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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씨네
[MOVIE 비하인드] ‘기생충’,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19. 06. 12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기생충’ 비하인드스토리를 소개한다. (사진은 왼쪽부터) 최우식·송강호·장혜진·박소담.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기생충’ 비하인드스토리를 소개한다. (사진은 왼쪽부터) 최우식·송강호·장혜진·박소담.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한국 영화 역사상 최초로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이 무서운 흥행 기세를 이어가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와 배우들의 열연, ‘봉테일’ 봉준호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까지. 3박자를 고루 갖춘 ‘기생충’은 ‘상 받은 영화는 재미없다’는 편견을 깨고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입증해냈다.

봉준호 감독은 칸 공식 상영에 앞서 전 세계 취재진에게 ‘스포일러 방지’ 편지를 남겨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국내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된 날에도 봉 감독은 “관객들이 생생하게 영화를 즐겼으면 좋겠다”면서 스포일러 자제를 당부했다. 개봉 전날 시작된 인터뷰에서도 그는 “이 부분은 2주 후에 써줬으면 좋겠다”면서 스토리 노출을 최대한 막았다.

약속한 2주가 지났다. 그리고 무려 700만의 관객이 ‘기생충’을 관람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그동안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어 전하지 못했던 ‘기생충’ 속 비하인드스토리를 공개한다.

‘기생충’은 전원 백수인 기택(송강호 분)네 장남 기우(최우식 분)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이선균 분)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이야기다. (*이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오른쪽)이 박명훈 캐스팅 비화를 털어놨다. /박명훈 인스타그램
봉준호 감독(오른쪽)이 박명훈 캐스팅 비화를 털어놨다. /박명훈 인스타그램

◇ 봉준호 “가장 어려웠던 캐스팅? 근세 역의 박명훈”

쏟아지는 관심 속 스스로 정체를 숨겨야만 했던 슬픈 이가 있다. 칸 레드카펫은 물론, 포토콜 행사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공식 상영이 이뤄졌던 뤼미에르 극장에서도 기립박수가 시작되기 전 자리를 떠야 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언론배급시사회나 간담회 등 어떤 행사에도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스포일러였던 배우 박명훈의 이야기다.

박명훈은 ‘기생충’에서 박사장네 입주 가사도우미 문광(이정은 분)의 남편 근세 역을 맡아 소름 끼치는 열연을 펼쳤다. 근세는 빚쟁이들에게 쫓겨 박사장네 집 지하실에서 숨어살고 있는 인물이다. 극 중반부에 모습을 드러내는 근세는 등장과 동시에 영화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버리며 극의 반전을 이끈다. 봉준호 감독이 최후의 순간까지 꽁꽁 숨겨둘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봉준호 감독은 근세 역의 캐스팅이 가장 어려웠다고 밝혔다. 봉 감독은 “제일 마지막 캐스팅이 근세였다”며 “가장 어려운 캐스팅이었다. 정말 독특한 역이지 않나. 캐스팅의 마지막 화룡정점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멀쩡한 사람인데 귀신 취급을 당하는 사람”이라며 “연기도 잘해야 하고 이미지나 느낌도 되게 중요했다. 알려지지 않은 얼굴이면 좋겠고, 유령의 이미지나 독특한 목소리의 톤을 가진 인물을 원했다”고 박명훈을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봉 감독은 박명훈의 존재를 숨겨야만 했던 것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표했다. 그는 “같이 열심히 잘 했는데, 무대인사도 같이 못하고 외부에 노출을 못하고 있어서 보면 안쓰럽다”며 “어느 시점이 되면 박명훈이 꼭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기생충’에서 부부로 호흡을 맞춘 장혜진(왼쪽)과 송강호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기생충’에서 부부로 호흡을 맞춘 장혜진(왼쪽)과 송강호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 뤼미에르 극장 뜨겁게 달군 명장면 #2

‘기생충’은 프랑스 현지 시각으로 지난달 21일 칸 국제영화제 메인 상영관인 뤼미에르 극장에서 공식 상영됐다.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 ‘기생충’ 출연 배우 송강호·이선균·조여정·최우식·박소담·장혜진·이정은 등이 참석한 가운데 뤼미에르 극장 2,300석은 관객들로 가득 찼다.

당시 영화 상영이 시작되자 뤼미에르 대극장은 웃음과 탄성의 연속이었다. 특히 영화 상영 중 이례적으로 두 번의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영화가 끝난 후에는 더 격한 반응이 이어졌다. 상영관 불이 켜지기 전부터 1분 여간 지속된 박수는 불이 켜지고 7분간의 기립 박수로 이어졌다.

영화 상영 중 두 번의 박수를 이끌어낸 장면은 무엇이었을까. 송강호에 따르면, 하나는 기택이 활약한 장면이고, 또 다른 하나는 문광이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신이었다. 송강호는 “2,300명의 관객이 동시다발적으로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고 놀라워했다.

