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8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금속노조, 현대차 처벌·유성기업 노동자 결의대회’ 를 마친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청와대를 향해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유성기업 노조파괴 및 부당 노동행위사건'에 대한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본조사(재조사) 권고 결정 보류를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뉴시스
지난 5월 18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금속노조, 현대차 처벌·유성기업 노동자 결의대회’ 를 마친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청와대를 향해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유성기업 노조파괴 및 부당 노동행위사건'에 대한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본조사(재조사) 권고 결정 보류를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어휴... 이런 얘기 하는 게 정말 힘들거든요. 그런데 몇 년째 같은 얘기를 해야 하니까 더 힘들고, 지난날들을 떠올리면 가슴이 진정이 안 돼서, 너무 화가 나서...”

도성대 유성기업 아산지회 지회장은 힘겹게 한마디, 한마디 말을 이었다. 하지만 5분을 막 넘기고서는 “도저히 말을 못 잇겠다”고 해 대화를 이어 갈 수 없었다. 몇 분 후 다시 전화를 준 그는 “나는 7년간 법원, 노동부 등으로부터 ‘각하’라는 말을 10만 번은 들은 것 같다”면서 “그런데 인권위한테도 그 말을 들을 줄 몰랐다. 너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전국금속노조 유성기업 아산·영동지회 조합원들은 지난 22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성기업 노동자들에 대한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지난해 12월 청문회를 통해 발표하기로 했던 조사 결과는 올해 5월로 미뤄졌고, 연말이 다가오는 지금까지도 발표되지 않고 있다.

◇ “인권 방치하는 인권위, 노동자 건강 날로 악화”

노조는 이날 “인권위가 조사 결과 발표 등을 방치하면서 그 사이 사측의 교섭해태와 임금삭감 등 아직도 각종 차별행위가 벌어지고 있다”면서 “인권위는 유성기업의 차별행위에 대해 권고할 기회도 놓치더니 이번엔 정신건강 조사 결과마저 저버릴 작정인가”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인권위는 현장에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의 외침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며 “유성기업 노동자들에 대한 정신건강실태조사 결과를 즉각 발표하고 청문회를 조속히 개최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노조는 기자회견 후 인권위 관계자와 면담을 갖고, 기자회견 내용을 전달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인권위 측이 사실상 정신건강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성대 지회장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어제 인권위 관계자가 개인적인 생각이라면서 ‘이미 각하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더라”면서 “해고자들이 부당해고임이 법원 판결을 통해 드러났으니, 관련법에 따라 각하하는 게 맞다는 것이다. 그게 지금 와서 할 소린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인권위의 이 같은 입장은 납득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부당해고 대법원 판결은 이달 4일에야 나왔다. 이미 지난해 12월에 정신건강실태조사 발표를 앞두고 있던 상황에서 올해 10월이 돼서 대법원 판결을 거론하는 것은 사실상 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사건을 방치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도 지회장은 “인권위 판단이 법원의 판결보다 늦게 나오는 경우가 어디 있는가. 또한 대법원 판결은 부당해고라는 것을 확인받는 것일 뿐 인권위의 조사 내용과는 다른 것”이라며 “지금도 1분 단위로 임금을 삭감하고, 관찰일지를 작성하고, 손해배상을 또 청구하고, 조퇴증도 안 끊어줘서 불법 파업을 유도하고 있는 상황인데 뭐가 구제가 되고 뭐가 해소가 됐다는 것이냐”며 괴로운 심정을 토로했다.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전국금속노동조합이 유성기업의 노조원을 상대로 한 2차 해고가 무효라는 확정 판결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전국금속노동조합이 유성기업의 노조원을 상대로 한 2차 해고가 무효라는 확정 판결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

◇ 유시영 회장 단체교섭 참석 촉구 농성 중인 노조

현대차에 자동차 엔진을 납품하는 유성기업은 심야노동으로 인한 산재 비율이 높아 2011년 1월부터 주간연속 2교대를 하기로 노사가 합의했다. 지금과 달리 당시만 해도 주간연속 2교대를 하는 업체가 없었기에 이를 막기 위한 곳곳의 압박이 노동자들을 조여오기 시작했다.

이후 사측은 창조컨설팅과 공모해 유성기업 노조 파괴 작업에 착수, 용역깡패를 동원해 노동자들을 폭행하고 직장폐쇄까지 감행했다. 이후 사측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기업노조를 만들고, 이들과 금속노조 조합원 간의 차별 정책을 시행했다. 이에 항의하는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징계와 해고를 당했고, 수십억원의 손해배상 청구까지 당하게 됐다.

싸움이 길어지면서 노동자들의 트라우마도 심각해져갔다. 급기야 2016년엔 조합원 한광호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결국 뒤늦게 검찰 조사가 이뤄지면서 유시영 회장은 실형을 선고받고 올해 만기출소 했다. 그러나 유 회장이 출소한 후에도, 이달 4일 대법원의 부당노동행위 확정 판결이 나온 후에도 노동자들의 일상은 달라진 게 없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올해 2월 열린 단체교섭장에는 과거 노조탄압에 연루됐던 인물 5명 중 4명이 교섭위원으로 참석하면서 논란이 됐다. 결국 교섭은 중단됐고, 지난 5월 노조는 유 회장의 출소를 앞두고 사측의 노조 탄압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며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달 15일부터는 유 회장의 참석을 촉구하는 사무실 점거 무기한 농성을 시작한 상태다.

2016년 금속노조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한 정신건강실태 조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그때도 늦었었고, 지난해도 늦었었고, 올해는 더더욱 늦었다”면서 “인권위도 인력이 부족하고 사건이 많은 것은 알고 있지만, 이 사건은 그렇게만 말하기에는 너무나 오래되고 심각한 사건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인권위는 지금도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면 다시 조사를 한 후 정신건강실태조사와 함께 발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면서 “지금 또 다시 조사를 하겠다면 얼마든지 받겠다. 그러나 정신건강실태조사는 이미 작년에 결론이 나온 만큼 빨리 발표를 해야 한다. 언제까지 노동자들이 기다리고 있어야 하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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