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김필주 기자  지난해 ‘세모녀 전세사기 사건’으로 촉발된 ‘전세사기’ 문제가 각종 정부 대책에도 좀처럼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작년 9월 이후 5차례에 걸쳐 대책을 발표했으나 매번 실효성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가장 최근인 지난 4월말 발표한 대책을 두고선 ‘6가지 요건이 피해자 급을 나눈다’, ‘소득 기준 등 각종 제한으로 실제 지원 대상자도 적다’는 등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대책을 위한 특별법 처리는 여야간 이견으로 계속 미뤄졌고 지난 11일에서야 양당은 이달 말에 특별법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전세사기’ 문제 해법을 두고 정부와 국회가 갈팡질팡하는 사이 세상을 등지는 피해자는 점점 늘고 있다. 올해 2월부터 4월까지 전세사기 피해자 3명이 사망한 가운데 지난 11일 서울 양천구에서도 전세사기 피해자 1명이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세사기’ 불씨를 진화하기도 전에 시장에서는 ‘역전세난’ 이슈까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시민단체 및 전문가들은 올해 하반기 집주인과 세입자간 보증금을 둘러싼 분쟁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빌라왕‧건축왕’ 등 대규모 전세사기, 역전세난과 같은 전세제도의 부작용은 불과 1년여 동안 속출했다. 문제는 상황 종료가 아닌 앞으로도 더 많은 피해 사례와 전혀 체감하지 못했던 새로운 피해 사례 등이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국회는 지금부터 전세제도 전반을 집중 점검하고 개선하기 위한 절차에 착수해야 한다. 

가장 먼저 논의해야 할 부분은 전세자금대출이다. 전문가들은 오랜 세월 동안 무분별하게 실행됐던 전세자금대출을 전세사기 발생의 주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LTV(주택담보인정비율)‧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 등 각종 규제가 적용됐던 반면 전세자금대출은 주거지원 명목하에 아무 규제 없이 보증금의 80~90% 수준까지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집주인들이 자기자본 없이 갭투자(전세보증금을 끼고 투자)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고 무차별 갭투자는 결국 집값‧전세가격 폭등 거품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금리인상과 경기 침체가 불어닥치면서 거품은 한순간에 꺼졌고 결국 ‘건축왕‧빌라왕‧빌라신‧청년 빌라왕’ 등 대규모 전세사기 피해가 여기저기서 속출했다.

전문가들은 이제라도 전세자금대출에 DSR을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은행도 지난달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전세자금대출도 목적에 따라 DSR 규제 등을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전세보증금의 안전한 보전을 위해 세입자와 집주인간 임대차계약 과정에 제3의 기관을 투입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전세제도는 신용을 기반으로 세입자와 집주인간 사인간(私人間) 거래라는 점에서 구조적인 취약성을 갖고 있다. 어느 한 쪽, 특히 집주인의 신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기 문제로 쉽게 이어진다. 

이에 몇몇 전문가들은 임대차계약 과정에 신탁회사, 에스크로(중개거래 서비스) 등을 투입해 일부 보증금만 집주인에게 전달하고 나머지 보증금은 이들 제3기관이 관리한 뒤 얻는 운용 수익을 집주인에게 주는 등 보증금 보전을 위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 중이다.

HUG(주택도시보증공사) 등 보증기관이 취급하는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이하 ‘보증보험’)의 보증한도도 현재 90% 보다 더 낮은 60~70% 수준까지 낮춰야 한다.  

과거 HUG는 보증보험의 한도를 전세대출금의 100% 수준까지 보장했다. 이는 곧 세입자들의 전세 수요 증가와 전세가격 인상으로 이어졌고 코로나 사태 당시 초저금리 기조는 이러한 현상에 불을 붙였다.

즉 월세보다 대출이자가 더 싸지면서 기존 월세를 살던 세입자들마저 높은 전세가격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전세계약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시민단체‧전문가 등은 정부가 보증보험 도입 초기부터 보증금 전액이 아닌 일정 금액까지만 보증해줬다면 세입자들이 전세계약에 앞서 자신의 소득수준‧신용상태‧상환능력 등을 고민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만 이같은 전세제도 개혁은 정부‧국회의 강력한 의지와 뼈를 깎는 듯한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대출‧보증보험 한도 하향조정에 따른 서민‧주거취약층의 반발, 집주인들의 보증금 중간 관리 방안 거부 등 대대적인 국민적인 반발에 부딪힐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특히 내년 4‧10 총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았기에 여야 국회의원 대다수는 굳이 전세개혁에 나서서 욕먹고 표까지 잃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 역시 전세제도 개혁 여파로 또 다시 여소야대 상황을 맞이해 국정동력을 상실할까 두려워 지금처럼 단기적인 추가 대책만 이어가는 식으로 제도를 운영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전세가격 변동률 △전세거래량 △2년 전 대비 전세가 하락거래 등 최근 시장 내 각종 지표들은 올 하반기 더 나아가 내년 상반기까지 전세제도에 따른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는 시그널(신호)을 보내고 있다.

정부‧국회는 총선 지지율에 영합해 전세제도 개혁을 외면하면 안된다. 지지율에 신경쓰느라 더 많은 피해자를 양산하는 이른바 ‘소탐대실’을 범하지 말고 일관성을 갖고 장기적 관점에서 전세제도 개혁에 착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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