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경 여행기’로 돌아온 이나영. / 웨이브
‘박하경 여행기’로 돌아온 이나영. / 웨이브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박하경 여행기’는 담담하지만 진하고, 편안하지만 울림이 있는 작품이다. 판타지인 듯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이고, 독특한데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는 박하경 그 자체로 존재한 배우 이나영 덕이기도 하다. 그가 아니었다면 이토록 자연스럽고 편안한, 매력이 넘치는 ‘박하경’은 탄생할 수 없었을 거다.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박하경 여행기’는 사라져 버리고 싶을 때 토요일 딱 하루의 여행을 떠나는, 국어선생님 박하경(이나영 분)의 예상치 못한 순간과 기적 같은 만남을 그린 명랑 유랑기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이종필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배우 이나영이 주인공으로 나선 작품으로, 지난달 24일 첫 공개된 뒤 각기 다른 장소에서 만나는 뜻밖의 인연과 의외의 사건을 통해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힐링’은 물론, 설렘과 즐거움, 따뜻한 위로를 전하며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그 중심엔 이나영이 있다.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2019) 이후 4년 만에 돌아온 그는 고등학교 교사로 토요일 딱 하루 걷고, 먹고, 멍 때리는 여행에서 예상치 못한 다양한 사건과 특별한 만남을 통해 희로애락을 겪는 박하경 그 자체로 분해, 섬세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연기로 공감을 선사, 안방극장을 매료했다.

특히 총 8편의 여행기를 담고 있는 ‘박하경 여행기’는 구교환부터 길해연‧박세완‧박인환‧서현우‧선우정아‧신현지‧심은경‧조현철‧한예리 등 새로운 인물들의 등장은 물론, 매 에피소드마다 독특한 분위기와 장르로 변주하며 다채로운 색깔을 완성하는데, 이나영은 그 중심을 단단히 잡고 안정적으로 극을 이끌며 완성도를 높인다. 

박하경 그 자체로 분한 이나영. / 웨이브
박하경 그 자체로 분한 이나영. / 웨이브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이나영은 “안 할 이유가 없었다”며 복귀작으로 ‘박하경 여행기’를 택한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상대 배우와의 호흡, 분위기, 공간에 내던져져 무방비한 자유로움이 나왔다. 나 역시 신기한 경험이었다”고 특별했던 ‘박하경 여행기’와의 여정을 돌아봤다.

-오랜만의 작품이다. ‘박하경 여행기’를 택한 이유는. 

“대단히 큰 결심은 없었다. 원래 뭔가 틀을 짜고 작품을 한다기보다 시나리오에만 집중하는 편이다. 그동안 계속 시나리오는 읽고 접하고 있었다. 그러다 ‘박하경 여행기’를 봤을 때 너무 좋았다. 모든 게 다 완벽했다. 구성 자체도 독특했고, 안에는 담백하고 신선한 느낌이 있었다. 또 지금 시대와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미드폼 콘텐츠라는 것도 좋았다. 이종필 감독의 전작을 봤기 때문에 감독님만의 감성도 궁금했다. 그래서 고민 없이 작품을 택했다. 안 할 수 없었다.”

-어떤 마음으로 임했나.

“솔직히 멍 때리기만 잘하면 되겠다고 쉽게 생각했다. 그러다 이종필 감독, 손미 작가와 의견을 나누고 정리하는데 그때 딱 현실적인 게 온 거다. ‘이 배우들이 다 나온다고?’부터 내가 어떻게 채워가야 하고 전체적인 흐름은 어떻게 끌고 가야 하나 등 처음에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 ‘현타’라고 하지, 그게 왔다. 걱정이 앞섰다. 다른 영화나 드라마처럼 캐릭터에 대해 정해진 게 하나도 없었고 설명도 없었는데, 그런 고민이 한바탕 지나가고 나서는 뭔가 가둬놓은 경계가 없으니 오히려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느낌, 현장에서 이 배우들을 마주했을 때 느낌에 집중하면 되겠다는 마음이 들더라. 물론 그게 더 어렵기도 했다. 준비할 감정이 없는 거다. 감정신이라고 하면 아침부터 뭔가 잡고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 과정 없이 가서 부딪혀야 했다. 나도 희한한 경험이었다.

할 때는 몰랐지만 하고 나서 보니 정해진 캐릭터에서는 나올 수 없는 무방비한 자유로움이 있더라. 잘 짜인 호흡보다는 조금 어색한 모습이 또 이 작품과 잘 맞지 않을까 싶어서, 감독님에게 NG도 그냥 살리자고 한 적도 있다.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했던 장면들이 많다. 그렇게 연출해 준 거다. 재밌는 경험은 내가 갑자기 촬영하다가 모기를 잡았다고 하더라. 휴지로 닦고 다시 이야기를 했다는데 난 기억도 안 난다. 그게 일상이잖나. 그만큼 현장 분위기가 열려 있었고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시청자들도 느낄 수 있는 이 작품만의 편안함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나영이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들을 언급했다. / 웨이브
이나영이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들을 언급했다. / 웨이브

-매 에피소드 새로운 배우들과 호흡을 맞춰야 했다. 어려운 점은 없었나. 가장 자극을 준 배우를 꼽자면.

