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정기예금 규모가 단기예금을 중심으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예금된 돈들을 살펴보고 있는 은행 직원의 모습. /뉴시스
은행 정기예금 규모가 단기예금을 중심으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예금된 돈들을 살펴보고 있는 은행 직원의 모습. /뉴시스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일반적으로 은행 예금은 ‘투자’가 아닌 ‘자금 보관’의 성격이 강하다. 주식·채권 등에 비해 기대수익률이 낮다보니 생긴 인식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투자자금이 은행으로 몰리면서 정기예금, 특히 만기가 6개월 이하인 단기예금이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외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이 정체되면서 이렇다 할 투자처가 없어진 것이 그 원인이다.

◇ 주가·부동산 가라앉자 단기예금 늘어

2018년 9월 말 기준 예금은행에 예치된 정기예금 규모는 680조9,250억원으로 역사상 어느 때보다 많다. 단순히 총액만 큰 것이 아니라 증가 속도도 빠르다. 2012년부터 2016년 상반기까지 570조원 대에서 머물렀던 정기예금 잔액은 16년 11월 처음으로 600조원을 넘었으며, 작년 1월부터 올해 9월까지 월평균 4조8,000억원 꼴로 늘어났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예금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2008년~2011년에 이어 두 번째 ‘정기예금 호황’이라고 부를 만하다.

특히 큰 인기를 끈 것은 단기예금이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기준 6개월 미만 정기예금의 규모는 90조20억원으로 전년 동월(74조3,314억원)보다 21% 많다. 6개월 이상 1년 미만 정기예금의 잔액 또한 동기간 137조2,362억원에서 147조6,711억원으로 10조원 이상(7.6%) 늘어났다.

반면 만기가 긴 정기예금은 예년과 비슷한 수준에 머물렀다. 9월 말 기준 3년 이상 중장기 예금의 잔액은 17조2,62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4억원 늘어나는데 그쳤다.

수익률은 낮지만 유동성이 높은 단기예금에 자금이 몰리고 있다는 것은 투자자금이 주식시장에서 잠시 손을 뺐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인은 높아진 변동성이다. 코스피 변동성 지수는 10월 21일 22.42, 2월 4일에는 23.73을 기록했는데 이는 지난 2012년 6월 이후로 가장 높은 수치다. 한편 부동산시장의 경우 고강도 부동산대책의 영향으로 현재 숨고르기에 들어간 상태다. 지난 9월 12년 만에 가장 높은 증가폭을 기록했던 주택매매가격은 오는 2019년엔 올해보다 1.1%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한국건설산업연구원 발표).

중앙은행이 금리 인상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는 현재 상황도 예금 만기를 길게 가져가지 않으려는 이유 중 하나다. 4~7월 중 6개월 미만 단기예금 규모가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났던 것은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금리 인상에 자극받아 국내에서도 금리인상 분위기가 형성된 영향으로 분석된다. 다만 한국은행이 예상보다 금리인상 시기를 늦추면서 투자자금의 ‘대기’도 길어지는 중이다.

◇ 다음 달 초에 몰린 중요 일정들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가라앉기 위해 넘어야 할 산으로 뽑히던 ‘이벤트’들은 크게 셋이다. ▲지난 11월 6일(현지시각) 열린 미국 중간선거와 ▲11월 30일 열리는 한국은행의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 그리고 ▲12월 1일(현지시각) 아르헨티나에서 개최되는 G20 정상회의가 그것이다. 각각 미국 정세와 한국 기준금리, 그리고 미·중 무역전쟁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날들이다. 이 중 미국 중간선거는 여론조사기관들의 예상대로 끝났지만, 다른 두 회의가 어떻게 끝날지는 예측이 보다 어렵다.

한국은행은 몇 달 전부터 꾸준히 금리 인상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예상보다 낮은 경제성장률과 개선되지 않는 고용률, 그리고 미·중 무역 전쟁이라는 변수 때문에 결정을 미루는 중이다. 다만 금리의 움직임 자체보다는 시장의 예상에서 벗어난 결과들이 주가변동성을 높인다는 점을 감안할 때 금리인상 쪽에 조금 더 무게가 실린다.

이 경우 만기가 끝난 단기예금 자금들은 높아진 금리로 더 만기가 긴 새 예금을 들 수 있다. 반면 금융통화위원회가 다시 금리를 동결할 경우, 또는 한국은행이 곧 금리를 재인상할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될 경우엔 단기예금의 증가세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편 G20 정상회의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휴전 협정’을 맺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무대로 뽑힌다. CNBC는 12일(현지시각)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과 류허 중국 부총리가 G20 정상회의에서 양국 정상이 논의할 안건들에 대해 통화했다고 보도했다. 물론 몇 시간 동안의 짧은 만남에서 ‘극적 타결’이 만들어질 가능성은 낮지만, 협상 재개 정도의 성과로도 미국·중국 증시는 반등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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