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폐기된 법안이 1만5,000여건에 달한다. 이 중에는 법안이 통과될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지만,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1대 국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처럼 많은 법안이 국회에서 잠자는 이유는 이해당자들간의 첨예한 대립 때문이다. 일부 법안은 이해당사자들의 물밑 로비로 논의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폐기되기 일쑤다. <시사위크>는 국회에 계류된 법안이 왜 처리되지 못했는지 그 과정을 쫓고자 한다. 법안이 발의된 배경과 국회에서 왜 잠만 자야 하는지를 추적했다.

현재 국회에는 제대군인의 호봉이나 임금을 결정할 때 뿐만 아니라 ‘승진 심사’시에도 군복무 기간을 근무경력에 포함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제대군인지원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그래픽=김상석 기자
현재 국회에는 제대군인의 호봉이나 임금을 결정할 때 뿐만 아니라 ‘승진 심사’ 시에도 군복무 기간을 근무경력에 포함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제대군인지원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그래픽=김상석 기자

시사위크=김희원 기자  4·7 재보궐선거가 끝난 이후 정치권에선 때아닌 군가산점 부활 논란이 불거졌다. ‘이대남’(20대 남성) 표심 잡기 경쟁이 벌어지면서다.

일부 대선주자는 군 제대 시 사회출발자금 3,000만원을 지급하자는 공약을 내놓는 등 ‘이대남’ 표심 잡기에 열을 올렸다. 일부 의원이 발의한 제대군인지원법 개정안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군가산점 부활 논란에 불이 붙었다.

군가산점은 제대군인이 취업보호실시기관의 채용시험에 응시하는 경우, 시험 만점의 5% 범위 안에서 가점 혜택을 부여하던 제도다. 그러나 1999년 12월 23일 헌법소원심판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로 위헌 결정이 났다. 이후 채용시험 응시 상한 연령을 3세 범위 안에서 연장하는 응시상한 연령 연장제도로 대체됐고, 채용된 제대군인의 호봉이나 임금을 결정할 때 군복무 기간을 근무경력에 포함할 수 있도록 했다.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과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15일과 22일 각각 제대군인의 호봉이나 임금을 결정할 때 뿐만 아니라 ‘승진 심사’시에도 군복무 기간을 근무경력에 포함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제대군인지원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는 사실상의 군가산점 부활이며 또 다른 차별을 초래할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찬성 목소리도 거세다. 이들은 ‘승진 심사’시 군복무 기간을 근무경력에 포함하는 것은 당연하고 궁극적으로는 채용시험에서도 폐지됐던 군가산점이 다시 부활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군 생활로 시간 낭비 생각 안들도록 해야”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20일 “우리나라가 분단국가이면서 의무복무제를 유지하고 있는 한 어떤 방식으로든 보상은 해줘야 하고 승진 심사 시에도 군복무 기간을 근무경력에 포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국가가 군 복무자들에게 보상을 해줄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 대표는 “궁극적으로 폐지된 군가산점 제도는 반드시 부활돼야 한다”며 “군가산점을 폐지할 때 찬성론자들은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는 몇 사람들만 혜택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무슨 의미가 있냐고 했지만 그렇지 않다. 군가산점은 국가에서 군 복무에 대해 인정해준다는 큰 의미를 담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제대군인지원협회 김한규 사무총장도 같은 입장을 밝혔다. 김 사무총장은 국방부가 국방개혁 2.0에 따라 2017년 61만8,000명이던 병력을 2022년까지 50만명으로 축소할 계획인 것과 대체역 심사위원회를 가동시켜 지난해 6월 말부터 종교적 신념(양심의 자유) 등에 따른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대체역 편입) 접수를 받고 있는 점 등이 병역 기피 문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 사무총장은 채용시험 때는 물론이고 채용된 후 직장 승진 심사 등에서 군가산점이 강화돼야 현재의 사회적 분위기로 조성된 군 기피 분위기를 막을 수 있다고 역설했다.

김 사무총장은 “지금 같은 시대적 상황에서 군에 가야만 혜택을 많이 받는다는 인식을 심어주지 않으면 군대에 가기 싫으면 안가도 되고 군을 우습게 보는 분위기가 확산될 것”이라며  “‘군에 다녀온 사람들은 너무 혜택이 많다. 나도 가야 되겠다’ 이런 정도의 생각을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군 복무자와 군대를 가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 모든 것을 똑같이 적용하면 의미가 없다. 차별화가 돼야 한다”며 “채용시험과 채용된 후 승진 심사 등에서 군복무자들에 대해 가산점을 더 강화시켜야 군대에 가려고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대 국회 후반기 국방위원회 간사와 국방부 차관을 지낸 백승주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석좌교수는 채용 시 군가산점은 위헌 결정으로 폐지됐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부활되는 것은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백 교수는 대신 승진 심사 시 군복무 기간을 인정해주는 방식 등을 통해 군복무자들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 교수는 “호봉이나 임금을 결정할 때 뿐만 아니라 승진 심사 때도 인정해 주는 것이 맞다고 본다”면서 “군에 갔다오면 군에 가지 않은 사람은 같은 나이임에도 대리, 과장을 할 때 자신은 신입 직원으로 입사해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데, 승진 호봉에 가산해주면 그런 부분이 없어지고 병역 의무를 수행하는데 상당히 좋은 심리적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을까 한다”고 주장했다.

백 교수는 그러면서 이 문제를 여성 차별, ‘젠더 문제’로 바라봐서는 안된다고 역설했다. 백 교수는 “이 문제에 여성에 대한 차별, 젠더 문제를 끌어들이는 것은 옳지 않고 젠더 문제가 아니라 전체 패밀리 문제로 보면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문제다”며 “여성에 대한 차별이 아니라 군에 다녀온 아들을 둔 부모에 대한 배려도 된다”고 밝혔다.

이어 “여성들과 군에 가지 않은 사람들이 심각하게 불이익을 받게 된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논란을 극복하고 폐지된 군가산점이 부활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국가가 어느 정도 개입해서 군 복무자들에게 인센티브를 자꾸 만들어 줘야 한다”며 “군 생활로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우리 사회의 공공의 이익을 위해 시간을 보낸 군복무자들에 대해 배려하는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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