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 국산·수입차 브랜드, 연간 판매 8%·12% 무공해차 기준 충족 불가
적게 팔면 규제 대상에서 제외, 판매량 높은 완성차 기업만 규제
온실가스 배출량 규제와 동일 항목에 대한 이중 규제 논란

지난해 국내 자동차업계의 전기차 판매량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완성차 업계는 환경부의 무공해차 보급 목표제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에 환경부는 제도 시행으로 인한 기여금 부과를 3년 유예하는 것으로 확정하며 한 발 물러났다.

시사위크=제갈민 기자  환경부가 국내 전기차 보급을 늘리기 위해 완성차 업계가 판매하는 차량 중 전체의 일정 비율 이상을 무공해차로 채우도록 강제하는 ‘무공해차 보급 목표제’ 시행을 3년 유예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자발적인 제도 시행 유예라기보다는 업계의 반발과 여론의 부정적인 시선에 따른 것인데, 업계에서는 기준 완화부터 제도 폐지 필요성까지 터져 나오고 있어 향후 정부의 후속조치에 관심이 쏠린다.

무공해차 보급 목표제는 환경부가 전기·수소차 보급 확대를 위해 지난 2021년부터 신설해 운영 중인 제도다. 이 제도에 따르면 3년간 연 평균 판매대수가 2만대 이상 완성차 기업의 경우 8%를, 10만대 이상 판매를 하는 완성차 기업은 12%를 전기차 등 무공해차로 채워야한다.

이 기준을 달성하지 못하는 완성차 기업에는 미달 대수 1대당 60만원의 기여금을 부과한다. 사실상 전기차 판매가 저조한 완성차 기업에 부과하는 과태료 또는 벌금인 셈이다. 기여금 부과는 단계적으로 상승해 미달 대수 1대당 150만원, 300만원까지 늘어난다.

대상 기업은 국산 완성차 업계 5개사가 전부 포함되며, 수입차 브랜드 중에서는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와 BMW그룹코리아·폭스바겐그룹코리아 등이다.

그러나 해당 완성차 브랜드 중 환경부의 무공해차 보급 목표제를 달성할 수 있는 기업은 현대자동차그룹이 유일한 것으로 전망되고, 그 외 완성차 브랜드는 모두 기준 미달이다.

쌍용자동차는 올해 1∼7월 판매대수가 3만4,277대이고, 동기간 르노코리아와 한국지엠의 실적은 각각 3만487대, 2만1,668대 등이다. 여기에 무공해차 보급 목표제 기준 8%를 적용하면 동 기간 전기차 판매가 △쌍용차 2,742대 △르노코리아 2,439대 △한국지엠 1,733대 이상 차지해야 한다.

그러나 3사가 올해 7개월 동안 판매한 전기차는 △쌍용차 108대 △르노코리아 516대 △한국지엠 265대 등에 불과하다. 이를 토대로 계산하면 무공해차 보급 목표 미달로 부과될 수 있는 기여금 규모는 7월말 기준 쌍용차가 15억원, 르노코리아는 11억원, 한국지엠은 9억원에 달한다.

쌍용차 코란도 이모션은 사전계약에서 3,000대 이상 계약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지고, 한국지엠 볼트 EV 및 EUV 모델도 계약 건은 1만대가 넘어설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전기차 배터리 공급난과 쉐보레 볼트(EV·EUV) 배터리 화재 우려로 배터리 교체를 진행하는 과정에 두 브랜드는 전기차 출고 지연 사태에 봉착했다.

쌍용차의 경우에는 전기차 배터리 공급난이 해소된다면 상황은 조금 나아질지 모르지만 한국지엠은 현재 전기차 모델 볼트를 전량 수입 판매하고 있어 판매량을 획기적으로 늘리기란 어려워 보인다.

