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밀수’로 돌아온 박정민. / 샘컴퍼니
영화 ‘밀수’로 돌아온 박정민. / 샘컴퍼니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박정민이 기어코 또 새로운 얼굴을 꺼내어 보였다. 새롭기만 한 게 아니다. 순박한 청년에서 야망 가득한 얼굴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다채로운 매력을 보여준 것은 물론, 비열하면서도 허술하고 섬뜩하면서도 코믹한, 밉지만 결코 미워할 수만은 없는 입체적인 캐릭터를 완성하며 또 한 번 관객을 홀린다. 

영화 ‘밀수’(감독 류승완)는 바다에 던져진 생필품을 건지며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 앞에 일생일대의 큰 판이 벌어지면서 휘말리는 이야기를 담았다. 류승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으로 지난 26일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극 중 장도리를 연기한 박정민을 향한 호평도 쏟아지고 있다. 장도리는 카리스마 있는 춘자(김혜수 분)와 진숙(염정아 분) 사이에서 큰 소리 한 번 내지 못했던 순박한 막내에서 밀수판에 공백이 생기자 인생을 바꿔보겠다는 야망을 갖게 되는 인물이다. 

박정민은 지금껏 보지 못한 외적 변신부터 흠잡을 데 없는 캐릭터 소화력, 코믹과 액션 연기까지 완벽 소화하며 내로라하는 선배 배우들 사이 결코 지지 않는 존재감을 뽐낸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박정민은 매력적인 캐릭터들 사이 유독 더 빛나는 장도리에 대해 “내가 한 것은 없다”며 “류승완 감독이 대부분 만들어 주신 것”이라고 겸손한 반응을 보였다.

박정민이 ‘밀수’를 향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 샘컴퍼니
박정민이 ‘밀수’를 향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 샘컴퍼니

-완성된 영화를 본 소감은. 

“내겐 되게 특별한 작품이라 많이 기다렸고 어떻게 나왔을지 궁금했다. 보통 (처음 영화를 볼 때) 내가 어떻게 나오는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데, 이 영화는 처음부터 집중해서 보게 됐다. 너무 기대했고 오래 기다린 작품이라 (관객으로) ‘밀수’라는 영화를 보러 들어가자는 마음이 컸다. 앞으로 쭉쭉 잘 가는 느낌이 들어서 관객들도 재밌게 볼 수 있겠구나,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특별한 작품이고 기다렸다고 했다. 이유가 있다면.

“우선 류승완 감독님이 좋은 역할을 주셨다는 것부터 특별했다. 정말 팬이었다. 현장에 가면서도 되게 떨면서 갔다. 너무 잘하고 싶으면 떨리고 긴장되니까. 그런데 막상 현장에 가니 정말 즐거웠다. 감독님 덕분이기도 했지만 (김)혜수 선배와 (염)정아 선배의 덕이 크기도 했다. 두 분이 현장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셨다. 후배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현장에 나올 수 있게 만들어주셔서 촬영하면서도 너무 좋았다. 애정이 많이 가는 영화이고 뜻하지 않게 오래 기다리게 돼서 더 애틋한 마음이다.”

-장도리를 향한 반응도 뜨겁다. 어떤 인물로 다가왔나. 캐릭터 구축하는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지점은. 

“눈앞 이익만 좇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주변에 어떤 훈육이나 조언을 해줄 사람도 없고 떠돌이 생활을 해서 정체성이 확립되기도 전에 이미 자라버린 어른. 그래서 그때그때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사람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연기할 때도 상황에 맞춰 장도리가 했을 법한 선택이 무엇이고 그 선택을 했을 때 이 사람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지 생각을 많이 했다. 장도리의 전후 모습이 있는데 전에 갖고 있던 모습을 완전히 버리지는 말자는 생각을 했다. 악역이라고 해서 나쁘게 연기할 거야라고 생각하고 들어가기보다 어긋난 선택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나빠져 버린 어떤 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빌드업을 해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촬영했다.” 

-류승완 감독은 캐릭터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했나.  

