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밀수’로 극장가 저격에 성공한 류승완 감독. / NEW
영화 ‘밀수’로 극장가 저격에 성공한 류승완 감독. / NEW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영화 ‘밀수’(감독 류승완)는 바다에 던져진 생필품을 건지며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 앞에 일생일대의 큰 판이 벌어지면서 휘말리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지난달 26일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뒤, 신작 공세에도 흔들림 없는 흥행세를 이어오고 있다. 

메가폰은 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2002), ‘아라한 장풍대작전’(2004), ‘부당거래’(2010), ‘베를린’(2013), ‘베테랑’(2015), ‘군함도’(2017), ‘모가디슈’(2021)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관객을 사로잡아 온 류승완 감독이 잡았다. 

‘모가디슈’ 이후 2년 만에 돌아온 류승완 감독은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향연과 반가운 여성 중심 서사, 바다와 도시를 오가는 여름 영화 특유의 시원한 감성과 신선한 수중 액션 등 장르적 쾌감까지 모두 담아내며 관객을 제대로 매료하고 있다. 1970년대 향수를 자극하는 음악과 미장센, 김혜수‧염정아‧조인성‧박정민‧고민시‧김종수 등 배우들의 호연도 빼놓을 수 없는 호평 이유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류승완 감독은 영화의 출발부터 촬영 비하인드 등 ‘밀수’와 함께 한 순간을 되돌아봤다. “끝나지 않길 바랐던 현장은 처음이었다”며 ‘밀수’ 현장을 떠올린 그는 “팀을 잘 이끌어 준 김혜수, 염정아 덕”이라며 배우들에게 공을 돌렸다. (*해당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돼있습니다.) 

여성 투톱 주연을 앞세운 영화 ‘밀수’. / NEW
여성 투톱 주연을 앞세운 영화 ‘밀수’. / NEW

-영화의 출발이 궁금하다. 

“기획의 출발은 외유내강 부사장이었다. ‘시동’ 촬영하러 군산에 갔다가 지역 박물관에서 1970년대 해녀들이 밀수에 가담했다는 사료를 발견했다. 그보다 전에 미스테리아라는 장르 잡지에서 박재식 작가가 쓴 부산 지역에서 벌어진 70년대 여성 밀수단의 이야기를 보고 흥미를 느끼던 참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연출할 생각은 아니었고 회사에서 개발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가 초기 각본이 나온 것을 보고 ‘이건 못 봤던 이야기다’ 싶더라. 해녀라는 직업군 자체가 우리나라와 전 세계적으로 몇 군데 없잖나. 유럽에 비슷한 직업이 있지만 거의 남자들이다. 여성들이 바다를 배경으로 활극을 펼친다는 것이 신선했고 내게도 새로운 시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하게 됐다.”

-유독 치열한 여름 극장가 유일하게 여성 투톱을 내세웠다. 흥행에 대한 부담감은. 

“부담은 영화를 할 때마다 항상 있다. 장르 영화를 하는 사람들은 비슷한 걸 하는 것 같지만 또 그 안에서 재탕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새로운 걸 하는 셈이다. 이번 영화는 부담보다는 흥분이 컸다. 그냥 여배우도 아니고 김혜수, 염정아잖나. 그리고 두 배우의 아우라가 워낙 세긴 하지만 두 봉우리만 있는 영화가 아니다. 조인성과 박정민, 고민시와 김종수라는 큰 산맥에 코어를 두 배우가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영화는 신구의 조화도 있고 남녀의 조화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꼭 어떤 여성 서사를 한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사건에 휘말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에 집중했다.” 

류승완 감독이 춘자와 진숙의 서사에 대한 반응에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 NEW
류승완 감독이 춘자와 진숙의 서사에 대한 반응에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 NEW

-춘자와 진숙의 서사가 조금 더 담겼으면 하는 평가도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다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약간의 상상의 여지를 두는 것이 이 영화를 더 생각하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영화 말미 모든 것을 알게 된 춘자와 진숙이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내용을 보면 별다른 이야기를 하진 않는다. 시나리오에는 많은 것을 담고 있었는데, 배우들과 촬영 내내 고민하고 이야기하면서 다시 같이 만든 장면이다. 친구 사이에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지 않잖나. 진심에는 많은 말이 필요 없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 여백을 관객이 다 채워줄 거라고 생각했다. 또 각자 자신의 취향과 삶의 궤적을 따라 꿰맞추는 것도 영화가 주는 재미가 아닌가 싶다.”

