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홍경이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약한영웅 Class 1’로 시청자와 만났다. /웨이브
배우 홍경이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약한영웅 Class 1’로 시청자와 만났다. /웨이브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홍경은 한마디도 허투루 내뱉지 않았다. 질문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신중한 대답을 내놨다. 그리고 그가 뱉은 모든 말에는 연기를 향한 애정과 열정, 작품을 함께 만들어간 이들을 향한 감사와 배려,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가 좋은 배우가 될 거란, 아니 이미 좋은 배우라는 ‘확신’이 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홍경은 2017년 방영된 KBS 2TV ‘학교 2017’을 통해 데뷔한 뒤, 드라마 ‘저글러스’ ‘라이브’ ‘라이프 온 마스’ ‘동네변호사 조들호2: 죄와 벌’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첫 스크린 데뷔작 ‘결백’(2020)에서는 자폐성 장애를 가진 정수 역을 맡아 어려운 역할임에도 안정적으로 소화하며 백상예술대상 신인연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해 영화 ‘정말 먼 곳’ ‘보이스’, 넷플릭스 시리즈 ‘D.P.’, 드라마 ‘홍천기’까지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넘나들며 종횡무진한 홍경은 지난달 공개된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약한영웅 Class 1’(이하 ‘약한영웅’)로 또 한 번 인상적인 연기력을 보여주며, 배우로서 자신의 진가를 재입증했다.  

홍경은 상위 1% 모범생 연시은(박지훈 분)이 처음으로 친구가 된 수호(최현욱 분), 범석(홍경 분)과 함께 수많은 폭력에 맞서 나가는 과정을 그린 약한 소년의 강한 액션 성장 드라마 ‘약한영웅’에서 소심해 보이지만, 그 안에 복잡한 내면을 가지고 있는 듯한 소년 범석 역을 맡아 열연했다. 

범석은 청소년기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보고, 느껴봤을 법한 고민을 안고 있는 인물로, ‘약한영웅’에서 가장 큰 감정 변화를 겪는다. 홍경은 첫 등장부터 범석 그 자체로 그저 존재했다. 말투와 자세, 걸음걸이 하나까지 세심하게 빚어낸 것은 물론,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미세한 감정의 변화부터 큰 반동까지 일으키는 인물의 복잡다단한 심리를 내밀하게 담아내 몰입도를 높였다. 

‘약한영웅 Class 1’에서 오범석으로 열연한 홍경. /웨이브
‘약한영웅 Class 1’에서 오범석으로 열연한 홍경. /웨이브

홍경은 <시사위크>와 만나 “끝까지 범석의 손을 놓지 않으려고 했다”면서 ‘약한영웅’, 그리고 범석과 함께 한 모든 순간을 되돌아봤다. 특히 “스태프들에 대한 이야기가 오늘 인터뷰의 핵심이었으면 한다”며 제작진을 향한 진심을 전해 훈훈함을 안기기도 했다.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기분이 어떤가. 
“위로와 격려를 받고 있다. 감사하고 좋다. 무엇보다 뜨거운 여름에 되게 많은 분들과 함께 이 작품을 만들었다.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봐주신 분들이 많다는 게 정말 감사하다.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잖나. 마음이 와야 할 수 있는 건데, 그 마음이 잘 전달된 것 같아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어떻게 ‘약한영웅’과 함께 하게 됐나. 
“크리에이터로 참여한 한준희 감독님이 이런 프로젝트가 있다고 말을 해줬다. 그러면서 ‘범석이라는 친구를 네가 했을 때 도전적이고 새로운 것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해주셨다. 글을 읽고 두려움이 크고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을 되게 오래 했다. 한 달 정도 했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한준희 감독님, 이수민 감독님이 묵묵히 믿고 기다려주셨다. 한 가지만 꼽을 수 없지만 범석에게 담긴 게 많다고 생각했다. 이 친구가 느끼는 여러 감정들, 열등감일 수도 있고 소외감, 결핍일 수 있고, 상실일 수도 있고 모든 게 보였다. 그 지점이 어려우면서도 매혹적이었고, 호기심을 강하게 불러일으켰다.” 

