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변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4월 중순,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에 뭔가 이상이 생긴 듯하다는 와병설로 시작된 논란은 사망설과 권력 이상설로 번지며 파장을 키웠다.

급기야 지난 25일에는 김정은 부고를 알리는 관영 조선중앙TV의 보도물을 본뜬 5분 분량의 동영상마저 떠돌면서 많은 국민을 혼란에 빠트렸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건강이나 신변 문제를 둘러싼 이런저런 설과 논란이 있었지만 이번의 경우 전례 없이 광범위하고 지속적으로 이어진다는 특징이 있다. 

사태의 촉발은 북한 국가주석 김일성(1994년 7월 사망)의 108회 생일을 맞아 그의 시신이 미라 처리돼 안치된 평양 금수산기념궁전에서 열린 참배 의식에 김정은이 불참하면서 빚어졌다. 국내 일부 대북 매체와 유튜버들이 신변이상설을 점치기 시작했고, 일부 대북 전문가가 가세하면서 사태를 키웠다.

청와대와 우리 정부 당국은 신변이상설이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자 김정은의 건강에 이상이 없다는 정보 판단을 언론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설이 이어졌고,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주변국에까지 김정은 유고설이 퍼져 나갔다. 

결정적인 건 미국 CNN 방송이 지난 20일 “김정은이 수술 후 심각한 위험에 빠진 상태”라고 보도하면서다. CNN은 ‘이 사안을 직접 알고 있는 미국 관리’를 인용해 소식을 전함으로써 신빙성을 높이려 했다. 정부 발표에 한동안 주춤하던 한국 언론도 CNN 보도 및 이와 궤를 같이하는 서방 매체들의 기조에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일부 정치권 인사가 나섰고, 탈북 인사와 유튜버들이 연일 ‘단독’ ‘특종’ 등의 주장을 내세우며 김정은 신변이상설을 확산시키는 데 주력했다. 

현재까지의 상황을 종합해보면 김정은 신변이상설은 아무런 근거도, 이유도 찾을 수 없는 뜬소문에 불과하다.

김정은이 4.15 행사에 불참한 것은 분명 이상한 동향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현재까지 북한이 배경을 밝히거나 우리 정부, 해외 정보 당국이 파악한 내용은 전혀 없다. 그렇다면 그 이유를 파악하거나 믿을 만한 관련 첩보 등을 수집해 분석하는 것이 우선이다. 호둣속 같은 북한 체제의 특성상 우리와 서방의 시각이나 판단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이 벌어져왔다. 단순히 행사에 불참한 사실 하나만으로 일파만파의 사망설과 권력 이상설을 확산시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북한 최고지도자를 둘러싼 신변이상설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2년 김정은 집권 이후 40여 일간 공개 활동에 공백이 생겼을 때 이런저런 소문이 나왔지만, 과체중에 따른 무릎과 족부 수술 때문으로 드러났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팡이를 짚고 복귀했지만 통치 활동에 지장이 있거나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건 아니었다는 게 우리 정보 당국의 판단이다. 김정일이 사망한 2011년 12월 김정은은 27세의 나이에 권력을 넘겨받았고, 우려의 시각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보다 북한 정권의 권력을 원만하게 이끌고 있다”는 것이 한국과 서방 정보 당국의 공통된 판단이다.

김일성·김정일 집권 때도 마찬가지다. 1986년 11월 중순 서울에선 ‘김일성 피격 사망’이란 충격적 보도가 불거져 국제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북한 국가주석 김일성이 암살됐다는 상황 판단에 따라 대통령 주재 긴급 각료회의가 열렸다. 북한군 최전방 부대에 조기(弔旗)가 게양됐다거나 김일성의 죽음을 의미하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다는 국방부 보고가 이어지면서 사망은 사실로 믿어졌다.

하지만 보도 이틀 뒤인 같은 달 18일 김일성은 평양을 방문한 몽골 인민혁명당 서기장 잠빈 바트뭉흐를 맞기 위해 순안비행장에 등장했다. 미군 감청부대의 잘못된 첩보가 진원이라는 주장부터 국방부 책임론, 북한 공작설 등이 쏟아졌지만, 미스터리로 남았다. 한국 언론사에는 손꼽히는 대형 오보 사태로 남아있다.

2008년 8월 중순 불거진 김정일 건강이상설은 북한 권력 구도와 관련해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국가정보원은 “순환기 계통 이상으로 쓰러졌다”고 보고했고, 청와대 고위 인사는 “혼자 양치질은 할 수 있을 정도”라고 말해 정상적 통치는 불가능한 상황일 수 있음을 내비쳤다. 마침 북한 정권 수립 60주년인 9·9절 행사에 김정일이 불참하면서 신변이상설은 증폭됐다. 김정일 사망을 암시하는 통화 내용이 대북 감청망에 포착됐다는 소문까지 나오면서 혼선을 키웠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같은 해 11월 공개 활동을 재개했고, 아들 김정은으로 후계권력을 넘기는 작업을 본격화했다.

물론 대(代)를 이어가며 되풀이되는 최고 지도자에 대한 유고설이나 건강이상설의 근본적인 원인은 북한 체제의 폐쇄성이다. 여느 국가처럼 대통령과 총리의 공개일정이나 건강상태가 공개되고, 언론에 의해 투명하게 드러날 수 있다면 루머나 각종 미확인설에 시달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 체제에 이를 기대하기는 무리다. 그렇다면 대북 문제를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과 인식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정부 당국이 믿을 만한 대북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하고, 언론과 오피니언 리더층이 검증과 분석을 통해 국민이 신뢰하고 안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번 사태의 경우 정보 당국의 판단이 기준이 되는 것이 합당하다. 청와대와 정부 당국자들이 제공하고 브리핑하는 “김정은 신변에 이상이 없다”거나 “강원도 지역에서 간부를 수행하고 공개활동 중”이라는 내용이 가장 신뢰할 만한 정보이며, 모든 판단과 논의의 기초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문재인 정부의 대북인식이나 정책 노선에 대한 국민 여론의 호불호가 갈리는 게 사실이지만, 국가 정보기관이 제공하는 믿을만한 정보에 따라 청와대와 정부 당국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건 분명하다. 이상 조짐이 있는데도 이를 무시하거나 왜곡하기에는 정부나 관계 당국 모두 엄청난 부담이 따른다. 김정은 관련 정보의 경우 한미 정보 당국이 판단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포인트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로 모두가 지치고 힘든 시간이다. 이런 와중에 불거진 김정은 유고설은 우리 사회와 여론을 더욱 어수선하게 한다. 우리에겐 생존의 문제이거나 동족의 운명과 관련된 이슈인 북한 관련 사안을 흥밋거리로 여기는 미국과 중국·일본 등 유관국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는 안타깝다.

미확인 보도와 설에 흔들리는 국내 일부 언론과 오피니언 리더층, 일부 탈북 인사와 대북매체·유튜버 등의 태도도 유감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우려와 조바심 수준의 낭설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아예 가짜뉴스와 동영상까지 조작해 유포하는 상황은 병적인 우리 사회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일각에서 집단지성의 마비로까지 치닫는 국면이 펼쳐지는 건 정말 걱정스럽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