“재밌었다. 좋았다. 스토리가 다르니까 (새로운 배우가 나오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다. 그분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다만 내가 누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워낙 멋지게 활동하고 연기를 다 잘하시는 분들이잖나. (자극을 준 배우는) 정말 꼽기 어렵다. 정말 에피소드마다 분위기가 다르고 캐릭터가 다르니까 같은 기준을 둘 수가 없다. 우선 박인환 선생님은 버스에서 손녀딸과 영상통화를 할 때 정말 길거리에서 봐왔던 어르신의 표정이 나오는데, 아 역시 싶더라. 자연스러움을 잘 이끌어내시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1회에 나온 선우정아 씨는 오히려 연기를 안 해본 분이라 좋았다. 어색하고 딱 떨어지지 않는 느낌이 너무 좋다고 생각했다. 긴장을 많이 했다고 하지만 현장에 갔을 때는 이미 많은 것을 덜어내고 온 느낌이었다. 서로를 바라보는데 이상한 울컥함이 있었다. 담백하게 표현했지만 그런 울컥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제자 한예리 씨와는 얼굴만 봐도 복합적인 감정이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 있어서  감정을 많이 누르면서 촬영했다. 심은경 씨도 너무 자유롭게 연기하니까 나도 같이 따라가졌다. 소소한 자극들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배우들과 서로 잘 주고받으면서 발전해나갔다.”

-그렇다면 박하경은 이나영의 실제 모습이 가장 많이 반영된 캐릭터이기도 하겠다.

“그런 것 같다. 평소 나의 모습을 아는 분들은 ‘진짜 이나영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은데?’라는 말을 하기도 하더라. 구교환 씨와 했던 리액션부터 해서 정말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나를 모르니까 내가 저렇게 이야기를 하는구나 싶었다. 연기하면서 굳이 어떤 톤을 맞추지 않았고 현장감으로 갔다. 나와 준 배우, 분위기, 나도 처음 가보는 공간, 현장에 내던져졌다.”

-의상 콘셉트나 비주얼 구축에 있어서 배우의 의견이 적극 반영된 느낌도 들었는데. 

“대부분 캐릭터를 만들 때 전체 룩을 먼저 생각하긴 한다. 시나리오가 결정이 되면 걷는 느낌과 전체적인 룩이 어떤 느낌이어야 하는지 생각한다. 머리는 계속 자르고 싶었다. 원래는 쇼트커트를 하고 싶었는데 그건 다음으로 넘겼다.(웃음) 열어놓고 제작한 옷도 있고 동묘에 가서 사기도 했다. 거의 내 스타일이긴 하다. 동묘에서 내가 또 따로 산 옷은 지금도 교복처럼 잘 입고 있다.”

박하경은 이나영이라 가능했다. / 웨이브
박하경은 이나영이라 가능했다. / 웨이브

-춤추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준비했나. 

“연습은 안 했다. 연습한 춤이 절대 아니지 않았나. 하하. 우선 첫 번째 춤 장면은 원래 없었는데 현장에서 감독님이 그런 감정을 표현하면 어떻겠냐고 하더라. 그런데 진짜 이해가 안 갔다. 어떤 감정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한 번 해보겠다고 하고 굉장히 어색하게 무언가를 했는데, 감독님이 좋다고 테이크를 한 번 더 가자고 하더라. 그런데 오히려 두 번째보다 뭣 모르고 했던 첫 번째 테이크가 더 좋았다. 학교에서 춤을 추는 장면도 연습은 안 했다. 처음에는 못췄는데 테이크를 몇 번 가니 익숙해졌다. 그래서 너무 잘 추는 거 아니냐고 앞에 걸 쓰라고 했다.(웃음) 일부러 미리 영상을 보진 않았다. 보면 재미없잖나. 그냥 막연히 따라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하경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그럴 만한 친구가 없다’고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라는 단어도 좋았고, 우리가 소소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뭔가 약속을 잡고 만나면 그동안의 일을 브리핑해야 할 것 같고 그렇잖나. 그냥 잡담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하지 않는 그런 시간이 생각났다.”

매력적인 배우 이나영. / 웨이브
매력적인 배우 이나영. / 웨이브

-평소 지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어떻게 해소하나.  

“일단은 동네 친구든 누구든 붙잡고 수다를 떠는 편이다. 여행할 수 있는 여건이 되면 여행도 좋아하는 편이긴 한데, 결국엔 내가 취미가 별로 없기 때문에 영화로 치유받긴 한다. 영화로 연기를 배우는 편이라, 영화를 보면서 넘어가지는 것 같다.”

-평소 여행 스타일도 궁금한데.  

“하경보다 조금 더 계획적이긴 하다. 그런데 이런 여행도 괜찮다는 것을 이번 작품을 하면서 느꼈다. 첫 신이 새벽 첫 기차를 타고 목포에 가면서 찍은 건데, 정말 잤다. 스태프들이 이렇게 나와도 괜찮냐고 할 정도로 진짜 잤다. 목포에 가서 스태프들과 맛집도 가고 커피도 마시고, 여유가 엄청 많더라. 당일치기 여행도 너무 괜찮구나 싶었다. 제주도를 당일치기로 간다고? 싶었는데 할 수 있겠는데 생각이 들더라. 숙제를 덜어내면 누구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을 느꼈다.”

-‘박하경 여행기’가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나. 

“하경은 여행을 숙제처럼 하지 않는다. 그것처럼 이 작품도 꼭 힐링해라, 뭔가 느끼라는 것보다 보면서 자기 안에 뭔가 감정이 들든 그냥 멍 때리면서 쉽게 봤으면 좋겠다. 그러다 생각나면 또 보고 이런, 강요되지 않는 뭔가였으면 좋겠다. 어떻게 보면 너무 빠른 지금 시대에 조금은 필요한 시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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