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9일 오후 4시 기준 문제가 된 고혈압약 처방자는 17만8,536명에 이른다. <식약처>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발암물질 고혈압약 파동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빠져들고 있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리베이트 제약사 퇴출을 촉구하는 글이 올라오기까지 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문제의 원료를 사용한 중국 기업도 해당 사실을 몰랐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환자들의 불안감은 여전한 가운데 의사협회가 책임회피성 입장문을 발표, 예기치 않은 곳까지 불똥이 튀고 있다.

◇ 발암물질 고혈압약 파동, 어디까지?

식약처가 중국 기업 ‘제지앙화하이’가 ‘발사르탄’을 사용해 제조한 고협압치료제 219개 품목(82개 업체) 중 104개 품목(46개 업체)에 대해 판매·제조 중지 처분을 해제했다. 지난 7일 219개 제품 모두에 대해 판매 중지가 내려진 지 이틀만의 조치였다. 그럼에도 10일 오후 현재까지도 약국에서는 고혈압 환자들의 방문 및 전화 문의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앞서 유럽의약품청(EMA)은 지난 5일 제지앙화하이에서 제조한 고혈압 치료제 원료 의약품 발사르탄에서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이 검출됐다며 해당 의약품 회수에 나섰다. NDMA는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2A(인간에게 발암물질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물질)로 분류되고 있다.

우리 식약처도 발 빠르게 대처했다. 제지앙화하이가 제조한 발사르탄을 사용한 고혈압 치료제 219개 제품의 명칭과 판매사 이름을 공개한 것. 하지만 현장 조사 결과 115개 치료제에서만 문제의 발사르탄을 사용한 사실이 확인, 다시 수정 공지한 상태다. 이 과정에서 주말 동안 문제가 없는 약품을 반품 또는 환불한 환자들의 불만도 상당한 상황이다. 식약처는 일단 발사르탄이 포함된 의약품을 모두 회수한 후 검사를 통해 제지앙화하이가 제조한 의약품을 분리했다고 해명했다.

고혈압 약을 판매하던 국내 제약사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 8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해당 제약사들 중 리베이트로 적발된 곳들에 대해 의약품 판매를 중지시켜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같은 성분의 같은 약임에도 수많은 제약사들이 골고루 판매할 수 있었던 것은 리베이트 때문”이라며 “다시는 의약품을 팔지 못하도록 조치해 달라”고 당부했다.

제약사들의 피해액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보도에 따르면 앞서 219개 의약품이 판매가 중지될 경우 제약사들의 피해액은 900억원까지 추산되기도 했다. 다만 이 중 절반가량이 다시 판매가 결정되면서 피해액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10일 오후에도 동네 약국에서는 고혈압약 관련 문의를 하기 위한 환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뉴시스>

약사단체들, 의협 입장발표에 “자중하라” 일침

발암물질 혈압약 사태로 의사·약사 단체 간 갈등도 빚어지고 있다. 발단은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의 입장발표에서 비롯됐다. 올해 초 의협 회장 선출 후 정부와 연일 대치 중인 의협은 지난 9일 입장문을 통해 “식약처의 인허가에 따라 해당 의약품을 믿고 처방한 의사들 또한 분노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식약처장을 포함한 관련자들에 대해 문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지금 시행되는 생동성 검사는 오리지날 약 대비 효능이 80~125% 범위 내에 있으면 통과되고, 심지어 검사가 조작되기도 한다”면서 “현행 생동성 검사에 대한 보다 엄격한 기준을 마련하고 철저한 조치가 따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다음 발언에서 촉발됐다. 의협은 “성분명처방을 통해 약국에서 임의로 복제약들을 골라 조제하도록 하는 것은 국민 건강권을 위협하는 행위”라며 “의사 처방에도 불구하고 약국에서 처방과 다르게 조제할 수 있으므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발표에 약사단체들도 발끈했다. 처방 주체가 의사들인 만큼 자중할 필요가 있다는 게 약사단체의 입장이다. 새물결약사회와 서울시약사회는 논평을 내고 “발사르탄 제품을 처방해 온 것은 일선 의사들이라는 점에서 의협은 피해 환자들에게 유감의 뜻을 밝혀야 한다”면서 “적반하장으로 이번 사건을 대체조제와 성분명처방을 반대하는 구실로 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비난했다.

또 다른 약사단체인 ‘약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이하 약준모)도 우선 현재 사태를 수습한 뒤 입장 발표를 검토할 방침이다. 임진형 약준모 회장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주말부터 약국으로 전화를 하거나 찾아오는 환자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면서 “우리 약국은 처방약 제조가 많지 않은데도 환자들이 일단 가까운 동네 약국을 찾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의협에서 나온 발표 내용은 문제의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매우 정치적인 행위에 불과한 것”이라며 “약사들은 성분명처방을 통해 환자가 직접 의약품을 선택하는 제도를 마련하자고 주장해왔다. 리베이트도 그래야 사라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임 회장은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은 만큼 누구를 탓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정부와 의협 및 약사단체들이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면서 “현재 정부에서 문제의 의약품을 복용한 환자들을 중심으로 인체 피해 조사 접수를 받고 있음에도 홍보가 되고 있지 않다. 의심 증상이 있는 환자들은 신청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편 보건복지부 집계에 따르면 발암가능물질이 들어간 115개 고혈압약을 복용한 국내 환자수는 17만8,536명이다.

판매중지 처분이 내려진 고혈압약 115개 품목.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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