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단독회담을 마치고 함께 이동 중인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AP-뉴시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단독회담을 마치고 함께 이동 중인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AP-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북측 인원이 일부 복귀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의 대북추가제재안 발표 직후 철수를 통보하더니, 트럼프 대통령이 철회를 발표하자 바로 복귀한 셈이다. 연락사무소 복귀결정과 추가 대북제재안 철회 사이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북한이 관계단절과 무력대치의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은 분명하다.

김창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부소장은 그래서 “불씨가 남아 있다”고 표현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 22일 북한은 실무급 채널을 통해 철수를 통보했다. 중요한 현안일 때는 부소장 이상 급을 호출했던 것과 달랐으며, 남측의 잔류에 상관하지 않겠다고 했다. 언제든 복귀할 수 있다는 암시였으며, 여전히 협상에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받아들였던 이유다. 실제 북한이 철수통보 3일 만에 다시 복귀하면서 그의 판단이 정확했음이 판명됐다.

◇ 북한의 연락사무소 복귀와 트럼프의 악재탈피

그 사이 미국 정국을 뒤흔들만한 사건이 발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던 ‘러시아 스캔들’이 증거가 없다고 결론이 난 것이다. 러시아 커넥션을 의심하며 끊임없이 공세를 펼쳤던 민주당과 미국 주류언론들은 입지가 위태로워졌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가도에 탄력을 받게 됐다. 이를 바탕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추진해왔던 주요 정책들을 힘 있게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북미 정상 간 탑다운 협상이 재개될 가능성이 엿보인다. 사실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했던 정치적 상황이었다. 정상회담 당일 터진 측근 마이클 코언 변호사의 청문회 증언이 결정적이었다. 대북협상에 대한 미국 내 회의적 시각을 돌파해 내기에는 정치적 입지가 탄탄하지 못했고, 끝내 협상결렬로 이어졌다. 하지만 불안요소들을 정리한 만큼, 성과를 내기 위해 대북협상에도 속도를 낼 것이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다. 북한의 공동연락사무소 복귀에 이어 북미 협상재개의 두 번째 전조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뢰관계가 여전하다는 점에서 ‘탑-다운’ 방식의 협상이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은 ‘비핵화 빅딜’ 등 북한을 압박하면서도 김 위원장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비난을 피했으며, 오히려 좋은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북한은 최선희 부상을 통해 “두 정상 간 케미는 이상할 정도로 훌륭하다”고 했다.

또한 최 부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이 핵 활동을 재개하면 가역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이른바 ‘스냅백 조항’을 넣자고 제안했지만 폼페이오 장관과 볼턴 보좌관이 반대했다고 밝힌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미국 내 강경파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난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방식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 촉진자 문재인의 ‘탑다운’ 재추진

문재인 대통령은 방한한 필립 벨기에 국왕과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여정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은 방한한 필립 벨기에 국왕과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여정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했다. /뉴시스

무엇보다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을 ‘촉진자’로 인정했다는 점이 주목할만한 대목이다. 타스 통신은 “문재인 대통령은 중재자가 아닌 플레이어”라는 최 부상의 발언을 보도했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을 부정했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하지만 전체 발언의 맥락은 남한은 미국과 동맹이기 때문에 당사자 격으로 될 수 있는 위치이며, 그래서 중재자 역할 대신 촉진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문정인 특보가 발언했는데 이해할만 하다는 취지였다.

청와대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탑-다운’식 담판으로 비핵화 협상을 계속 유도하고 있다. 미국 내 주류사회에서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각이 여전한 만큼, 단시간 내에 협상을 타결시키는 가장 효율적 방식이 ‘탑-다운’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협상중재와 관련해 말을 극도로 아끼고 있지만 “추후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물밑 접촉이 진행되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앞서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은 “협상이 지연되는 것이 장기화될수록 불확실성이 확대되기 때문에 방지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며 “좋은 방향으로 한미 간 긴밀히 공조해 나가면서 노력하면 좋은 결실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아울러 “남북미 3국 정상 간의 유대, 신뢰, 대화 관계를 계속 유지해 나가야 된다”면서 “하노이 합의 불발로 탑다운 방식의 한계라는 지적을 하지만 너무 성급한 판단이라고 본다. 3국 정상 간의 이러한 노력이 없었다면 절대 현재까지의 상태에 이룰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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