‘기생충’에서 연교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조여정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기생충’에서 연교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조여정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극중 기택은 박사장네 가사도우미 문광이 결핵에 걸린 것처럼 보이게 꾸며 연교(조여정 분)로 하여금 문광을 내쫓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기택은 연교가 자신의 말을 믿게 하기 위해, 문광이 버린 휴지에 핫소스를 붓고 피인 척 위장해 연교에게 보여준다. 빨간 액체가 묻은 휴지를 쓰레기통에서 들어 올리는 기택의 진지한 표정과 소스라치게 놀라는 연교의 모습이 교차되며 코믹한 상황을 연출한다.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로 완성된 이 장면이 첫 번째 환호를 이끌어냈다.

두 번째 박수는 문광이 지하실 계단으로 굴러떨어지는 장면에서 터져 나왔다. 박사장 집에서 쫓겨난 문광이 지하실에 숨어있는 남편 근세를 찾아온 뒤부터 영화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기택네 가족과 몸싸움을 하던 중 문광이 지하실 계단으로 처참하게 굴러떨어진다. 다소 섬뜩한 장면이지만, 뤼미에르 극장에서는 뜨거운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송강호는 “사람이 굴러떨어지면 죽었나 걱정이 앞서야 하는데, 그 사람들(뤼미에르 극장의 관객들)이 갖고 있는 극적 카타르시스가 영화의 완성도와 맞물려서 터져버리더라”며 “살다 살다 이런 반응은 처음이었다”고 회상했다.

‘기생충’ 전원 백수 가족의 장남 기우로 분한 최우식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기생충’ 전원 백수 가족의 장남 기우로 분한 최우식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 절묘한 번역에 대만 배급사 직원도 빵 터졌다!

봉준호 감독은 칸으로 떠나기 전 진행된 제작보고회에서 ‘기생충’에 대해 “한국적 뉘앙스로 가득 찬 영화”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생충’은 해외 관객들과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고,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러한 결과는 한국 정서에 맞는 대사들을 외국인들도 이질감 없이 이해할 수 있게 번역한 달시 파켓의 힘이다. ‘옥자’를 제외한 모든 봉 감독의 영어 자막을 맡았던 달시 파켓은 ‘기생충’의 독특하고 절묘한 뉘앙스를 그대로 살린 절묘한 자막으로 힘을 보탰다. 대표적인 예가 ‘서울대학교’는 ‘옥스퍼드대학교’로, ‘짜빠구리’는 라면과 우동을 섞은 ‘람동’으로 번역한 것이다. 또 몰락한 자영업자를 대표하는 ‘대만 카스테라’는 ‘타이완 케이크 숍’으로 표현했다.

특히 ‘타이완 케이크 숍’은 대만 배급사 직원들의 격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는 후문이다. 봉준호 감독은 “전 세계에 배급사가 정해져있는데, 대만 배급사 직원들이 ‘타이완 케이크 숍’에서 빵 터졌다더라”고 밝혔다. 그는 “대만에서도 그 가게를 오픈했다가 망한 사례가 많았다고 한다”며 “서로 놀리기도 하고 농담도 많이 한다고 들었다”며 웃었다.

‘기생충’ 속 피자 박스 접기 영상은 진짜였다. (사진은 왼쪽부터) 최우식·송강호·장혜진·박소담.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기생충’ 속 피자 박스 접기 영상은 진짜였다. (사진은 왼쪽부터) 최우식·송강호·장혜진·박소담.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 ‘피자 박스 빨리 접는 방법’ 영상은 진짜였다

기택 가족은 구성원 모두 고정 수입이 없는 백수다. 반지하에서 살아가는 기택 가족은 오순도순 모여 앉아 피자 박스를 접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잇는다. 하지만 도무지 속도가 나지 않자, 장남 기우는 유튜브에서 ‘피자 박스 빨리 접는 방법’ 동영상을 찾아온다. 해당 동영상을 통해 팁(?)을 얻은 기택 가족은 빠른 속도로 할당량을 완수한다.

영화에 등장한 동영상은 실제 유튜브에 게재된 것으로 확인됐다. ‘아주 빠르게 피자 박스 만들기(Super fast pizza box making)’라는 제목의 영상은 2015년 게재된 것으로 피자 가게 여성 직원이 매우 빠르고 능숙하게 피자 박스를 접는 모습이 담겨 있다. 제작진은 해당 영상을 영화에 담기 위해 동영상을 올린 게재자에게 직접 연락을 취했고, 정식 계약 절차를 밟았다. 봉준호 감독은 “캐나다의 유명한 사람”이라며 “(게재자가) 캐나다에 ‘기생충’이 개봉하면 보러 가겠다고 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