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박하경 여행기’로 첫 시리즈 연출 도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이종필 감독. / 웨이즈, 더램프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박하경 여행기’로 첫 시리즈 연출 도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이종필 감독. / 웨이즈, 더램프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박하경 여행기’는 사라져 버리고 싶을 때 토요일 딱 하루의 여행을 떠나는, 국어선생님 박하경(이나영 분)의 예상치 못한 순간과 기적 같은 만남을 그린 명랑 유랑기다. 연출은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이종필 감독이 맡았다. 

지난달 24일 첫 공개 후 공감 가득한 스토리와 아름다운 여행지의 풍광을 담은 미장센, 생생하게 살아 있는 캐릭터들로 호평을 얻으며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특히 총 8편의 여행기마다 새로운 인물들의 등장, 독특한 분위기와 장르로 변주하며 다채로운 재미를 선사했다는 평이다. 이종필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이종필 감독은 ‘박하경 여행기’의 시작부터 손미 작가와의 대본 작업 과정, 촬영 비하인드, 캐스팅 등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재밌는데 소소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그는 “‘박하경 여행기’는 맑은 카타르시스”라고 소개했다.  

시청자를 사로잡고 있는 ‘박하경 여행기’. / 웨이즈, 더램프
시청자를 사로잡고 있는 ‘박하경 여행기’. / 웨이즈, 더램프

-남성 감독임에도 연이어 여성 캐릭터를 내세운 작품을 섬세하게 담아내고 있다. 어려움은 없나.   

“학생 때 촬영감독 역할을 했는데 남성 연출자가 대본을 주면 대부분 거절했다. 이미 알겠는 거다. 내가 이걸 촬영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재미가 있을까 싶었다. 나도 연출을 하고 대본을 쓰는 사람으로서 이미 내가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 여성 친구들이 대본을 주면 재미가 있든 없든, 좋다 나쁘다 떠나서 궁금증이 생겼다. 이 감정은 뭘까, 왜 이런 것을 썼을까, 인물들이 왜 이렇게 말하고 행동할까 고민하게 되더라. 그런 호기심, 혹은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촬영을 하면서 조금씩 이해를 했던 것 같다. 완전히 깨우치진 않았는데 익숙해진 부분이 있다. 여성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할 때 의식하지 않게 됐다. ‘남성인데 어떻게 여성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하지?’하는 의식을 하지 않고 그저 한 사람으로서 보게 되는 것 같다.”

-첫 시리즈 연출이었는데, 매 에피소드 조금씩 변주를 줘 드라마라기보다 8편의 단편영화를 만든 느낌이 들었을 것도 같다. 어땠나. 

“상업영화만 만들어오던 내 입장만 생각해 보면 너무 신나고 재밌었다. 주변에 연출하는 친구들이나 입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도 얼핏 보여줬을 때 ‘이런 거 해도 돼?’ 이런 분위기였다. 왜냐면 소위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더 세야 하고 큰 악당이 있어야 하고 어떻게 더 죽이지 이런 고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재밌는데 소소한 이야기를 보고 싶었는데 상업영화였다면 쉽지 않았을 거다. 그래서 이 작업을 하는 게 너무 신났었다.” 

-재밌는데 소소한 이야기를 무미건조하지 않게 표현하기 위해 고민도 많았겠다. 

“이런 소소한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동시에 지루한 걸 못 견딘다. 안 하는 것 같지만 보이지 않게 뭔가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그래서 아주 오버해서 거창하게 말을 하자면, 만들어진 이야기같이 보이지 않았으면 했다. 누구를 특정할 순 없지만 불특정 다수가 살아가는 개개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뻔하고 지루할 것 같지만, 그 안에 감정들은 많잖나. 그런 것들을 다 담아보고 싶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작품을 보고 ‘별거 없네’라고 할 수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네’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 막연한 바람을 갖고 찍었다.”

이종필 감독이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 웨이즈, 더램프​
이종필 감독이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 웨이즈, 더램프​

-1회부터 8화까지 에피소드 구성은 어떻게 했나.

