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단 10대 판매… 2020년에도 단 15대 팔리며 꼴찌 기록
노 재팬 당시 ‘27% 할인’ 여파… ‘제값 주고 사면 손해’ 여론 생긴 듯
3.5ℓ 자연흡기 엔진, ‘저공해’와 대비… 전시장·센터 수 적어, 접근성↓

혼다코리아가 최근 3년 동안 전시장 및 서비스센터 증설에 미온적인 모습이다. 사진은 혼다 파일럿. / 혼다코리아
혼다의 준대형 SUV 파일럿 모델이 올해 상반기 국내 시장에서 단 10대 판매에 그쳤다. / 혼다코리아

시사위크=제갈민 기자  혼다 파일럿 모델이 국내 수입자동차 시장에서 올해 상반기 단 10대만 판매되면서 대중적인 차량 가운데 가장 적게 판매된 모델에 이름을 올렸다. 상반기에 파일럿보다 적은 판매대수를 기록한 모델은 국내 공식 판매 전 전시차량으로 선(先) 등록된 차량이거나 억대를 호가하는 럭셔리카 또는 스포츠카, 단종 모델 및 모델 체인지 전 재고 판매분, 특정 모델의 파생형 등이다.

사실상 혼다 파일럿이 상반기 수입차 판매 꼴찌인 셈이다. 혼다 파일럿은 올해 1분기 10대를 판매한 후 2분기부터 단 한 대도 판매되지 않았다. 혼다는 2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 바 있다.

앞서 혼다 파일럿은 지난 2020년 연간 판매 15대를 기록하며 수입차 업계 판매 꼴찌 모델로 등극한 바 있다. 당시에는 저조한 성적은 전년(2019년)에 들여왔던 재고가 모두 동나는 바람에 2020년 1~3분기 동안 판매할 수 있는 모델이 없는 상황이 벌어졌고, 여기에 연식 변경 모델(2021년식) 투입까지도 시간이 지체되며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21년식 혼다 파일럿은 2020년 4분기에 국내에 도입돼 현재까지 판매되고 있다. 2020년에는 연간 판매 실적이 15대에 그친 것에 대해 “판매 기간이 짧았다”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었으나, 올해 상반기 단 10대에 그치는 판매 실적은 6개월간 정상 영업을 이어온 결과물이다.

이는 혼다코리아 측이 파일럿 모델의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아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거나, 물량 확보에 차질이 발생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인 ‘노 재팬’ 영향이 일부 남아있다고 지적한다. 단순히 ‘일본 제품 불매’ 영향이 이어진다기 보다는 2019년 하반기 노 재팬 당시 일본 자동차 브랜드에서는 대규모 할인을 통해 판매량 폭락을 막아보려 안간힘을 썼는데, 이러한 마케팅이 반작용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혼다코리아는 2019년 10월과 11월 국내 판매 모델에 대해 큰 폭의 할인을 적용했는데, 파일럿 모델은 정상 가격 대비 약 27%(1,500만원) 할인한 3,990만원에 팔았다. 500대 한정 판매였지만 실제로는 665대가 팔리며 ‘완판’을 기록했다.

이러한 큰 폭의 할인 판매는 단기적으로 판매량 증대를 꾀할 수 있으나, 중고차 시장에서 차량의 시세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저렴하게 차량을 구매한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향후 차량을 매각할 때 기존에 형성돼 있던 시세보다 저렴하게 내놓더라도 손해가 크지 않다. 반대로 정상 가격에 차량을 구매하는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감가상각비가 크게 작용해 단시간에 차량의 가치가 낮아져 손해가 클 수 있다.

결국 ‘제값 주고 사는 사람들만 손해를 크게 보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여론이 형성돼 최근 혼다 파일럿의 저조한 성적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5,000만원 중반에 달하는 비싼 차량을 ‘땡처리’에 가까운 저렴한 값에 던져버린 상황이 오히려 독이 된 셈이다.

혼다코리아는 지난해 파일럿을 도입하지 않고 있다가 결국 4분기에 2021년형을 국내에 출시했다. / 혼다코리아
혼다 파일럿의 국내 판매가격이 6,000만원을 넘어섰다. / 혼다코리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파일럿 모델의 가격을 인상해 차량 가격이 6,000만원 선을 넘어섰다. 수입차 시장에서 혼다 파일럿의 경쟁 모델로 꼽히는 포드 익스플로러나 쉐보레 트래버스 등과 비교할 시 ‘가성비’를 내세우기도 애매해진 상황이다.

또한 혼다 파일럿은 3.5ℓ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을 탑재한 모델만 단일 트림으로 판매 중인데, 이는 현재 자동차 업계가 친환경·저공해를 지향하는 점과 완전히 대비되는 부분이다. 배기량이 큰 차량은 국내 자동차세도 높게 책정되고, 연비 또한 좋지 못하다.

반면 경쟁 모델인 포드 익스플로러는 직렬 4기통 2.3ℓ 에코부스트 엔진을 얹은 모델과 3.0ℓ 에코부스트 모델, 그리고 3.3ℓ 풀 하이브리드(FHEV) 모델까지 라인업을 다양하게 운영 중이다.

혼다 파일럿이 경쟁 모델 대비 다방면으로 불리한 점이 많게 느껴진다.

전시장(딜러)과 서비스센터 네트워크도 상당히 제한적이다. 혼다코리아는 현재 전국에 9개의 전시장을 운영 중이며, 서비스센터도 혼다 공식 센터는 13개에 불과하다. 여기에 6곳의 차량 정비소와 협력해 총 19개의 센터를 운영 중이지만, 이 중 9개 센터에서는 중정비가 불가하다. 소비자들의 접근성이 좋지 않는 점을 간접적으로 추측할 수 있는 점이다.

또 혼다코리아는 지난해(회계연도 제21기) 광고선전비로 약 15억5,000만원 정도를 지출했는데, 이는 전년 대비 절반 수준이다. 차량 판매를 위한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혼다코리아 관계자는 “파일럿은 현재 반도체 공급난으로 생산 지연, 연식 변경 등이 겹치면서 판매에 영향이 있었다”며 “서비스센터는 올해 3월부터 스피드메이트 서초점과 안양점이 서비스협력점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공식 서비스센터 오픈은 현재 고객 수요, 부지 문제, 인력 배치 등의 사항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다”고 입장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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