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성화가 영화 ‘영웅’으로 자신의 진가를 증명했다. / CJ ENM
배우 정성화가 영화 ‘영웅’으로 자신의 진가를 증명했다. / CJ ENM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윤제균 감독이 뮤지컬영화 ‘영웅’ 주인공으로 배우 정성화를 택했을 때 많은 이들이 반대했다. 뮤지컬 무대에서는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스크린에서의 활약은 적었기에, 수익을 내야 하는 상업영화 특성상 ‘티켓파워’가 어느 정도 검증된 배우를 세워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윤제균 감독은 끝까지 ‘정성화’였다. 그가 영화 ‘영웅’의 시작이었고, 그보다 더 ‘안중근’을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성화는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감과 열연을 보여주며 윤제균 감독의 믿음에 완벽히 화답했다. 

영화 ‘영웅’은 1909년 10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일본 법정의 사형 판결을 받고 순국한 안중근(정성화 분) 의사가 거사를 준비하던 때부터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까지, 잊을 수 없는 마지막 1년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 ‘해운대’(2009), ‘국제시장’(2014)으로 한국 최초 ‘쌍천만’ 관객을 동원한 윤제균 감독이 ‘국제시장’ 이후 8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으로, 영웅 안중근 의사에 대해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담았다. 

2009년 뮤지컬 ‘영웅’ 초연부터 안중근을 연기해온 오리지널 캐스트 정성화는 스크린에 재탄생한 영화 ‘영웅’에서도 대한제국 독립군 대장 안중근으로 분해 묵직한 열연을 펼쳤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 안정적인 가창 실력으로 안중근의 응집된 감정을 흔들림 없이 담아낸 것은 물론, 외형부터 내면까지 안중근 그 자체로 살아 숨 쉬며 호평을 이끌어냈다. 

14년 동안 안중근을 연기해 온 정성화. / CJ ENM
14년 동안 안중근을 연기해 온 정성화. / CJ ENM

무려 14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대 위에서 안중근으로 살아온 그지만 허투루 하지 않았다. 철저한 자료조사를 통해 ‘인간’ 안중근에 더욱 깊이 다가갔고, 약 14kg 체중 감량부터 눈빛과 표정에 이르기까지 안중근의 모습을 그려내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재촬영도 기꺼이 임했다. 불어난 체중을 다시 감량해야 했지만 더 나은 장면, 더 높은 완성도를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해낼 각오가 돼있었다. 뮤지컬영화 ‘영웅’에 대한 자부심, 안중근을 향한 존경심, 자신을 믿어준 이들에 대한 감사와 책임감 때문이었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정성화는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만한 오리지널 뮤지컬영화가 나왔다는 생각에 기분 좋고 영광스럽다”고 영화 ‘영웅’을 선보이게 된 소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아바타: 물의 길’과 대적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자신감을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초연부터 참여한 창작뮤지컬이 영화로 재탄생됐고, 주인공으로 참여했다. 기분이 어떤가. 
“족적을 남길 수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 오리지널 뮤지컬이 영화화된다는 것은 뮤지컬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꿈꾸는 일이다. 그것을 실제로 이룰 수 있다는 것 자체로 꿈이 이뤄진 것 같다. 촬영 내내 구름 위를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이왕이면 관객들의 마음에도 쏙 들 수 있게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결과물을 보고 나니 그때 열심히 했던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윤제균 감독님이 입버릇처럼 말씀하신 게, 세계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들자는 거였다. 외국에도 뮤지컬영화가 많지만 그들도 잘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거다. 대한민국도 뮤지컬영화를 이렇게 만들 줄 알아? 할 거다.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만한 오리지널 뮤지컬영화가 나왔구나 생각이 든다. 정말 기분이 좋고 영광스럽다.”

‘영웅’으로 관객 앞에 선 정성화. / CJ ENM
‘영웅’으로 관객 앞에 선 정성화. / CJ ENM

-한국에서 뮤지컬영화는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장르적 측면에 대한 걱정은 없었나.  
“지금까지 뮤지컬영화는 대사하다가 배경음악이 시작되면서 ‘나 지금부터 노래해요’ 했다. 아니면 쇼 위주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극 속에 녹아드는 음악으로 관객에게 다가가는 뮤지컬영화를 선보여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영웅’만큼 안성맞춤인 작품이 없었다. 노래가 언제 시작하는지, 어떤 감정으로 시작했는지가 제일 중요하다. 그것만 잘 시작하면 관객이 ‘언제 시작했지?’ 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다. 그게 성공하면 뮤지컬영화 안에서 노래를 즐길 수 있게 된다. 오프닝에서 ‘단지동맹’이 나오는데,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관객들에게 뮤지컬영화라고 소개해 주고 그다음부터 나오는 노래를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을 통해 뮤지컬영화의 길이 열렸으면 좋겠다. 투자도 활발하지 못했고 적극적으로 공부한 감독도 없었다. 모든 분들이 그냥 ‘불모지’라며 놔둔 곳이었는데 새롭게 땅을 파고 좋은 건물을 지어서 사람들이 드나들게 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창작뮤지컬 중에 영화로 만들기 좋은 작품이 참 많다. 영화가 뮤지컬로 재탄생하는 것도 있다. 그런 일들이 활발히 이뤄져서 새로운 장르가 탄생했으면 좋겠다.”

