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는 지난달 30일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30일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했다. /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반복되는 사망사고 등으로 산업현장의 안전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면서 도입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 1주년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 원년인 올해도 산업현장에서의 비극은 끊임없이 반복됐다. 이에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을 둘러싸고 각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새롭게 출범한 정부는 산업현장 안전문제와 관련해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와 다소 결이 다른 기조를 내세우고 있다. 시행 직후부터 안갯속에 놓인 중대재해처벌법의 앞날에 이목이 집중된다.

◇ 실효성 논란 속 새 발걸음 내딛은 정부

올해 초인 지난 1월 27일부터 본격적인 시행에 돌입한 중대재해처벌법은 좀처럼 끊이지 않는 비극적인 사망사고로 산업현장의 안전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면서 마련됐다. 2020년 출범한 제21대 국회의 1호 법안이었을 정도로 존재감이 컸고, 시행에 돌입하기까지 많은 논란과 논쟁이 있었다.

이 법의 핵심내용은 중대재해 발생에 따른 책임을 해당 사업체의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묻는 것이다. 다시 말해, 중대재해 발생에 따른 처벌대상을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산업현장에서의 안타까운 사고는 근절되지 않았다. 법 시행 사흘째 만에 ‘1호’ 중대재해가 발생한데 이어 하루가 멀다 하고 중대재해 소식이 전해졌다. 비교적 작은 규모의 사업장에서는 물론 굴지의 대기업에서도 사망사고가 거듭됐고, 같은 사업장에서 또는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반복되는 모습도 여전했다.

이에 중대재해처벌법의 이해당사자인 산업계와 노동계에서는 법 시행 전부터 불거졌던 실효성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지속됐다. 산업계에서는 중대재해 감소 효과 없이 처벌에 따른 부담만 커졌다고 반발했고, 노동계에서는 애초부터 진짜 책임져야할 주체가 빠져나갈 구멍이 많아 실효성이 있기 어렵다며 제도 강화를 촉구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 차원의 행보도 눈길을 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정권교체에 성공하며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산업현장 안전문제와 관련해 줄곧 중대재해처벌법과 다른 방향의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누구나 안심하며 일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직후 중대재해 감축을 위한 로드맵 마련을 국정과제로 선정했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선진국의 정책 사례를 검토하고, 현장의 안전보건관계자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노사 의견 등을 폭넓게 청취·수렴하는 과정을 거쳐 지난달 말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한 바 있다.

2026년까지 사망사고만인율(상시근로자 1만 명 당 사고 사망자수)을 OECD 평균 수준인 0.29‱(퍼밀리아드)로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로드맵은 기존의 사고와 방식에서 벗어나 산업안전 패러다임을 대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후 규제 및 처벌 중심이었던 대책을 사전예방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 골자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위험성평가 중심의 ‘자기규율 예방체계’ 확립 △중소기업 등 중대재해 취약분야 집중 지원·관리 △참여와 협력을 통한 안전의식 및 문화 확산 △산업안전 거버넌스 재정비 등 4대 전략과 산하의 14개 핵심과제로 구성돼있다. 

특히 14개 핵심과제 중 ‘산업안전보건 법령·기준 정비’ 항목엔 중대재해처벌법의 불확실성 해소 차원에서 예방을 위한 핵심 사항을 중심으로 처벌요건을 명확화하고, 선진국 사례 등을 참조해 제재방식 개선과 체계 정비를 강구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이 같은 내용과 함께 고용노동부는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은 기업에게 상한 없는 벌금형을 부과하고 있다”는 내용의 사례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는 정부 차원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을 유지하되 일부 개정하고, 특히 제재방식에 변화를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를 위해 고용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정비를 위한 ‘산업안전보건 법령 개선 TF’를 내년 상반기 중 구성해 논의에 돌입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 같은 로드맵을 향한 반응은 대체로 뜨뜻미지근하다. 산업계에선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구체적 개선 대책이 담기지 않았다는 불만이, 노동계에선 현행 대책보다 후퇴한 정책이라는 불만이 나온다. 

전경련은 고용노동부의 로드맵 발표 직후 낸 입장문을 통해 “법령에 의한 규제·처벌 위주의 행정에서 벗어나 ‘자기규율 예방체계’ 방식으로 전환하고, 현장 근로자 책임과 참여를 강화하는 정책방향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현행 법체계에 대한 합리적인 개선 없이 위험성 평가 의무화 등이 도입될 경우 기업에 대한 옥상옥 규제 강화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노동계에서는 한국노총이 “위험성 평가 등이 일부 강화됐으나 작업 중지 완화와 노동자 처벌 등 경영계가 지속해서 요구한 안전보건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이 곳곳에 박혀있다”고 지적했고, 민주노총 역시 “노동자의 참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지 않는 사상누각의 자율안전 대책으로 기업 처벌·감독은 완화하고 노동자의 의무·통제만 강화했다”고 비판했다.

여기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만큼 실효성에 대한 평가가 다소 섣부르다는 지적과 정부가 ‘패러다임 대전환’을 강조하고 있지만 발표한 로드맵은 사실상 새로운 것이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또한 정부가 최근 화물연대 총파업 사태 등에서 노동계와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워오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거센 반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향후 정부가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실행에 옮기는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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