“장르의 공식을 따르고 싶지 않았다. 큰 사건이 없기 때문에 내가 아는 스킬로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가져가되, 조금씩 어긋나야 재미가 발생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배치했다. 1화는 보는 것 자체로 힐링이 된다는 것을 기대하겠지 싶어서 그렇게 갔다. 2화에서는 확 변주하고 싶었다. 2화는 좋게 보는 분들도 있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 싶은 분들도 있을 거다. 힘들지만 꿈을 이루거나 결론이 나는 게 꿈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인데, 그렇게 방향을 가지 않았기 때문에 3화에서는 보편적인 이야기여야 할 것 같아 멜로를 넣었다. 4화는 우리 엄마, 아빠가 이 시리즈가 무슨 내용인지 알까 싶어서 박인환 선생님 에피소드를 배치했다. 5화는 또 다른 재미를 주자, 6화는 아무 데도 안 가기도 해보자 했고 7화는 그래도 여행기인데 제주도는 한 번 가야지, 비행기는 한 번 나와 줘야지 싶었다. 그런데 아무 이야기 없이 끝나면 재미없을 것 같아서 자료조사를 하고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마침내 8화는 어쨌든 한 시즌이 끝나기 때문에 오프닝 음악도 그렇고 느낌도 다르게 하고 싶었다.”

-8화에서는 어떤 감정을 전달하고 싶었나.

“친구 이야기를 꼭 해보고 싶었다. 누군가를 잃은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볼까 고민이 있었는데, 스크립터 친구가 8화를 보고 요즘 친구들과 너무 많이 생각하는 지점이라고 하더라. 친했지만 특별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점점 멀어진다는 거다. 그래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겠구나 했다. 또 심은경(진솔 역)이 기똥차게 해줬다. 특히 찍을 때는 몰랐는데 진솔이 하경에게 ‘요즘 많이 힘들어?’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원래 대사에 있는 게 아니었다. 나중에 편집본을 보니까 그 대사가 모든 것을 감싸 안는다는 느낌이 들더라. 멍하니 시작했다가 다 감싸 안고 돌아온다는 맥락으로 하나의 완결성을 갖게 되지 않나. 예상하고 연출한 것은 아니고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됐다.(웃음)” 

-하경의 방에 걸린 그림의 의미도 궁금하다. 

“사실 특별한 의미는 촬영할 때는 없었다. 촬영하면서 나 혼자 만들었다.(웃음) 우선 컷의 랜드마크가 필요했다. 짧게 압축해서 어린 시절을 보여주는데 과거와 현재를 담았을 때 그 공간을 나타낼 수 있는 하나의 랜드마크. 손미 작가 작업실에 가면 아무것도 없다. 깨끗하다. 그런데 벽에 뜬금없이 딱 그 액자가 걸려있다. 어머니가 그냥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예뻐서 사셨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냥 걸어놨다고. 근데 그게 왠지 좋아 보였다. 그래서 그걸 걸어 놨다. 촬영하면서 분명 누군가 액자의 의미를 물어볼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를 대비해 만든 답을 드리자면 오리라는 동물이 물에 있을 때 몸은 떠 있지만 물속에서는 엄청 발질을 하고 있을 거다. 그게 박하경이든 그로 대변되는 평범한 사람들이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힘들게 아등바등 살아가는 이들과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오리가 막 뭍에 나온 순간이 담긴 건데,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토요일을 맞이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생각했다. 그런 큰 의미가 있었다.(웃음)” 

박하경 그 자체로 분한 이나영. / 웨이즈, 더램프
박하경 그 자체로 분한 이나영. / 웨이즈, 더램프

-이나영이어야만 했던 이유는.  

“인과로는 없다. 어떤 이유로 캐스팅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대본도 나오기 전에 손미 작가와 이런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하고 콘셉트를 잡고 아주 간단한 설정만 가지고 막연하게 이야기를 나눌 때 ‘배우는 이나영’이라고 했다. 뭔지 모르겠지만 그냥 좋더라. 왠지 더 상상이 될 것 같고. 왜 뜬금없이 이나영이 나왔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영어완전정복’을 다시 봤는데, 영화도 좋지만 이나영이 너무 눈에 들어왔다. 저걸 저렇게 연기한다고? 싶었다. 감정을 크게 몰입해서 하는 연기도 좋지만 샤우팅 하지 않아도 표현해 내는 미묘함 같은 것들이 좋았다. 연기를 정말 잘하는 배우더라. (이나영이) 한다고 생각하니까 (시나리오 작업이) 술술 풀렸다. 소위 말하는 ‘힐링물’이라고 한다면 웃을 때 방긋 웃고 지칠 때 확 지치는 모습이 있는데, 이나영이라면 지쳐도 그렇게 지친 표정을 짓지 않을 것 같고 좋을 때도 미소 한 번 보일까 말까 할 것 같은 것들이 연상됐다. 그렇게 작업하게 됐다.”