-윤제균 감독과 캐스팅 과정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이 뮤지컬을 영화로 만들기로 했어’라고 하셨는데, 내가 안중근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나중에 후일담으로 ‘나는 처음부터 정성화였다’고 하시더라. 예상하기에는 아무래도 리스크가 있기 때문에 투자하는 분들에게 설명하는 시간이 필요하셨던 것 같다. 확실히 정해지기까지 신중하셨던 것 같다. 그 와중에 나는 혼자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하면 어떨까, 하고 싶다, 하지만 안 되겠지? 황정민, 조승우 좋은 선배들이 너무 많아’ 하하. 그런 분들이 하면 옆에서 도와드려야겠다, 다른 역할이라도 제안이 오면 해야지 영광이니까 생각했다. 그러다 감독님이 ‘너를 안중근으로 하기로 했어’라고 했을 때는 무덤덤하더라. 그러다 나중에 가서 ‘현타’가 왔다. 어떻게 보면 오리지널 뮤지컬영화의 첫 발자국이기도 하고 관객들이 실망하면 다시는 뮤지컬영화를 안 볼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다. 엄청난 무게감이 실렸다. 목숨 걸고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 위에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안중근을 연기했지만, 영화는 또 달랐을 것 같다. 어떤 차이가 있었나. 
“공연에서는 내 연기가 맨 뒤에 앉은 관객들에게도 닿아야 한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그렇게 하면 어색하다. 연극 톤으로 대사를 하면 관객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잖나. 작고 섬세한 연기를 하는 게 중요했다. 특히 넘버를 부를 때 무대에서는 크게 부르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영화에서는 속삭이면서도 불러야 했다. 어떤 부분은 노래를 포기하고 감정을 내세워야 하는 것도 있었다. 그게 가장 큰 차이였다. 또 공연에서는 오케스트라 음악이 나오면서 노래를 하는데 영화에서는 카메라가 가까이 들어오니 현장에서 음악이 나올 수 없었다. 인이어를 통해 MR을 들었는데 쉽게 말해 에코 없이 목소리가 나오니까 노래를 잘 못하는 것 같고 애를 먹었다. 계속하다 보니 조금씩 노하우가 생겼고 익숙해졌다. 디테일과 균형을 맞추는 게 제일 어려웠다.”

남다른 책임감으로 임했다는 정성화. / CJ ENM​
남다른 책임감으로 임했다는 정성화. / CJ ENM​

-영화라서 좋았던 점을 꼽자면.  
“굉장히 많다. 우선 오프닝에 나오는 ‘단지동맹’은 영화여서 더 큰 스케일로 담을 수 있어 좋았다. 또 안중근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사람의 얼굴을 가까이 담아내서 느껴지는 게 있었다. 넘버가 정제되지 않은 것도 좋았다. 어떻게 대사처럼 들리게 할 것인가 신경을 많이 썼다. 노래처럼 들리면 관객이 감정에서 빠져나오기 때문에 대사처럼 전달되고 그 감정을 이어갈 수 있게 하는 게 제일 큰 숙제였다.”

-캐릭터를 구축하는 과정도 달랐을 것 같다. 어떻게 접근했나.  
“공연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강하게 보이는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공연에서는 캐릭터가 가진 에너지가 굉장히 세게 와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걸 표현하더라도 크게 목소리를 낸다거나 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관객은 안중근의 이미지를 강력하게 생각했을 수 있다. 영화에서는 비범함 속 평범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가장 신경을 쓴 것이 안중근의 생활연기였다. 그 모습이 가장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덤덤하고 절제된 연기가 제일 달랐던 점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무려 14년을 안중근이라는 인물로 살아왔다. 배우 개인에게 남다른 존재, 특별한 의미일 것 같은데.  
“인생의 가장 큰 롤모델이자 선생님 같은 분이다. 이 작품을 오랫동안 해올 수 있었던 것은 매번 할 때마다 만만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어려운 작품이다. 안중근이 혼자 끌어야 하는 부분도 굉장히 많다. 매 공연 전 잘못하면 어떡하지 생각할 정도로 에너지가 세고 어렵다. 매 순간 도전적이었기 때문에 계속 할 수 있었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사람으로만 알고 있지만, 철학가적인 모습, 신앙인으로서의 모습, 사상가로서의 모습 등 그의 이면을 살펴보면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그분이 쓴 글을 보면서 삶에 적용하기도 한다. 스승님 같은 분이다. 

고막고어자시(孤莫孤於自恃), 스스로 잘난 체할수록 외로워진다는 말. 안중근 의사가 나한테 하는 말 같다. 14년 동안 안중근 역할을 해왔다고 해서 누구에게 너 자신을 내보일 필요 없다, 주어진 일을 하다 보면 주변에 사람이 모일 것이라는. 마치 내게 하는 말처럼 들려서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임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분의 가르침이다. 그분은 한곳에 머무르지 않았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상하이, 만주, 대련을 오가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찾아서 했다. 나의 배우 생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나를 찾아 준다기 보다 내가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머물러 있지 않고 계속해서 도전하고 나아가다 보면 안중근과 같은 삶을 사는 게 아닌가 감히 대입해 본다.”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선택하기 망설이는 이유가 두 가지 정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조연이었던 정성화가 어떻게 활약할지, 또 하나는 뮤지컬 영화가 생소한데 어떻게 이물감 없이 들어갈 수 있을지. 이미 영화를 본 관객들의 리뷰를 믿고 극장을 꼭 찾아주셨으면 좋겠다. ‘아바타: 물의 길’의 존재는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취향은 다양하잖나. 뮤지컬영화 ‘영웅’은 ‘아바타: 물의 길’과 대적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천만’ 갑시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