“‘밀수’에 나오는 인물 중에서 본인이 가장 잘 아는 인물이 장도리라고 했다. 실제 본인의 고향에 있던 어떤 아저씨가 모티프가 돼서 그려놓은 캐릭터라고. 그래서 본인이 디렉팅을 많이 하는 거라고, 네가 못해서 그러는 게 아니니 오해하지 말라고 하시더라.(웃음) 잘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해주셨다. 내가 한 것은 거의 없고 감독님이 만들어주신 거다. 시나리오에 70%, 현장에서 감독님이 29% 만드셨다. 잘 찾아보면 1% 정도는 내가 한 것도 있지 않을까.”

파격 변신을 보여준 박정민. / NEW
파격 변신을 보여준 박정민. / NEW

-류승완 감독이 왜 장도리 역에 박정민을 캐스팅했다고 하던가.

“그런 말은 안 하셨고, 그냥 박정민이라는 배우랑 같이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한 10년 전쯤 감독님과 단편 영화를 한 적이 있다. 그때 그 현장이 되게 좋아서 이후에도 감독님과 연락도 종종 나누고 찾아뵙기도 하고 그랬다. 또 외유내강에서 만든 영화들에 여러 편 출연하면서 자연스럽게 인연이 만들어진 것 같다. 감독님이 이제는 박정민하고 해볼 때가 됐다고 생각한 타이밍이 아니었을까.(웃음)”

-장도리의 비주얼도 인상적이었다. 구축 과정이 궁금하고, 장도리로 변신한 본인의 모습을 처음 마주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

“의상은 (김)혜수 선배가 갖고 있던 레퍼런스가 도움이 많이 됐다. 평소에도 그냥 패션 잡지나 인터넷에서 보면 좋은 게 있으면 저장해둔다고 하시더라. 이번 영화 준비할 때 장도리가 이런 옷을 입으면 어떨까 하고 보내준 사진이 많아서 거기서 고른 것들이 내가 입고나온 옷이었다. 평상시 내가 절대 입을 수 없는, 시도조차 쳐다보지도 않는 그런 옷을 입고 머리를 하고 금붙이를 차고 처음에 딱 나왔을 때 사실 되게 신났었다. 무기가 돼주는 느낌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 다 무기가 돼 준 느낌이라 그 룩에 너무 고마웠다.”

-김혜수가 칭찬을 아끼지 않더라.  

“정말 대선배님이고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 중 한 분인데, 선배가 눈만 마주치면 좋다고 하니 정말 감사하고 좋았고 그랬다. 다만 표현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감사한 마음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한 게 죄송했다. 그 정도로 칭찬을 많이 해주셨는데 수줍어서 우물쭈물한 게 죄송하다. 혜수 선배가 나를 후배가 아닌 동료로, 한 프레임 안에서 함께 연기하는 배우로 상대를 해주는 게 느껴져서 큰 힘이 됐다. 나는 주눅이 잘 드는 사람이라 무섭거나 이러면 바로 티가 나는데, 대선배가 동료처럼 대해주시니 정말 좋았고 연기하는 데도 도움이 많이 됐다.”

믿고 보는 배우 박정민. / 샘컴퍼니
믿고 보는 배우 박정민. / 샘컴퍼니

-류승완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연출자로서 갖고 있는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감독님과 작업하고 나면 더 팬이 될 수밖에 없다. 내가 나온 영화의 감독 역할뿐 아니라, 내가 배우 생활을 하고 영화를 계속할 사람으로서의 어떤 시선이나 태도 같은 것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앞으로 어떻게 해나갔으면 좋겠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시고 애정이 느껴져서 팬을 넘어 인생에서 의지하는 분으로 내 안에 자리잡은 분이다. (류승완 감독의 강점은) 현장에서 그 누구보다 발로 뛴다. 무엇 하나 놓치지 않기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생각하게 한다. 그동안 봐온 영화들도 감독님의 그런 열정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류승완 감독뿐 아니라, 박찬욱 감독과도 ‘헤어질 결심’을 함께 했다. 내로라하는 감독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변화하고 성장한 부분도 있을 것 같은데.

