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정부와 장애인 단체가 이동권 예산을 두고 씨름하는데, 이동은 국민 생활의 필수 요소이자 생존과 직결됨에도 불구하고 예산 편성의 우선순위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은 행정가의 후진적 인식에 따른 선진 사회로의 발전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사진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들이 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에서 장애인권리예산 등을 촉구하며 집회를 벌이고 있는 모습. / 뉴시스
매년 정부와 장애인 단체가 이동권 예산을 두고 씨름하는데, 이동은 국민 생활의 필수 요소이자 생존과 직결됨에도 불구하고 예산 편성의 우선순위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은 행정가의 후진적 인식에 따른 선진 사회로의 발전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사진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들이 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에서 장애인권리예산 등을 촉구하며 집회를 벌이고 있는 모습. /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국회 시정연설에서 장애인을 지원하고 이동권을 보장하겠다고 선언했다. 중증장애인의 콜택시 이용 지원 확대와 저상버스 2,000대 추가 확충이 연설의 골자다. 이동권 증진은 윤 대통령의 공약이자 국정 과제인만큼 새 정부의 2023년 첫 예산 편성이 눈길을 끌었다.

지난 10월 국토교통부는 2023년 예산안 사업설명서를 발표했다. 사업설명서에는 2023년 이동권 예산을 올해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할 계획이라고 했다. 전체 이동권 예산을 비교해보면, 2022년도에는 1,090억6,500만원인 반면 2023년에는 2,245억6,000만원으로 늘었다. 숫자로 놓고 보면 착각에 빠지기 쉬울 만큼 그럴싸하다. 숫자놀음에 이동권이 대폭 개선되는 듯하지만, 현실은 딱히 발전도 진전 없는 맹탕 예산에 불과하다.  

국토부가 발표한 2023년 이동권 예산이 맹탕에 불과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 이유는 급격하게 늘어나는 교통약자 인구를 간과한 예산 편성이다. 대한민국의 교통약자 인구가 전체의 30%에 달한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만 교통약자가 아니다. 이들은 최중증 교통약자로 구분되지만 실제로는 장애인·노인·영유아 동반 가족·임산부 모두 교통약자다. 즉 국민 세 명 중 한 명이 교통약자라는 이야기다.

우리나라 사회 변화 속도에 따른 교통약자 인구도 날로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인구의 20%이상이 65세 이상인 초고령화 사회를 앞두고 있음에도 이동권 정책은 20년째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매년 정부와 장애인 단체가 이동권 예산을 두고 씨름하는데, 이동은 국민 생활의 필수 요소이자 생존과 직결됨에도 불구하고 예산 편성의 우선순위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은 행정가의 후진적 인식에 따른 선진 사회로의 발전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이동권 예산이 숫자만 두 배로 늘 뿐, 체감도는 두 배로 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현재의 이동권 대책에 따른 국민체감도는 아주 미미하다는 게 문제다. 장애인들이 20년째 이동권 개선을 위해 시위를 이어가고 있음에도 대한민국의 저상버스 도입률은 30%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속도라면 저상버스 도입률 100%를 실천하기 위해 앞으로 50년이 더 걸린다는 소리다. 

2023년 이동권 예산 편성을 보면 전체 예산 2,245억6,000만원 중 84.4%는 저상버스 구매 보조사업에 쓰이고, 나머지 10.6%는 내년부터 국비 지원으로 전환되는 지자체별 교통약자 이동지원센터 운영비로 활용된다. 2023년도 1월부터 시내버스 대·폐차 시 저상버스 의무도입이 시행되기 때문에 상반기 저상버스 2,000대 확충이 대폭 증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동안 미온적이다가 제도가 강제된 후에야 속도를 낸다는 점에서 씁쓸함은 여전하다. 

그 뿐인가. 현재 도입되는 저상버스 마저도 시내버스에 한정돼 있다. 비수도권이나 지방 소도시에서 주로 활용되는 마을버스나 농어촌버스의 저상버스 도입은 여전히 미온적이다. 시외버스와 고속버스는 또 어떠한가. 휠체어가 탑승할 수 있는 시외버스는 고작 0.57%에 불과하다. 전체 169개 고속버스 노선 중 단 4개만 탈 수 있다. 여전히 비수도권·지방 소도시의 교통약자를 위한 이동권은 열악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문제는 또 있다. 2023년 이동권 예산 투입으로 저상버스의 수가 대폭 증가하더라도 여전히 체감도는 낮을 것이 자명하다. 그 이유는 저상버스는 기준 규격에 맞는 버스정류장 설치가 필요한데 2023년도 국토부 예산에는 버스정류장 개선 예산이 포함돼 있지 않다. 

홍서윤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비상임이사
홍서윤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비상임이사

교통약자는 앞으로 얼마나 더 긴 시간 버스정류장이 개선되기를 기다려야 할까. 

결국, 눈앞에 저상버스가 지나가더라도 교통약자가 편히 저상버스에 탑승 할 수 없는 구조적 현실 속에서 이동권 예산의 증가가 이동권의 증진이라고 말 할 수는 없다. 숫자만 늘어난다고 개선됐다는 허울뿐인 포장보다는 ‘이동의 연결성’을 고려한 제대로 제도가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이동권 대책과 예산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한 가지 알아야 하는 것은, 이동권 제도 실현은 장애인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20년 전, 장애인들의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 요구 결과는 장애인을 비롯해 노인과 영유아 동반 가족에게도 편리한 수직 이동을 선사했다. 저상버스도 마찬가지이다. 장애인이 탑승하기 좋은 이동수단은 결국 모두에게 편리한 이동을 선사한다. 따라서 앞으로 계속될 이동권 투쟁이 결코 장애인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이동권 예산은 장애인 예산이 아닌 국민 모두를 위한 예산임을 달리 이해하기를 바란다.
 

홍서윤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비상임이사 프로필 

 

현)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비상임이사 
현) 장애인문화예술원 비상임이사 
전) 한국방송공사 앵커 
전)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대표 
전)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대표이사 
전) 한국교통안전공단 비상임이사 전) 서울관광재단 비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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