르노삼성자동차가 올해 상반기 유럽에서 테슬라 모델3를 꺾은 전기차 조에를 국내에 들여왔다. / 르노삼성자동차
르노코리아는 올해 상반기 전기차 모델 르노 조에(사진)와 트위지 모델의 판매를 잠정 중단했다. 이로 인해 르노코리아는 전기차 라인업이 완전히 사라졌다. / 르노코리아자동차

르노코리아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올해 르노코리아가 판매한 전기차는 르노 조에(404대)·트위지(112대)에 불과한데, 두 모델은 국내에서 부진한 성적을 연이어 기록해 올해 상반기 국내에서 판매 중단 수순을 밟았다. 사실상 르노코리아가 현재 판매할 수 있는 전기차는 전무한 셈이다. 르노코리아는 오는 2026년부터 국내에서 친환경차(전기차) 생산을 할 계획이지만 그 전까지는 결국 수입 물량에 의존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국산 완성차 브랜드 3사는 사실상 당장 전기차 판매 확대가 쉽지 않은데, 연말에 다가갈수록 부과될 기여금 규모는 계속해서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수입차 브랜드 중 최상위권을 꿰차면서 국산차 판매량을 뛰어넘은 메르세데스-벤츠와 BMW도 국내에서 판매한 차량 중 전기차 비율은 현재 환경부의 무공해차 보급 목표제 기준(전체 판매의 8%)을 충족하지 못한다.

올해 1∼7월, 메르세데스-벤츠와 BMW의 국내 판매대수는 각각 4만4,653대, 4만3,042대다. 전기차 판매 대수는 벤츠가 1,720대, BMW는 1,703대로 각각 총 판매대수의 3.85%, 3.96%다.

폭스바겐그룹코리아는 아직 아우디와 폭스바겐 판매량 합계가 2만대 미만이지만, 8월 판매 대수 집계를 기점으로 환경부 규제 대상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두 브랜드 중 폭스바겐은 아직 전기차 모델이 없으며, 아우디는 1억원이 넘는 e-트론 및 e-트론 GT 2종에 불과해 폭스바겐그룹코리아의 전기차 판매는 474대, 전체의 2.65%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황에 완성차 업계에서는 환경부의 무공해차 보급 목표제 시행에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으며, 실현 불가능한 제도라면서 규제 완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벤츠와 BMW가 전기차 시장에서도 격돌하고 있다. 사진은 BMW iX3(왼쪽) 및 벤츠 EQB(오른쪽). / 각 사
벤츠와 BMW가 전기차 시장을 이끌고 있지만 여전히 전기차 판매 비율은 환경부의 무공해차 보급 목표제 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BMW iX3(왼쪽) 및 벤츠 EQB(오른쪽). / 각 사

수입차 국내 1·2위를 다투면서 수입차 전동화를 이끌고 있는 벤츠와 BMW도 충족하지 못하는 것을 다른 수입차 브랜드나 판매량이 적은 국산차 브랜드가 이를 어떻게 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또한 판매량이 많은 브랜드만 규제를 하는 것도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내연기관 및 하이브리드 모델을 중심으로 라인업을 구성하고 전기차를 판매하지 않는 일부 판매대수 연 평균 2만대 미만의 완성차 브랜드는 규제하지 않으면서 단순히 판매량이 높다는 이유로 규제를 하는 건 환경보호의 목적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이중 규제라는 지적도 존재한다. 정부는 앞서 ‘자동차 온실가스 관리제’를 시행해 온실가스 배출량 기준을 달성하지 못한 완성차 업체에 과징금을 매기고 있는데, 무공해차 보급 목표제 미달 시 기여금을 부과하는 것은 동일한 항목에 대한 중복 규제로 봐야 한다는 것.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이를 두고 “저공해차 보급목표제는 도입 목적이 온실가스 배출량 규제라는 측면에서 연비·온실가스 배출 규제와 동일하다”며 “두 규제는 명확히 중복규제다”라고 꼬집었다.

환경보호를 명목으로 규제만 생각하는 단편적 사고가 만들어낸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는 지적이 이어지는 이유다.

환경부에서는 이러한 불만이 쏟아지자 지난 30일 “기업들이 목표 달성에 다양한 수단을 활용할 수 있도록 실적 유연성 제도를 마련했다”며 “기여금 제도가 2023년부터 시행되나 실제 기여금은 유연성 제도 결과를 종합해 3년 뒤 부과 예정”이라고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기업이 저공해차 보급목표제와 소형차 온실가스 연비·관리제 미달성으로 기여금과 과징금을 동시에 부과받는 경우 부담 경감을 위해 보급목표제 기여금을 일부 감액하는 내용을 환경부 규제개선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러면서도 “최근 미국은 보급목표를 2035년 100%로 강화했으며 중국도 동일한 제도 운영, 영국은 2024년부터 제도 도입을 추진하는 등 자동차 제작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세계적인 경향”이라고 말하며 무공해차 보급 목표제를 시행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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