-가장 고민된 지점은 무엇이었나. 
“이 친구(범석)가 처한 환경이든 친구와의 관계, 여러 사회적 굴레 속에서 느끼는 것들이 버겁게 느껴졌다. 특정 한순간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느끼는 압박이나 감정이 두텁잖나. 복합적이고. 이런 것들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고 어려웠다. 잘못된 선택이고 용서받을 수 없을지 몰라도,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어떤 것을 느꼈는지 이해하고 다가가야 하는데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이 친구의 마음을 잘 알 수 있을까, 보는 분들에게 와닿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됐다.”

-범석을 이해하고자 했던 과정이 궁금하다. 
“모호할 수 있는 표현인데, 내가 되게 좋아하는 해외배우가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그냥 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 그렇게 말하면 안 되잖나. 하하. 그렇지만 나는 공감을 했다. 어떤 과정이었나 생각을 해봤는데, 그냥 연기하는 순간에 충실하고 솔직했던 것 같다. 다만 누군가는 이 친구가 하는 행동이 보기 싫고 눈을 감아버릴지라도 나만큼은 잘 들여다보고 손을 놓지 말아 보자는 마음으로 품고자 노력했다. 범석이가 느끼는 것들을 좇아갔던 것 같다.”

-범석에게 수호와 시은은 어떤 의미였을까. 
“먼저 배우의 해석이 답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보는 분들 개개인의 생각이 답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할 때 범석에게 수호와 시은은 처음으로 사귄 진정한 친구가 아니었을까 싶다. 순수한 사랑에서 오는 상실을 느끼지 않았을까. 우리도 유년기, 청년기에 나의 의지나 선택과 상관없이 환경이 만들어지잖나. 불완전하고 요동치는 시기. 범석이도 분명히 그 시기를 관통했을 텐데, 그 시기를 지나면서 내가 갖고 싶은 모습을 보며 호감을 느끼고 그게 동경이 되고 사랑이 되고 그런 순수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범석이 두 사람에게 내비친 마음은 순수한 사랑이었다. 그것이 외부에서 오는 자극들로 인해 변질되고 잘못된 선택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물론 그 방식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흠잡을 데 없는 캐릭터 소화력을 보여준 홍경. /웨이브
흠잡을 데 없는 캐릭터 소화력을 보여준 홍경. /웨이브

-말투나 목소리 크기, 걸음걸이와 자세까지 굉장히 디테일하게 잡아나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축 과정이 궁금하다.
“의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봐주셔서 더 감사하다. 외적인 부분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목소리가 어떻고 눈빛이 어떻고 어떤 계산이나 의식을 하고 선택하지 않았고 고민한 적도 없다. 그저 범석이 느끼는 감정, 그것을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온 것 같다. 순간에 충실하고 집중하자는 마음과 맞닿아있는 지점이었던 것 같다. 사실 따로 계획하고 할 여유도 없었다.

의상에서 아이디어를 낸 것은 있다. 범석이 학대를 경험했기 때문에 살결을 드러내는 것에 있어 공포심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언제나 긴팔을 입었으면 좋겠다고 제안을 했다. 또 초창기 대본과 웹툰에서 범석이 안경을 벗을 때와 썼을 때 이미지가 확연히 달라지는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동전 뒤집듯 바뀌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너무 극적으로 보여주지 말자고 생각했고, 감독님과 의상팀도 동의를 해서 그렇게 잡아나갔다. 색으로 따지면 처음에는 투명하고 흰색이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검은색이 되다 마지막에는 또다시 무채색이 된다. 그런 지점도 의상팀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크리에이터 한준희 감독, 연출을 맡은 이수민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우선 한준희 감독님은 ‘D.P.’도 함께 했지만, 분명하고 섬세하다. 길잡이를 해준 분이다. 항상 든든한 힘이 돼 주셨다. 이수민 감독님 이야기도 안 할 수 없다. 배우는 어떤 순간이든 나와 함께 걷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말로 해서 되는 게 아니라 느낄 수 있는 거다. 그런 지점에서 이수민 감독님은 작품을 마칠 때까지 단 한 번도 내 손을 놓거나 의구심을 품은 적이 없었다. 어두운 동굴을 함께 걸어 나갔다. 정말 감사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누군가가 믿어준다는 게 참 감사한 일이었다.” 