“‘밀수’ ‘헤어질 결심’도 그렇고 지금 ‘전, 란’을 찍으면서 내가 마음가짐이 바뀐 게 뭐냐면 중요하지 않은 장면은 없다는 거다. 감독님들이 그 어떤 것도 허투루 하는 게 없으시니까 내가 덜렁덜렁 가면 들킨다. 들킬 것 같고 들키고 그러니까 그냥 슬리퍼 신고 덜렁덜렁 (현장에) 가는 일이 없어졌다. ‘밀수’가 특히 더 그랬다. 방심하지 않게, 두 감독님이 역할을 해주셨다.” 

-덜렁덜렁 현장에 간 적이 있나. 워낙 준비를 많이 하는 배우라 상상이 안 된다.

“그럼. 그 와중에도 있다. 오늘은 대사 없으니까 뭐 하면서 갈 때도 있다. 마음가짐에 따라 그 신이 바뀐다. 내가 그 신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그 신에서 내가 아예 안 보인다. 보이지 않아도 상관없고. 그렇지만 준비를 조금 해가면 내가 그 신에서 어떤 역할이든 하고 있다. 그 신이 조금 더 풍성해진다. 중요하지 않은 신은 없구나 생각을 하게 되더라. 대세에 지장은 없지만, 100%를 120%로 만들어줄 수 있는 배우의 준비 자세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

박정민이 달라진 마음가짐을 언급했다. / 샘컴퍼니
박정민이 달라진 마음가짐을 언급했다. / 샘컴퍼니

-어떤 역할을 하든, 무슨 작품이든 박정민의 열연에 대해 호평이 쏟아진다. 이에 대한 부담감은 없나. 

“가끔씩 생각한다. 내가 무슨 영화를 찍었고 작품을 했는지 검색해서 찾아보기도 하고 이것도 했지 저것도 있었지 한다. 돌아보면 모든 역할과 영화들이 다 나를 괴롭혔더라. 찍을 때도 그랬고 개봉했을 때도 그랬고 여러모로 마음고생을 많이 시켰더라. 그러다 보니까 다 소중하다. 남들이 바라보는 나의 필모그래피에 대한 느낌과 내가 바라보는 나의 필모그래피의 느낌은 많이 다를 것 같다. 누군가는 나를 그것으로 평가하겠지만 나는 이것을 아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막 분석하고 평가해서 짓누르는 것은 굳이 내가 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부터 들어서 그 어떤 것이라도, 욕을 먹은 작품이더라도 내겐 너무 소중하고 아껴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내가 나를 너무 괴롭히는 그 본성은 없어지진 않는 것 같거든. 내가 나를 학대하고 괴롭히는 본성은 어디 가는 게 아닌 것 같더라. 그런데 훈련이라고 해야 할까. 마음의 훈련을 하다 보니 현장에서도 유연해지는 것 같고 작품을 대하는 태도 자체도 유연해지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삶이 조금 더 여유로워지는 느낌이다. 결국에는 내가 행복하려고 하는 일이잖나. 그래서 조금 더 여유롭게 생각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본성이 사라지진 않겠지만 어떻게 잠재우고 훈련하느냐에 따라서 내 삶이 바뀌겠지 싶다.”

-단편영화 연출부터 최근에는 유튜브나 여행 예능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 중이다. 이러한 활동이 배우 박정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있다면. 

“그냥 그때그때 내게 가르쳐 주는 것들이 있다. 그 가르침이 시간이 지나고 보면 틀린 걸 수도 있지만 되게 좋고 재밌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내가 또 어떤 일을 할지 모르는데 기회가 있을 때, 그렇다고 무턱대고 다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경험해 보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거기서 얻는 재미가 있고 영감을 받을 때도 있고 가르침을 얻을 때도 있다. 그런 것들이 쌓여서 내가 되는 거겠지. 나도 궁금하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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