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하는 연말연시, 일회용 플라스틱 없는 삶에 도전했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무척 오랜만이었다. 텀블러를 들고 출근길에 나선 것 말이다. 과거에도 이런저런 이유 및 결심으로 텀블러나 물통을 들고 다닌 적이 있었지만,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텀블러를 가져온 김에 사무실로 출근할 때면 종종 들리곤 하는 카페로 향했다. 조금은 우쭐한 마음과 함께 점원에게 텀블러를 건네주며 여기에 담아달라고 요청했다.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며 담아달라고 하는 손님이 많은지 묻자 “많지는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커피가 담긴 텀블러를 받아 다시 출근길을 이어갔다. 그런데 잠시 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텀블러 뚜껑을 꽉 잠그지 않아 커피가 샌 것이다. 둘째 날도 쉽지 않은 시작이었다.

간편한 식사의 대표주자인 샌드위치. 하지만 플라스틱 없이는 샌드위치 먹는 것도 쉽지 않다.
간편한 식사의 대표주자인 샌드위치. 하지만 플라스틱 없이는 샌드위치 먹는 것도 쉽지 않다.

◇ 샌드위치로 점심 때우기, ‘실패’

이내 점심시간이 됐고, 개인적으로 처리할 업무가 있어 식사는 간단히 때우기로 했다. 일회용 플라스틱으로 인해 평소 선호하는 도시락은 일찌감치 후보군에서 제외됐고, 샌드위치가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가까운 편의점 샌드위치 코너엔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샌드위치만 남아있었다.

그래도 샌드위치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편의점을 나와 인근 프랜차이즈 빵집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곳의 샌드위치 역시 모두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있었다. 유난히 더 맛있어 보이는 샌드위치를 뒤로 한 채 또 다른 편의점으로 향했다. 간단하게 때우려던 점심이 복잡해졌다. 그러나 그곳에도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샌드위치만 있었고, 샌드위치를 포기하기로 했다. 결국 점심은 편의점 김밥으로 때웠다.

플라스틱이 없으면 약도 먹기 어렵다.
플라스틱이 없으면 약이나 영양제를 먹기도 어렵다.

오후가 깊어지자 나른함이 찾아왔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피로회복에 좋은 간장약이다. 물을 한 컵 떠와 약을 집어 들었다. 그때 바스락 소리와 함께 또 다시 자각했다. 약도 플라스틱으로 포장돼있었다.

퇴근 이후 집에선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다. 물은 끓여놓은 보리차로 마셨고, 저녁은 평범한 집밥으로 먹었다. 2018년의 마지막날인 만큼 아내와 함께 가벼운 반주도 곁들였다. 소주와 맥주는 병으로 판매하고 있는 것이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대형마트는 그야말로 플라스틱의 천국이다. 플라스틱을 배제하고 쇼핑을 하려면, 선택의 폭이 크게 줄어들었다.
대형마트는 그야말로 플라스틱의 천국이다. 플라스틱을 배제하고 쇼핑을 하려면, 선택의 폭이 크게 줄어들었다.

◇ 대형마트는 일회용 플라스틱 천국

2019년의 첫날인 1월 1일. 이날로 딱 7개월이 된 딸 때문에 일출여행은 엄두도 못 냈다. 대신 가까운 곳에 사는 부모님 댁에서 아침식사를 함께한 뒤, 오후엔 멀지 않은 쇼핑몰과 대형마트를 가는 것으로 휴일을 보내기로 했다.

부모님 댁에서 식사를 하고, 김치를 조금 얻어왔다. 보기만해도 맛있는 김치를 플라스틱 반찬통에 담아주셨다. 일회용 플라스틱은 아니기에 받아왔지만, 완전하게 플라스틱 없이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체감했다.

이후 쇼핑몰에 도착했다. 우선 커피를 한잔 샀다. 돌아다니기 위한 준비다. 이번에도 미리 준비해간 텀블러에 커피를 담았다. 이곳저곳 산책을 겸한 구경을 마친 뒤 저녁거리와 생활용품 등을 구입하기 위해 쇼핑몰 내 대형마트로 향했다.

일회용 플라스틱 천국이었다. 제철 과일인 딸기는 플라스틱 없이 살 수 없었고, 고기와 생선도 대부분 플라스틱에 담겨 있었다. 고추장, 간장, 케첩 등도 마찬가지였다. 주방세제가 거의 떨어져서 구입하려 했지만, 이 역시 플라스틱 때문에 사지 못했다. 비닐에 담긴 리필용을 판매하고 있으나, 세제를 따라내는 입구는 플라스틱이었다.

플라스틱을 배제하니 그토록 물건이 많다는 대형마트에서도 좀처럼 살 게 없었다. 결국 이날 저녁 메뉴로 결정한 것은 볼로네제 파스타였다. 소스는 병에 들어있는 것을 샀고, 면은 비닐로 포장된 것을 사둔 것이 있었다.

장보기를 마친 뒤 잠시 쉴 겸 집 근처 카페에 들렀다. 앞서 텀블러를 사용한 상태여서 세척이 필요했는데, 마침 이곳엔 텀블러 세척기가 설치돼있었다. 처음엔 다소 생소했지만, 사용 방법은 간단했다. 텀블러를 뒤집은 상태로 올려놓은 뒤 꾹 누르면 내부에 물이 뿌려졌다. 세제를 이용해 완벽하게 설거지를 한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깨끗해졌다.

한 카페에 설치된 텀블러 세척기. 생각보다 잘 닦여 놀랐다.
한 카페에 설치된 텀블러 세척기. 생각보다 잘 닦여 놀랐다.

◇ 5분도 안 쓰는 일회용 플라스틱이 수백년을 떠돈다

어느덧 ‘일회용 플라스틱 없이 72시간 살기’ 마지막 날인 2일 아침. 오전 9시까지 계획했기에 사실상 끝난 것과 다름없었지만 이날도 텀블러를 가방에 챙겼다. 그리고 아침 발제회의가 끝난 뒤 출입처 근처 한 카페에서 커피를 샀다. 물론 커피는 텀블러에 받았다. 그렇게 72시간의 체험은 다행히 실패하지 않고 끝났다.

72시간을 일회용 플라스틱 없이 보내며 느낀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플라스틱 없이 사는 것은 정말 불가능하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플라스틱은 인류에 있어 혁명적인 발명품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주 조금의 편안함을 위해 너무나도 많은 플라스틱을 남용하고 있다. 무책임한 편안함이다. 그리고 그 무책임은 감당할 수 없는 결과로 돌아오고 있다.

일상에서 조금만 신경 쓰고 조금의 불편함만 감수하면, 플라스틱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와 나 자신을 위한 일이다. 작은 실천부터라도 이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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