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폐기된 법안이 1만5,000여건에 달한다. 이 중에는 법안이 통과될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지만,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1대 국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처럼 많은 법안이 국회에서 잠자는 이유는 이해당자들간의 첨예한 대립 때문이다. 일부 법안은 이해당사자들의 물밑 로비로 논의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폐기되기 일쑤다. <시사위크>는 국회에 계류된 법안이 왜 처리되지 못했는지 그 과정을 쫓고자 한다. 법안이 발의된 배경과 국회에서 왜 잠만 자야 하는지를 추적했다.

최근 국회에 제대군인의 호봉이나 임금을 결정할 때 뿐만 아니라 ‘승진 심사’ 시에도 군복무 기간을 근무경력에 포함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제대군인지원법 개정안이 발의됐다./그래픽=김상석 기자
최근 국회에 제대군인의 호봉이나 임금을 결정할 때 뿐만 아니라 ‘승진 심사’ 시에도 군복무 기간을 근무경력에 포함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제대군인지원법 개정안이 발의됐다./그래픽=김상석 기자

시사위크=김희원 기자 제대군인에 대한 처우 개선 필요성이 거론될 때마다 군가산점 부활 논란이 어김없이 이슈로 부상했다. 군가산점 부활 논쟁은 젠더 갈등으로까지 번지기 일쑤였다.

군가산점은 제대군인이 취업보호실시기관의 채용시험에 응시하는 경우 시험 만점의 5% 범위 안에서 가점 혜택을 부여하던 제도를 말한다.

1999년 헌법재판소에서 군 가산점제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지만 이후에도 군가산점 부활 시도는 계속돼 왔다. 직접적으로 군가산점 부활을 시도한 법안도 발의됐고, 위헌 결정을 의식해 우회적인 방식으로 군가산점 효과를 노린 법안도 발의됐다.

21대 국회에서도 다수의 제대군인지원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그 가운데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과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15일과 22일 각각 발의안 개정안을 놓고 찬반 논쟁이 벌어졌다.

현행 법은 채용시험에서 적용되던 군가산점제가 위헌 결정이 남에 따라 대신 직장에 채용된 제대군인의 호봉이나 임금을 결정할 때 군복무 기간을 근무경력에 포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들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세부적으로는 일부 차이는 있으나 제대군인의 호봉이나 임금을 결정할 때 뿐만 아니라 ‘승진 심사’ 시에도 군복무 기간을 근무경력에 포함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그러나 이는 또 다른 방식의 군가산점 부활이며 군미필자에 대한 차별을 초래할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 “차별로 국가 의무 해결하려는 것”

황수영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팀장은 21일 “호봉이나 임금을 결정할 때에 군복무 기간을 근무경력에 포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제대군인들이 사회에 복귀해 잘 정착할 수 있게 도와주자는 취지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보지만 승진 평가 시 군복무 경력을 포함시킨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간다”며 “다수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비판했다.

황 팀장은 “승진 심사라는 것은 직장 내에서 업무를 어떻게 수행하느냐로 심사하는 것이다. 그런 심사의 취지에 맞게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닌가 한다”며 “이는 또 다른 방식으로 사실상 군가산점을 주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황 팀장은 “갈등을 조장하는 방식으로 혹은 다른 이의 희생이나 차별을 전제하는 방식으로, 국가의 책임은 최소화하고 보상은 손쉽게 해결하려고 하는 방식의 법안이 발의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임금이나 복무여건을 개선하고 군복무자들의 희생의 크기를 줄여가는 방향으로 가는 게 책임있는 정책이라고 본다”고 역설했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도 “채용이나 승진은 경쟁을 하게 되는 영역”이라며 “청년들끼리 경쟁할 때 군필 청년은 더 우대해 주는 방식으로 보상해주겠다는 것은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대표적으로 여성 청년들을 차별해서 그것으로 남성 청년들에게 보상해주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강 대표는 “승진까지 군복무자들에게 이익을 주는 방식을 적용하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우리 사회에서 심각한 여성들에 대한 유리 천장을 확대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어 “군복무에 대한 보상을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나 장애인, 군미필 청년들에 대한 차별로 해소하겠다는 것이 군가산점제를 비롯한 이런 정책들이 가지고 있는 함의라고 본다”며 “군복무 기간 동안의 희생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군복무 기간 동안 최소한 최저임금은 보장하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용석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는 향후 국회에서 승진 심사 시에도 군복무 기간을 근무경력으로 인정해주는 법안이 통과된다면 위헌 판결이 날 수도 있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 활동가는 “헌재에서 군가산점이 위헌 판결난 것처럼 그런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그로 인해 차별 받는 사람들이 문제를 삼게 되면 바로 위헌 결정이 날 것 같다”면서 “군에 복무하는 동안 모두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쪽으로 제도 개선을 고민하는 것이 훨씬 더 맞다고 생각한다”고 역설했다.

이 활동가는 “정부가 비용과 재정을 들여서 국가를 위해서 희생한 청년들을 위한다고 하면 군에 가는 모든 청년들이 그런 혜택을 받아야 한다”며 “그러나 군복무자들이 모두 공기업이나 사기업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대군인에게 승진 심사에서 가산점을 준다고 하면 군에 가지 못하는 여성이나 장애인에 대한 차별일 뿐만 아니라 군 복무 후 자영업을 하거나 농업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전혀 혜택을 못 받는 것”이라며 “군대 다녀온 남성들에 대해서도 차별적인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