-수중 액션 시퀀스도 인상적이었다. 촬영은 어땠나. 

“처음 테스트를 하는데 배우들이 물속에서 너무 아름답게 움직이는 거다. ‘와, 됐다’ 했는데, 알고 보니 배우 반 이상이 수영을 못하는 거다. 그래서 훈련이 필요했다. 완전 깜짝 놀랐다. 정말 물개처럼 움직였는데.(웃음) 수영을 제대로 편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김재화뿐이었다. 촬영을 하려면 카메라도 물에 들어가야 하잖나. 카메라를 세팅해서 앵글을 잡아놓는데, 배우들이 입수하는 동안 물결이 쳐서 잡아놓은 앵글이 움직인다. 다시 잡으면 또 움직였다. 안에서 테스트 하고 배우가 들어가서 찍으면 촬영팀의 산소방울이 올라온다. 와, 내가 정말 왜 이걸 시작했을까 후회의 연속이었다. 왜 이걸 한다고 했을까. 하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케이가 났을 때는 또 와, 이게 된다고? 싶더라. 아무리 힘들어도 배우, 스태프들이 모두 헌신해 줘서 할 수 있었다.” 

-수중 액션을 택한 이유는. 

“첫 번째는 내가 해보지 않았던 것, 남들도 해보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시도한 거다. 또 중력의 작용이 지상에서보다 덜 할 때 나오는 움직임이 더 자유로울 수 있겠다 싶었다. 중력의 작용은 덜 받지만 물의 저항을 더 받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 대결에서 오히려 물에 익숙한 사람들이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남자가 아무리 빠르고 강력한 힘을 갖고 있더라도 물속 상황에서는 달라지기 때문에 현실적이면서도 동시에 판타지라고 생각했다. 김희진 코치를 중심으로 한 수중 싱크로나이즈 팀의 공이 굉장히 크다. 무술감독과 계속 상의하면서 가능한 게 어떤 게 있을까 찾는 과정이었다.

대표적으로 스카이다이빙하면서 두 사람이 하늘 위에서 격렬하게 붙어 싸우는 장면을 많이 봤잖나. 그런 장면은 비행기에서 떨어지는 상황이 아니면 연출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물속에서라면 근접한 카메라의 움직임과 몸이 엉켜서 움직이는 동선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무술감독, 싱크로나이즈 팀과 이야기를 해서 테스트를 해봤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해볼 수 있는 것들을 테스트하면서 제안을 하고 그렇게 가능한 것들을 만들어 나갔다. 또 진숙과 춘자가 크로스 하면서 내려가고 올려주고 하는 것은 원래 대본에는 하이파이브였다. 그런데 싱크로나이즈 팀이 멋진 동작을 만들어 준거다. 처음 하는 시도들이었기 때문에 무모한 것도 있었지만 새로운 것을 찾는 것에 게을리하지 않고 노력했다.”

호연을 펼친 ‘밀수’ 팀. (위 왼쪽부터 시계뱡항으로) 김혜수‧조인성‧박정민‧김종수‧고민시‧염정아. / NEW
호연을 펼친 ‘밀수’ 팀. (위 왼쪽부터 시계뱡항으로) 김혜수‧조인성‧박정민‧김종수‧고민시‧염정아. / NEW

-배우들의 호연도 돋보였다. 현장에서 감탄한 순간을 꼽자면.  

“너무너무 많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염정아의 눈물 연기, 조인성의 첫 등장에서의 톤과 미소, 고민시의 커피를 한약 달이듯이 탄다는 대사. 박정민이 혀를 날름거리는 장면은 현장이 충격과 공포였다. 조인성도 보고 ‘이렇게까지 한다?’ 했을 정도다. 김종수 선배가 총을 쏘고 놀라는 장면은 옛날 무성영화 시절 코미디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제일 좋은 것이 배우들의 그런 연기를 가장 먼저 볼 수 있다는 거다. 현장에서 깔깔 많이 웃었다. 우리 배우들은 창조적인 예술가였다. 배우들은 나의 디렉션에 따라 했다고 하지만 나는 배우들의 덕을 봤다. 그렇게 이 배우들이 겸손한 사람들인 거다. 자기들이 다 해놓고. 욕먹을까 봐 핑계를 대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웃음)”

-다만 극 초반 김혜수의 연기가 다소 튄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모든 영화에 그런 지적은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다. 극 후반부 춘자의 진심이 보이는 두 개의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들이 없었다면 명백하게 오버액션이다. 하지만 춘자의 반전을 본다면, 초반 춘자는 살아남기 위해 ‘연기’를 한 거다. 그래서 나는 더 짠했다. 코미디언이 무대 뒤에 가서 지치는 것처럼, 돈을 벌기 위해 사람을 상대할 때와 실제 나의 모습이 다른 것처럼, 춘자도 그 시절 그렇게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살아야만 했던 사람이었던 거다. 취향에 따라 그것이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지만, 김혜수 선배가 그 지점에서 최선을 다해 표현해줬다고 생각한다.”

