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감독 엄태화)가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감독 엄태화)가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아파트는 주민의 것.” 온 세상을 집어삼킨 대지진, 그리고 하루아침에 폐허가 된 서울. 모든 것이 무너졌지만 오직 황궁 아파트만은 그대로다. 입주민들은 소문을 들은 외부 생존자들이 황궁 아파트로 몰려들자 위협을 느끼기 시작한다. 

생존을 위해 하나가 된 그들은 새로운 주민 대표 영탁(이병헌 분)을 중심으로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막아선 채 아파트 주민만을 위한 새로운 규칙을 만든다. 덕분에 황궁 아파트는 지옥 같은 바깥세상과 달리 주민들에겐 더없이 안전하고 평화로운 유토피아가 된다. 하지만 끝이 없는 생존의 위기 속 그들 사이에서도 예상치 못한 갈등이 시작된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감독 엄태화)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돼 버린 서울, 유일하게 남은 황궁 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모여들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재난 드라마다. 영화 ‘잉투기’ ‘가려진 시간’ 등을 연출한 엄태화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2014년 연재 이후 호평을 얻은 김숭늉 작가의 인기 웹툰 ‘유쾌한 왕따’ 2부 ‘유쾌한 이웃’을 새롭게 각색했다.  

독창적이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이다. 대지진이 휩쓸고 간 서울에서 무너지지 않은 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모인다는 참신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재난’ 자체가 아닌 재난 이후 생존에 대한 열의가 커질수록 깊어지는 ‘인물’의 감정선, 주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갈등에 초점을 맞춰 현실적이고 공감 가득한 이야기를 펼쳐낸다. 

독창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세계관을 완성한 ‘콘크리트 유토피아’. / 롯데엔터테인먼트
독창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세계관을 완성한 ‘콘크리트 유토피아’. / 롯데엔터테인먼트

그래서 더 아프게 다가온다. 생존을 위해 서로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들, ‘모두’가 아닌 ‘나만’ 살아남기 위해 이기심을 드러내는 이들의 모습은 특별한 악인이 아닌 그저 평범한 우리의 모습이다. 때로는 분노를 자아내기도 하지만, 누구도 비난할 자격은 없다. 과연 나라면 극한으로 치달은 상황 속 나, 나의 가족보다 남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몰입감이 상당하다. 촘촘한 짜임새와 탄탄한 내러티브로 처음부터 끝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이어가면서도, 허를 찌르는 블랙코미디로 전체적으로 어둡고 우울하게 흘러가는 전개 속 분위기를 환기한 덕이다. 연출자의 영리한 선택이다. 

완성도 높은 프로덕션도 몰입을 배가한다. 대지진 이후 서울과 황궁 아파트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담아낸 것은 물론, 아파트 내부까지 각 캐릭터의 특징을 녹여낸 디테일한 연출로 신선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익숙한 클래식부터 대중가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 활용도 ‘콘크리트 유토피아’만의 무드를 완성한다. 꼭 엔딩 크레디트에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극장을 나서길 추천한다. 여운이 더 짙어질 것이다.

호연을 펼친 배우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김도윤‧박서준‧박보영‧박지후‧이병헌‧김선영. / 롯데엔터테인먼트
호연을 펼친 배우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김도윤‧박서준‧박보영‧박지후‧이병헌‧김선영. / 롯데엔터테인먼트

이병헌은 또 새롭고, 또 한 번 기대를 뛰어넘는다. 아파트 안에서 점점 영향력을 넓혀가는 영탁의 변화를 디테일하고 치밀하게 빚어낸다. 소탈한 웃음을 보이다가도 섬뜩한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스크린을 압도한다. 도대체 그의 한계는 어디일까. 단 1초도 놓칠 수 없는 명연기의 향연을 펼친다. 

황궁 아파트의 부녀회장 금애로 분한 김선영의 활약도 돋보인다. 위기 상황에서 아파트와 주민을 위해 앞장서는 동시에 그 누구보다 자신의 이익이 우선인 캐릭터를 파워풀한 에너지로 소화한다. 이병헌과 대립하는 장면에서는 스파크가 튀는 듯 강렬하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황궁 아파트로 돌아온 생존자 혜원 역의 박지후, 황궁 아파트의 흐름을 거스르는 비협조적인 주민 도균도 제 몫을 해내며 존재감을 뽐낸다. 강한 책임감을 지닌 민성으로 분한 박서준과 모든 것이 무너진 현실에서도 신념을 잃지 않으려는 명화 역의 박보영은 강렬하진 않지만 무난한 활약을 보여준다. 러닝타임 130분, 오는 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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