화 제조업체 70%가 밀집해 있다. 이날 탠디 제화공들의 우려와 달리 성수역 2번 출구에는 성수동 제화공 500여명이 몰려들었다.

가운데 차도를 두고 한쪽 인도에서 탠디 노동자들이 가두행진을 벌였다. 반대편 인도에 있던 제화공들은 밖으로 나와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탠디 제화공들이 “이쪽으로 넘어오라!”며 소리치자 금세 건너와 탠디 행렬 뒤로 성수동 제화공들이 줄을 지었다.

박 제화공은 “정말 깜짝 놀랐다. 구두를 만들면서 그런 광경은 처음이었다”면서 “우리들 이야기를 모두 알고 있어서 부러워하고 대리만족을 느끼는 듯했다. ‘성수동이 바뀌어야 제화공들의 삶이 바뀐다’고 말하자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성수동에서 열린 제화 노동자 결의대회에서 탠디 제화공들의 가두행진을 지켜보고 있는 성수동 제화공들 모습. <탠디 제화공 제공>

이어 “이번에 탠디만 관심을 받았지, 국내 수제화 제화공들이 모두 같은 환경에 처한 상황이다. 저가 구두를 만드는 분들은 공임료가 2,000원가량”이라며 “미소페, 소다, 세라 등 다른 수제화 업체들도 제화공 공임료 인상을 두고 고민하고 있다고 들었다”고 귀띔했다. 이날 탠디 제화공들은 성수동에서 120명의 노동조합 가입서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탠디 사태를 계기로 국내 고가 수제화 브랜드의 노사협상에도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탠디 제화공들은 앞으로 4대보험과 휴일, 퇴직금 등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소사장제 폐지에 앞장설 방침이다. 지난해 2월 법원은 탠디 노동자 9명이 사측을 상대로 낸 퇴직금 청구 소송에서 이들이 탠디 노동자임을 인정하고 퇴직급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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