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과 김용균 씨 유가족이 진행한 현장조사에서 확보한 김씨의 유품. /공공운수노동조합
지난 13일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과 김용균 씨 유가족이 진행한 현장조사에서 확보한 김씨의 유품. /공공운수노동조합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한국전력 자회사 서부발전이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사망 사고를 축소보고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서부발전은 고(故) 김용균(24) 씨가 소속된 태안화력발전소의 원청이다. 앞서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이하 대책위)는 김씨가 사망한 당일에도 사측이 직원들의 입단속을 했다고 폭로해 논란이 됐다.

현재 서부발전이 누락한 것으로 알려진 하청업체 노동자의 사망 사고는 5건이다. 2011년과 2016년에 각각 2명이 추락사했고 지난해는 기계에 끼이는 사고로 1명이 사망했는데 이에 대한 내용이 국회 보고에 빠져있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하청업체의 각종 사고 은폐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입을 모은다.

◇ 하청 노동자 사고 은폐, 원-하청 구조 원인

고 김용균 씨와 마찬가지로 서부발전이 고의 누락 의혹을 받고 있는 5건의 사망 노동자는 모두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이에 대해 서부발전 측은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자료를 국회에 제출하기 때문에 고용부 자료에 빠져 있는 내용은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고용부는 산업재해 신청이 접수되면 산재 판정을 통해 각종 사고들을 집계한다.

현재 서부발전은 고의로 사고를 은폐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지만, 일각에선 서부발전에서 실제로 모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이는 ‘위험의 외주화’와 관련돼 있다. 원청은 하청업체의 직원의 사고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애초에 보고조차 받지 않았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안전장비나 안전을 위한 적절한 인력배치 등도 모두 하청업체가 관할한다. 원청은 계약에 따른 비용만 지불하면 그만이다. 김씨 역시 하청업체가 인건비를 줄이다보니 2인 1조 작업을 할 수 없었다. 문제가 불거지자 원청 측은 하청업체 측에 공문을 보내고 2인 1조 작업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역시 현실적으로 2인 1조 배치가 불가능한 하청업체에 형식적으로 지시만 내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사망 사고 누락이 하청업체의 주도로 진행됐을 수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현재 하청업체들은 산재 사고가 발생할 시 향후 입찰 과정에서 감점 등의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오히려 서부발전보다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겼을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저가입찰에 따라 인력과 안전비용을 낮출 수밖에 없고, 이 경우 사고가 발생하면 그 책임까지 하청업체가 져야하는 구조인 셈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같은 사고 은폐로 인해 서부발전은 3년간 무재해 인증을 받고, 5년 간 보험금 22억원을 감면받기도 했다. 또 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다는 점이 인정돼 직원들에게 포상금도 지급됐다. 특히 감면받은 보험금은 세금이기 때문에 향후 추징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고 김용균 촛불추모제'에 참석한 한 시민이 '외주화 중단하고 정규직화하라'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고 김용균 촛불추모제'에 참석한 한 시민이 '외주화 중단하고 정규직화하라'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 문재인 대통령 “‘위험의 외주화’ 법안 조속히 통과시켜야”

김씨의 열악한 작업 환경은 계속해서 추가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김씨의 가방 속에는 컵라면 3개와 과자 1봉지, 고장난 손전등 등이 나왔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작업과 언제 업무 지시가 내려올지 몰라 중간 중간 컵라면으로 허기를 때운 것이다. 2016년 5월 지하철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중 사망한 20대 비정규 노동자 이모 씨의 가방에서도 컵라면이 나와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가방에서 발견된 손전등 역시 고장난 것으로, 동료들에 의하면 김씨는 스마트폰 불빛으로 작업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6일 만에 정부에서도 대책을 내놨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과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태안화력발전소 사고 관련 관계부처 합동대책’을 발표했다.

이 장관은 “사업장 전반에 대한 특별감독을 실시해 법 위반 사실이 확인될 경우 책임자 처벌은 물론 법 위반 사항들을 모두 개선하겠다”면서 “전국 석탄화력발전소 12곳에 대해 안전점검을 실시해 하청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안전조치 의무 이행 실태를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성 장관은 “석탄 운반용 컨베이어벨트 등 위험설비 점검 시 ‘2인 1조’ 근무를 시행하고, 낙탄 제거 등 위험 작업은 설비가 정지한 상태에서 시행하도록 조치하겠다”면서 “원청과 협력사, 노동자, 시민단체,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안전경영위원회를 발전소별로 구성해 개선 과제가 이행되는지 점검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책이 지금까지도 이행되지 않은 부분들을 점검하겠다는 것으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기 위한 개정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에 있다. 도급인이 사업장에서 작업하는 모든 근로자의 안전 보건 조치 의무를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열힌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고 김용균 씨에 대한 애도를 표하고 “지난 11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정부 입법으로 국회에 송부했다”면서 “도급인의 책임범위 확대, 유해 작업 도급 금지, 위험성 평가 시 노동자 참여 보장 등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정청은 적극 협력해 해당 법안이 조속히 국회에서 처리되도록 노력해 달라”면서 “정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국정과제로 추진해왔다. 사각지대를 다시 점검하고 노사 유관 기관 등과 머리를 맞대 해결 방안을 마련하길 당부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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