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폐기된 법안이 1만5,000여건에 달한다. 이 중에는 법안이 통과될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지만,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1대 국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처럼 많은 법안이 국회에서 잠자는 이유는 이해당자들간의 첨예한 대립 때문이다. 일부 법안은 이해당사자들의 물밑 로비로 논의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폐기되기 일쑤다. <시사위크>는 국회에 계류된 법안이 왜 처리되지 못했는지 그 과정을 쫓고자 한다. 법안이 발의된 배경과 국회에서 왜 잠만 자야 하는지를 추적했다.

시사위크는 사회 각계 인사들로부터 합리적인 군복무 지원·보상책에 대해 들어봤다./그래픽=김상석 기자
시사위크는 사회 각계 인사들로부터 합리적인 군복무 지원·보상책에 대해 들어봤다./그래픽=김상석 기자

시사위크=김희원 기자  남북 북단 상황인 우리나라는 병역의무에 관해 강제징집주의를 원칙으로 지원병 제도를 가미하고 있다. 군복무 문제는 그동안 일부 계층의 편법 군면제 논란, 군대 내 인권 침해, 군 의문사 문제 등이 끊임없이 터지면서 군 기피 문화를 만들었다. 인생의 항로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시기인 20대에 군에 가서 시간을 허비한다는 생각까지 겹치면서 군 기피 분위기는 더욱 심화됐다.

이 때문에 군 관련 이슈가 부상할 때마다 제대군인에 대한 충분한 지원·보상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분출됐다. 그러나 이는 여성·장애인 등에 대한 역차별 논란으로 번졌고, 그 실효성을 놓고도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4·7 재보궐선거가 끝난 후 정치권에서 20대 남성, 이른바 ‘이대남’ 표심 잡기 경쟁이 벌어지면서 군가산점 부활 논란이 재점화됐다. 여야 일부 의원은 제대군인의 호봉이나 임금을 결정할 때 뿐만 아니라 ‘승진 심사’ 시에도 군복무 기간을 근무경력에 포함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제대군인지원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역시 찬반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일부는 이 같은 법안은 당연히 필요하고, 궁극적으로 채용시험에서 적용되던 군가산점도 다시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경쟁적 요소가 있는 승진 심사에 군복무 기간을 반영하는 것은 또 다른 방식의 군가산점 부활이며 군미필자에 대한 차별을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 ‘병사 월급 인상, 군인권 개선, 모병제’ 등 해법으로 제시

이 같은 사회적 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합리적 대안은 없을까. 전문가 그룹에서는 많은 사회적 갈등을 초래하는 제대군인에 대한 지원책보다는 군복무 기간 병사 월급 인상, 병영생활 획기적 개선, 모병제로의 전환 등이 더 현실적인 방안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2010년 6월부터 6개월간 여성가족부 의뢰로 병역의무 이행자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 방안 마련에 관한 정책연구를 수행한 바 있는 김선택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가가 재정을 투입해서 병사들의 월급을 현재보다 더 많이 올리면 군에서 생활하는 모든 남성들 전원이 혜택을 보게 된다”며 “제대군인 가산점은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또 군에서 시간을 썩히고 고생한다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없애기 위해서는 군 병영생활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군대 부실 급식 논란 같은 것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미군처럼 3인 1실 혹은 2인 1실과 같은 내무반 개선 작업도 해야 한다”며 “교육 활동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이스라엘 군은 자격증 몇 개를 따게 하고 외국어도 열심히 가르쳐준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 교수는 “군에 가서 자격증을 따고 교육도 받고, 월급도 타고, 그러면 군에 안갈 이유가 없다. 근본적으로는 점점 더 전진해서 징병제가 아닌 모병제로 가야 한다”며 “이 문제를 이렇게 합리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무턱대고 가산점을 준다거나 직책 연관성 없이 승진 시 군경력을 인정해준다거나, 제대하면 돈을 얼마를 주겠다고 하면 피해를 보는 쪽에서 불만이 또 생기고 찬반 양측이 서로 싸움이 나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청년층은 이번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일까. 지난달 12일 24개 청년 관련 단체가 모여 구성한 ‘청년 시국선언 원탁회의’ 김건수 집행위원은 차별적 요소가 있는 채용시험이나 직장 내 승진 시 군가산점 적용보다는 군인권 개선, 군복무 기간 단축, 병사 월급 인상 등의 해결책이 더 실효성 있는 방안이라고 역설했다.

김건수 집행위원은 “군복무 기간 단축, 군 임금 인상, 군대 내 인권 문제 개선을 통해서 안전하고 평등한 군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며 “병사 월급도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계속 상향해서 사회에서 노동자로서 받을 수 있는 임금 수준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집행위원은 “군에 가지 않으면 그 시간에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그 시간에 훨씬 더 자기 계발을 많이 할 수 있다”면서 “그런 문제를 해결해주고 개인의 자유가 박탈당하는 부분들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의무를 수행하도록 하면 군복무로 인한 박탈감이 줄어들고 군복무 보상에 대한 요구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선택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언급한 모병제로의 전환 필요성은 ‘승진 심사’ 시에도 군복무 기간을 근무경력에 포함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제대군인지원법 개정안에 대한 찬반 양측 모두에서도 해법 중 하나로 제시됐다.

(사)제대군인지원협회 김한규 사무총장은 “모병제를 도입하면 제대군인에 대한 지원책을 놓고 나타나는 불만들이 많이 해소될 것”이라며 “당장은 어렵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장비 위주의 구조조정을 하고 모병제로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인구 감소로 징병제로는 이제 한계가 있고, 많은 인원의 월급을 올려주는 것보다 조금만 더 재정을 보태면 전문화된 직업 군인을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도 “당장 해야 될 일은 군복무 청년들의 인권 문제를 개선하고 임금도 최저임금 수준으로 개선하는 문제에 대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라며 “또 인구가 감소하고 있어서 현행 징병제도로는 지금 같은 군사 시스템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단계적으로 어떻게 모병제로 나아갈 것인가 실질적인 논의를 하는 것이 정치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