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은 영원아웃도어가 지난해 7월 선보인 노스페이스 ‘K-에코 클라이밍 반팔티’, 오른쪽은 ‘모모한패션’ 홍준영 대표의 등록상표 이미지다.
왼쪽은 영원아웃도어가 지난해 7월 선보인 노스페이스 ‘K-에코 클라이밍 반팔티’, 오른쪽은 ‘모모한패션’ 홍준영 대표의 등록상표 이미지다. /영원아웃도어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국내에서 노스페이스 브랜드를 운영 중인 영원아웃도어가 영세 브랜드의 상표와 유사한 디자인을 적용했다가 제품 판매 영구 중단 조치를 내렸다. 유명 브랜드가 디자인 도용을 인정하고 법적 분쟁 없이 원만히 문제를 해결했다는 점은 이례적이지만, 성기학 회장의 ‘아웃도어 신화’는 물론 영원아웃도어의 ‘국가대표 마케팅’에도 아쉬움을 남기게 된 모습이다. 

◇ 이례적인 도용 인정… 영원아웃도어의 의미 있는 ‘결단’

영원아웃도어가 국내에서 전개하고 있는 유명 패션브랜드 노스페이스는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특정 제품들의 영구 판매 중단을 공지했다. 지난해 7월 선보인 제품들에 적용된 디자인이 기존에 등록돼있던 다른 상표와 유사한 것으로 판단했다며 이 같은 조치를 취한 것이다. 

문제의 디자인은 태극기의 건곤감리 문양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K-에코 클라이밍 반팔티 및 볼캡’에 적용돼 판매된 바 있다. 영원아웃도어는 해당 디자인이 ‘모모한패션’이란 영세 브랜드를 운영 중인 홍준영 대표의 등록상표와 유사하다고 인정했다. 실제 해당 디자인과 등록상표를 비교해보면 일부 색상에 차이가 있을 뿐 전체적인 모양이 흡사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오래 전부터 해당 디자인을 준비해오다 2019년부터 제품화해 판매하기 시작한 홍준영 대표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방송 예능프로그램에 연예인들이 협찬으로 입고 나온 것을 나중에 재방송으로 확인하고 문제를 제기했다”며 “영원아웃도어가 곧장 이를 인정하고 조치를 취해 솔직히 놀랐다. 이 같은 조치에 만족하며 추가적인 법적 절차나 문제제기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영원아웃도어 역시 이와 관련해 협의 및 보상 절차가 원만하게 마무리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영원아웃도어의 이 같은 디자인 유사성 인정 및 판매 영구 중단 조치, 그리고 신속하고 원만한 갈등 해결은 상당히 이례적인 행보로 평가된다. 디자인 도용에 따른 갈등은 패션업계는 물론 산업계 전반에서 끊이지 않는 사안이다. 대기업끼리는 물론, 대기업과 중소·영세업체 사이에서 디자인을 도용이 발생하는 사례가 상당하다. 수년간의 법적분쟁으로 이어져 중소·영세업체가 실질적으로 큰 피해를 입거나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제품의 출시 및 판매주기가 짧은 편인 패션업계에서는 이 같은 문제가 더욱 빈번하게 벌어진다.

영원아웃도어 측은 “디자인 도용이 실제 법적으로 인정될지 여부는 복잡한 문제다. 모양이 유사한 것뿐 아니라 그것에 대한 권리를 인정할 수 있는지 등 다양한 것을 따지게 되기 때문”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자인 유사성을 인정하고 선제적·적극적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 같은 결정이 법적다툼 자체가 큰 부담이고 실익을 얻기도 어려운 영세업체를 존중하고, 업계에 좋은 선례를 남기는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 글로벌 본사가 제작한 디자인… 해외에선 지금도 ‘판매 중’

성기학 영원무역그룹 회장은 국내 아웃도어 업계를 개척한 산증인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
성기학 영원무역그룹 회장은 국내 아웃도어 업계를 개척한 산증인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영원무역 홈페이지

다만, 국내 아웃도어 업계에서 영원아웃도어가 차지하는 위상과 해당 제품이 지닌 상징적인 의미 등을 고려하면 디자인 관련 논란에 따른 아쉬움을 지우기 어려워 보인다.

영원아웃도어가 속한 영원무역그룹은 국내 아웃도어 업계를 개척한 입지전적 인물로 평가받는 성기학 회장이 이끌고 있다. 특히 성기학 회장은 ‘노스페이스 신화’라는 수식어로도 유명하다.

노스페이스 브랜드를 국내에서 전개 중인 영원아웃도어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부터 대한체육회 및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단(팀코리아) 공식파트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하계·동계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때마다 국가대표 공식 단복을 제작해 온 영원아웃도어다. 