-이수민 감독이 믿음을 보여줬다고 했는데, 배우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임했나. 
“나에 대한 의심이나 의구심이 항상 많은데, 최대한 그런 행위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안 하려고 해도 드니까 철저하게 분리하지 않으면 갉아먹게 되는 것 같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 밑바닥 안에는 나에 대한 깊은 믿음도 있다. 그 믿음이 내가 두려움을 마주했을 때 등불 하나가 되어주고 또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돼준다.”

앞날이 더 기대되는 홍경. /웨이브
앞날이 더 기대되는 홍경. /웨이브

-그 믿음은 어디로부터 시작된 걸까.  
“내가 이 일을 사랑하고 영화를 보며 쌓아온 것들이지 않을까. 영화를 정말 사랑한다는 것, 그거 하나는 자부심이 있다. 누구보다 많이 노력했고, 영화를 보면서 보낸 시절이 그런 믿음이 된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나는 내가 무엇을 좇는지 분명하게 알고 있다. 말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굳이 설명하자면 멋지고 화려한 것, 잘생기고 결핍이 하나도 없는 것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관심이 갔던 적이 없다. 다른 것들이 더 좋다. 내 심장에 가까운 이야기들에 끌린다. 꼭 현실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내가 좇는 감정에 가까운 이야기들. 내가 하고 싶은, 내가 좇는 이야기를 하는 작품을 해나가면서 가치를 느끼고 사랑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 것들이 믿음을 주는 것 같다.” 

-만약 범석이 옆에 있다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또 범석에게 다시 기회가 온다면 수호, 시은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을까. 
“범석이 수호, 시은에게 하고 싶은 말은 ‘미안해’라는 말일 거다. ‘미안해 내가 미안해, 내가 진짜 미안해’라는 말을 계속할 것 같다. 그 말로 백 마디를 채우지 않을까. 그 말 밖에 못할 것 같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을 거다. 기회도 있었고. 하지만 범석의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 마음을 대신 전하고 싶다. 범석에게는 ‘누군가 너에게 등을 돌리고 그로 인해 네가 혼자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도 나만큼은 너를 잡고 있으려고 노력했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 마음을 다했다고.”

-‘약한영웅’이 어떤 의미로 남았나.  
“정말 많이 배웠다. 스태프들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오늘 인터뷰의 핵심이 됐으면 좋겠다. 배우들이 뭔가 해낸 것처럼 보여도 배우가 해낸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범석이라는 인물이 나의 언어만으로 어떤 설득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김새, 헤어, 의상뿐 아니라, 그가 들고 다니는 소품일 수 있고 생활하는 공간일 수도 있다. 그런 모든 것을 만드는 게 스태프들이다. 상처도 진짜 맞아서 상처를 낼 수 없잖나. 또 누군가는 나의 얼굴뿐 아니라 에너지를 카메라에 담아내고 조명으로 더 잘 표현하고자 한다.

제작부는 그런 순간들이 깨지지 않게 전체를 아우른다. 그런 모든 것들이 합쳐져 하나의 작품을 찍을 수 있다. 공동작업이라는 것을 또 한 번 뼈저리게 느꼈다. 같이 달렸다. 도태되지 않고 모두가 온 마음을 다 했다. 촬영 시작하기 전에 카메라, 사운드, 조명, 여러 구호들이 오간다. 말만 오가는 게 아니다. 그 순간에 집중하게 되고 현장의 공기를 만들어준다. 그 순간이 즐겁고 재밌었다. 앞으로 계속해서 잊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다.” 

-‘약한영웅’을 사랑해 준 혹은 아직 보지 못한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주 열띠게 토론했으면 좋겠다. 자신의 의견을 주고받았으면 좋겠다. ‘네 생각은 틀려, 내 생각이 맞아’가 아니라, 네 생각은 그렇구나 그것도 괜찮다 하는. 서로에 대한 이해가 오가면 그게 좋은 게 아닐까. 그런 대화가 오가는 작품이었으면 좋겠다. 아직 보지 않은 분들이라면 정보 없이 보는 걸 추천한다. 알지 못할 때 전복되는 게 좋다. 그럴 때 받는 충격이 직관적인 생각과 감정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디에 끌려서 보게 됐다면 뭔가를 찾아보지 말고 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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