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통과로 국내 전기차 상황이 불리해지는 가운데, 지난달 4일 윤석열 대통령이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을 패싱한 것의 여파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뉴시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통과로 국내 전기차 상황이 불리해지는 가운데, 지난달 4일 윤석열 대통령이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을 패싱한 것의 여파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이선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4일 방한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을 직접 만나지 않은 여파가 한 달이 지난 지금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이어졌다며 질타받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는 황급히 통상교섭본부장을 미국으로 보내는 등 대책 마련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야권의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최근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상 보조금 지급 대상에 한국산 전기차를 제외했다. 해당 법안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40% 감축하기 위해 에너지 안보 및 기후 변화 대응에 3,69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479조원을 투자하고 이를 위한 재원 마련 차원에서 대기업에 최소 15%의 법인세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주목하고 있던 전기차 혜택은 앞으로 2032년까지 전기차 업체에 차량 1대당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에 이르는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다만, 내년부터 배터리 핵심 광물의 40% 이상을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조달하게 했다. 양극재와 음극재에 쓰이는 일부 소재는 중국 비중이 90% 이상이기 때문에 사실상 미국내 제조 기업 외에는 혜택을 받기 힘든 법안이다.

이로 인해 현대·기아차가 직격탄을 맞았다. 보조금을 혜택을 받는 미국 전기차 회사 차량과 비교해 약 1,000만원 가격 인상 효과가 발생하면서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북미 시장을 공략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해당 법안이 통과되자 산업부는 빠른 대응에 나섰다. 방미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5일(현지시각) 특파원들과 만나 “양국 간 신뢰 관계가 훼손돼선 안 된다는 게 가장 큰 문제점”이라며 “이제 각료급에서 실제로 만나 절차가 개시될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다. (협의체 구성) 의사는 전달해둔 상황이고, 그쪽(미국)에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한다고 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진다.

이어 “막 (입법안이) 서명이 된 상황이기 때문에 법안 개정이 조기에 이뤄지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입법적으로 풀 수 있는 부분과 행정부 차원에서 풀 수 있는 문제에 관해 다각적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우리 정부는 2025년까지 관련 조치 시행을 유예하는 방안을 비롯해 북미산 외에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국가에서 생산된 전기차로 수혜 대상을 늘리는 방안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외신에서는 정부의 발 빠른 대처가 있었다면 선제적 조치가 가능했을 것이라며 비판적인 시각도 나왔다. 블룸버그통신은 윤 대통령이 펠로시 하원의장을 패싱한 것을 두고 “윤 대통령이 지난달 펠로시 하원의장과 직접 면담을 하지 않은 것은 ‘치명적인 실수(deadly mistake)’였다”며 “만약 두 사람이 만났다면, 인플레 감축법 통과 이전에 변화를 모색하는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했을 수 있었다”는 분석을 내놨다.

또한 펠로시 하원의장을 환대한 일본 역시 이번 법안의 유탄을 맞았지만 적어도 닛산의 2개 모델은 지원금 보조 혜택을 받게 된 반면, 국내 차량은 단 하나의 모델도 보조금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됐다며 직접 비교했다.

아울러 지난 7월 27일 이미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 조항이 외부에 공개된 만큼 윤 대통령이 펠로시 하원의장을 직접 만나지 못했더라도 전화통화를 통해서 문제제기를 하지 않은 것이 아쉽다는 지적도 했다.

한편, 전기차 지원을 받기 위해 완성차 업체들과 배터리 회사들이 앞 다퉈 미국 현지 생산설비 구축에 나서면서 국내 회사들이 미국에 배터리 공장 건설을 다시 추진한다는 소식도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 시행에 따른 미 정부 지원 확대 등 대외 여건이 배터리 기업에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에 야권에서는 일련의 사건을 윤 정부의 외교 실패로 규정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7일 본인의 SNS에 펠로시 의장 패싱이 한국기업 패싱을 초래해 한국전기차 업체만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었다는 외신보도를 인용하며 “외교실패가 낳은 치명적 피해를 신속 수습해야 한다”고 정부를 정조준했다.

그는 “단기적인 국내 전기차 생산업체의 피해는 물론, 장기적으로는 생산업체의 국외이전으로 큰 경제적 손실과 일자리 감소가 예상된다”며 “설마 하는 생각도 들지만, 개연성을 부정할 수도 없다. 국익중심 실용외교라는 뚜렷한 원칙하에 외교는 치밀하고 섬세하며 철두철미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서희의 예를 들 것도 없이 외교는 국익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고, 외교실패는 엄청난 국익손실을 불러온다”며 “특히 강대국에 포위된 국가가 균형을 잃고 이리저리 휩쓸리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외교라인 문책을 통해 경각심을 제고하고 재발을 막아야 한다”고 우려했다.

이 대표는 “특별협상단을 파견하던 신속한 전기차 패싱 수습책을 마련하길 촉구한다”며 “경제와 민생을 포기하면 그건 정치가 아니라 지배일 뿐이다. 정치는 언제나 국민과 역사를 두려워 해야 한다”고 했다.

야권의 공세에 외교 실패 지적까지 이어지면서 이달 말 방한하는 카밀라 해리스 부통령과 윤 대통령의 만남이 이뤄질지가 주목되고 있다. 하지만, 이미 통과된 법안에 선제적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렵게 됐다.

 

근거자료 및 출처 

- South Korea Sees ‘Betrayal’ in Biden’s Electric Vehicle Push / 블룸버그, 2022년 9월 2일
https://www.bloomberg.com/news/articles/2022-09-02/south-korea-sees-betrayal-in-biden-s-electric-vehicle-pu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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