이와 함께 영원아웃도어는 올림픽 및 아시안게임 마케팅 또한 적극적으로 실시해오고 있으며, 이번에 디자인 유사성을 인정한 제품 역시 도쿄올림픽 마케팅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영세 브랜드의 것과 유사한 디자인이 적용된 것으로 나타나면서 영원아웃도어가 꾸준히 이어온 국가대표 파트너로서의 위상 및 스포츠 마케팅도 빛이 바래게 됐다.

아울러 정확한 책임 소지와 문제의 디자인이 적용된 제품들이 여전히 해외에서 판매되고 있는 점에 대해 물음표가 붙는다.

영원아웃도어 측은 당초 문제가 된 제품이 글로벌 본사 차원에서 기획·제작됐고 영원아웃도어는 이를 국내에서 판매한 한 것뿐이라고 해명했으나, 지속된 취재를 통해 다소 복잡하게 얽힌 내막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유사성을 인정한 문제의 디자인은 글로벌 노스페이스 본사 차원에서 제작됐다. 글로벌 노스페이스 본사는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스포츠 클라이밍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것을 기념해 한국과 미국, 일본, 오스트리아 등 4개 국가의 유니폼을 제작한 바 있다. 이때 각국의 국기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을 적용했고, 우리나라의 경우 건곤감리를 기반으로 삼았다. 이 역시 건곤감리를 모티브로 한 디자인이 가로로 길게 배열돼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 ‘모모한패션’ 측 상표와 유사한 모양이다. 

이어 글로벌 노스페이스 본사는 다시 4개국 클라이밍 대표팀 유니폼을 모티브 삼아 디자인한 의류 및 잡화를 ‘인터내셔널 컬렉션’이란 이름으로 일반 소비자들에게 선보였다. 이때 적용된 디자인 중엔 영원아웃도어 측이 유사성을 인정한 것과 같은 디자인도 포함됐다. 

다만, ‘인터내셔널 컬렉션’은 국내에선 판매되지 않았다. 대신 영원아웃도어는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지급된 단복 등 총 15종으로 구성된 ‘팀코리아 레플리카 컬렉션’을 선보이며 자체적인 마케팅을 진행했다. 또한 글로벌 노스페이스 본사가 제작한 ‘인터내셔널 컬렉션’의 디자인을 ‘K-에코 클라이밍 반팔티 및 볼캡’에 적용해 함께 선보였다. 

즉, 유사성을 인정한 디자인은 글로벌 노스페이스 본사 차원에서 제작됐지만, 이를 들여와 자체 제품에 적용해 제작·판매한 것은 영원아웃도어다.

이처럼 사안이 복잡한 이유는 영원아웃도어와 노스페이스의 다소 특이한 사업구조에 있다. 해외 패션브랜드들은 자체적으로 국내사업을 진행하거나 아예 국내기업이 인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오래 전부터 노스페이스에 납품해온 영원무역의 계열사인 영원아웃도어는 1997년 글로벌 노스페이스 본사와 라이센스 계약을 맺고 국내사업을 자체적으로 진행해오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 판매 중인 노스페이스 제품의 90%가량은 영원아웃도어 차원에서 직접 기획·제작한다. 국내와 글로벌 본사가 이원화돼 운영 중인 것이다.

노스페이스의 유럽지역 공식사이트에서는 영원아웃도어가 유사성을 인정한 디자인이 적용된 ‘인터내셔널 컬렉션’ 중 일부 제품이 여전히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홈페이지 캡처
노스페이스의 유럽지역 공식사이트에서는 영원아웃도어가 유사성을 인정한 디자인이 적용된 ‘인터내셔널 컬렉션’ 중 일부 제품이 여전히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홈페이지 캡처

이 같은 배경으로 인해 이번 디자인 유사 인정 및 후속 조치도 국내 차원에서만 적용된다. 노스페이스 유럽지역 공식사이트에서는 문제의 디자인이 적용된 ‘인터내셔널 컬렉션’이 여전히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영원아웃도어 관계자는 “글로벌 본사에 해당 사안을 공유했다”고 밝혔으나, 별도의 조치가 취해질지 여부나 그 필요성에 대해선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모모한패션’의 상표는 국내에 등록돼있어 글로벌 노스페이스 본사 차원의 법적인 문제 소지 여부를 따지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다만, 해당 디자인이 국내 영세 브랜드가 등록한 상표와 유사하고 이를 영원아웃도어 차원에서도 인정했다는 점에서 노스페이스의 위상에 걸맞지 않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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