-현장에서는 어땠나. 

“억지로 무언가를 안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특히 이 작업은 어떤 극적인 사건이나 극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배우가 어떤 감정을 갖고 대사를 해야 하는지 그런 게 아니었기 때문에 억지로 하지 않았으면 했고 하고 싶은 대로 하길 바랐다. 치밀한 건 있었지만 정해놓은 작업 스타일은 없었다. 기억에 남는 것은 나는 배우가 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보는 사람이 울어야지 배우가 우는 건 좀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나영이 울면 나도 같이 울게 되더라. 울음의 성질이 달랐던 것 같다. (이나영이) 곳곳에서 울었는데 단순히 울었다기보다 눈물이 맺혀있다 혹은 흐른다였다. 그걸 보면서 정화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창작자로서 이 작업을 끝내면서 든 생각은 ‘박하경 여행기’는 ‘맑은 카타르시스’라는 거다. 살아가는 게 어떤 의미에서 비극이라면 여행은 맑은 카타르시스구나 하는 생각이 탁 떠올랐다. 찍으면서 느낄 수 있었다.” 

극을 더욱 풍성하게 완성한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서현우‧선우정아‧박세완‧박인환‧심은경‧조현철‧길해연‧구교환‧한예리. / 웨이즈, 더램프
극을 더욱 풍성하게 완성한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서현우‧선우정아‧박세완‧박인환‧심은경‧조현철‧길해연‧구교환‧한예리. / 웨이즈, 더램프

-구교환‧길해연‧박세완‧박인환‧서현우‧선우정아‧심은경‧조현철‧한예리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대거 함께했다. 캐스팅 과정이 궁금한데. 

“우선 내가 다 팬이고 연이 있거나 하고 싶은 마음에 연락을 했고, 그분들은 대본이 좋거나 모두 이나영의 팬이라서 출연을 해주셨다. 선우정아는 처음 제안을 받고 당연히 OST를 불러야 하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가 캐스팅이라고 해서 당연히 거절해야지 했다고 하더라. 하지만 대본은 읽어보고 거절하는 게 예의인 것 같아서 읽었는데 대본이 좋아서 참여해 보고 싶었다고 했다. 이나영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즘에 왠지 선우정아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안 하겠지 생각했는데 대본을 좋아해 주셔서 하게 됐다. 한예리는 졸업작품 주인공으로 출연해서 인연이 있었고 오랜만에 작업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제안했다.

구교환은 ‘탈주’라는 영화를 함께 촬영하고 있었는데 이나영 캐스팅됐다고 자랑하듯이 이야기했더니 이나영의 팬이라면서 낄 데 없냐고 하더라. 3화를 구교환을 두고 쓴 게 아닌데 딱 맞는 역할이더라. 그래서 하게 됐다. 박인환 선생님은 대본만 봤을 때 되게 피로해질 수 있는 역할이라, 박인환 선생님이면 덜 할 것 같았다. 왠지 내 아빠 같고 그런 편안한 느낌. 길해연 선배는 조현철이 보여준 독립영화에서 보고 정말 잘하고 좋아서 하게 됐고, 조현철은 가까운 후배인데 역할에 딱이었다. 그리고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같이 했는데 그때 조금 미안했다. 연기하는 것을 싫어하는 애인데 ‘이거 해야 해, 저거 해야 해, 돌변하면서 소리쳐야 해’ 그런 게 너무 미안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것도 안 해도 돼서 함께 하자고 했다. 심은경은 제작사에서 이야기를 꺼냈는데 너무 좋잖나. 그래서 이야기를 만들었고, 서현우, 박세완은 평소 팬이라서 제안을 했다.” 

-시즌2 계획은. 

“계획하진 않았다. 좋은 것으로 알차게 8개 에피소드를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컸고 만족한다. 또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오징어 게임’도 시즌2를 생각하고 하지 않았잖나. 할 수밖에 없는 상황, 시대적 요구, 시청자의 요구가 너무 강력해서 그렇게 된 것 같다. 우리 작품도 시청자들이 좋아해 주는 깊이만큼, 그 수가 ‘오징어 게임’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분들이 보고 싶어 한다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감지될 때 시즌2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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