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시대의 진중한 톤을 적절하게 유지하되, 위트와 유머로 무겁지 않게 영화를 따라올 수 있게 연기하려고 노력했죠.”

영화 ‘유령’(감독 이해영)은 1933년 경성 조선총독부에 항일조직이 심어놓은 스파이 ‘유령’으로 의심받으며 외딴 호텔에 갇힌 용의자들이 의심을 뚫고 탈출하기 위해 벌이는 사투와 진짜 유령의 멈출 수 없는 작전을 그린 작품이다. 

극 중 서현우는 통신과 암호 해독 담당 천계장을 연기했다. 천계장은 조선인이지만 일본어와 암호 체계에 능통한 암호 해독 전문가로 호텔에 감금된 후에도 카이토(박해수 분)의 명으로 유령이 동료들에게 보낸 암호문을 해독한다. 집에 두고 온 고양이 ‘하나짱’을 보러 경성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천계장은 엘리트이지만 어딘가 인간적인 모습으로 웃음을 안긴다. 

서현우는 스파이 액션 장르의 긴장감과 진지함 속에 온기와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서현우 역시 “작품 전체도 재밌었지만 천계장이라는 캐릭터가 너무 재밌어 보였다”고 매력적인 캐릭터에 끌려 ‘유령’을 택했다고 했다. 하지만 고민도 많았다. 극을 환기시키면서도 튀지 않게,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재밌었지만 천계장이라는 역할이 너무 어렵게 느껴졌어요. 작품 속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독립운동을 하고 시대적 사명이 있잖아요. 그렇지 않은 인물도 비장하고 힘이 있는데, 그 틈에서 천계장이라는 인물이 잘 녹아들까 싶은 생각도 있었죠. 어떻게 작품 전체 분위기를 방해하지 않고 잘 스며들 수 있을까, 걱정을 안고 시작했어요.” 

중점을 둔 것은 괴짜스러우면서도 유령 용의자로서의 미스터리함을 모두 놓치지 않는 거였다.  

“워낙 괴짜스러운 인물이라 몰입도에 방해되지 않게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게 가장 중요했고, 그와 동시에 유령으로서 용의자로 의심을 유발하는 포인트도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처음부터 ‘나는 감초야’라고 튀어나왔으면 그렇게 날아가 버렸을 것 같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유령 같지 않지만 유령으로 의심받을 수 있을까, 유령이 아니라면 평범하지 않은, 비상한 인물로 보일 수 있을까. 위트와 쉬어갈 수 있는 부분을 제공하면서도 혼선을 야기할 수 있는 임무를 맡았던 것 같아요.” 

서현우는 안경과 팔토시 등 의상을 통해 인물의 직업적 디테일을 더하고, 통통한 체형에 수염, 독특한 행동과 말투까지 끝없는 고민과 연구를 통해 섬세하게 인물을 빚어나갔다. 또 현장에서 이해영 감독과 끊임없이 의견을 나누며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온도를 찾아나갔다. 그는 “어떤 테이크는 과하게, 또 어떤 테이크는 줄여보기도 하면서 절충을 찾았다”고 했다. 

영화 ‘독전’에 이어 ‘유령’으로 다시 서현우에게 손을 내민 이해영 감독은 그를 두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유령’의 오아시스”라고 표현했다. 이에 대해 서현우는 “민망하지만 내심 기분은 좋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해 준 이해영 감독, 그 얼굴을 함께 구현한 스태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모든 캐릭터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강한 캐릭터를 많이 했는데, 내 안에 있는 혹은 추가적으로 장착된 질감을 봐주고 그걸 수면 위로 올려주신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천계장은 절대 제가 혼자 한 게 아니에요. 현장에서 함께 찾아나갔어요. ‘유령’을 하면서 배우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제 캐릭터에 생명력을 넣어준 분들이 정말 많아요. 든든했어요. 천계장은 그렇게 탄생했어요.”

대선배 설경구와 함께 한 소감도 전했다. 

“배우가 되기 전부터 선배의 영화를 보고 자랐던 사람이라 긴장을 많이 했어요. 늘 영화에서 봐온 사람이 나와 대사를 나누고 연기한다는 게 어색하고 걱정이 되더라고요. ‘얼지 말자, 긴장하지 말자’ 하며 현장에 갔는데, 선배의 눈빛이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해, 괜찮아’라는 말을 하시는 것 같았어요. 고요한 호수 같기도 했죠. 감동을 받으면서 연기했던 것 같아요. (설)경구 선배와 한 프레임 안에 존재한 것만으로도 정말 역사적인 일이에요.”

2010년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으로 데뷔한 서현우는 영화 ‘고지전’(2011)을 시작으로 매체로 활동 반경을 넓혔다. 영화 ‘관상’(2013), ‘1987’(2017), ‘죄 많은 소녀’(2018), ‘백두산’(2019), ‘남산의 부장들’(2020), ‘혼자 사는 사람들’(2021) 등과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 ‘시간’(2018), ‘모두의 거짓말’(2019), ‘악의 꽃’(2020) 등 수많은 작품에서 크고 작은 역할들을 소화하며 차근차근 입지를 넓혔다.

지난해에는 ‘헤어질 결심’ ‘썬더버드’ ‘정직한 후보2’ ‘모럴센스’ ‘세이레’ 등 5편의 영화와 드라마 ‘아다마스’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까지 무려 7편의 작품으로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넘나들며 종횡무진 활약했다. 그리고 영화 ‘유령’을 시작으로 더욱 뜨거울 한 해를 예고한 그는 “다음으로 나아가는 게 더 중요하다”면서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주어진 몫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작품이 한 번에 많이 공개가 돼서 겹경사를 맞은 것 같아요. 체감도 하고 있고요.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도 알아봐 주시고 참 신기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책임감도 많이 느끼고요. 앞으로 정신 바싹 차려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지금의 관심이나 스포트라이트를 마냥 즐기려고 하진 않아요.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또 다음으로 나아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여기에 도취되거나 높이 평가해버리면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지나온 시간들을 자양분 삼아 앞으로 해나갈 일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