-유독 팀워크가 좋아 보였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내가 이 영화를 왜 재밌게 찍었나 생각해 보면 현장에서 어떤 기싸움이 1도 없었다. 경쟁 구도가 아니었다. 그게 너무 편했다. 물론 현장에서는 최소한의 긴장이 있다. 어떤 장면을 찍을 때 목표와 방향이 있으니 거기로 향해가야 하는 긴장은 있는데,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배우들 사이 경쟁 구도가 있단 말이다. 심지어는 카메라를 두고 경쟁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런 게 없었다. 그냥 호흡이 잘 맞았다는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배우들의 인품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김혜수, 염정아라는 두 코어가 정말 잘 이끌어줬다. 연출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서로 독려하는 분위기가 정말 편하다.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류승완 감독이 김혜수(왼쪽)와 염정아를 향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NEW
류승완 감독이 김혜수(왼쪽)와 염정아를 향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NEW

-김혜수, 염정아는 어떤 배우였나.

“본능적으로 김혜수, 염정아가 떠올랐다. 두 배우의 오랜 팬이기도 하고, 의외로 동시에 나온 작품이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지 했다.(웃음) 김혜수가 불이라면 염정아는 물 같았다. 춘자가 팔팔 끓는 용광로 같은 뜨거움을 갖고 있다면, 진숙은 쿨톤. 춘자가 그렇게 그래프를 왔다 갔다 하는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진숙이 톤을 차갑게 유지해 줬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염정아가 전체적인 밸런스 안에서 쿨톤을 연기해 줬기 때문에 장도리도 막 갈 수 있었고 모든 캐릭터가 그랬다고 생각한다.  

결과는 관객이 판단할 몫인 것 같고, 같이 작업을 한 사람으로서는 두 배우의 태도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이래서 김혜수 김혜수 하는구나, 이래서 염정아 염정아 하는구나 싶더라. 염정아는 자기 촬영이 끝나도 집에 안 가고 다른 배우들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영화 속 진숙 같은 느낌이 있었다. 지방에서 촬영할 때 ‘발신제한’ 개봉했는데, 코로나19 때 마스크 탁 쓰고 개봉 날 해녀들 데리고 가서 보고 오더라. 완전히 진짜 대장이었다. 그런데 그게 단순히 시키는 대로 해 이런 선배가 아니다. 그렇게 잘 챙겼다. 

김혜수는 스태프들 뒷정리하는 걸 보면서 운다.(웃음) 화장실 가는 나를 붙잡고 짐 정리 하는 스태프들을 보면서 ‘저렇게 열심히 한다’고 하기에 ‘원래 다 그렇게 한다’고 했더니 ‘우리 팀은 다르다’면서 울더라. 무슨 날만 되면 선물을 해준다. 김혜수가 추석 때 모든 스태프들에게 신발을 선물해 줬는데, 현장에서 신는 게 너무 아까워서 이 영화가 공개되는 날부터 신겠다고 해서 기자간담회 때 처음 신은 거다. 현장은 마치 김혜수, 염정아의 주부 가요 교실 같았다. 다 같이 박수 치고. 두 분이 영화 전체 현장 분위기를 이끄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오락부장이었다.”

좋은 현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류승완 감독. / NEW
좋은 현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류승완 감독. / NEW

-배우들에게 공을 돌렸지만, 그들은 류승완 감독이 이 영화를 선택하는 데 큰 이유라고 했다. 좋은 현장을 유지하기 위한 감독의 노력이 있다면. 

“‘밀수’ 현장은 촬영 마지막 날 안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한 게 처음이었다. 나는 현장이 항상 힘든 사람이다. 촬영이 끝나고 숙소에 돌아오면 왜 이렇게밖에 못했을까 자책하고 다음날 빠진 게 뭐지, 놓친 게 뭐지, 그런 생각들로 항상 수면장애에 시달린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내가 관객들보다 즐거우면 안 되는데 싶을 정도였다. 아주 오랜 세월 함께 한 동료, 스태프들과 팀워크를 정말 잘 이끌어준 배우들의 공이 크다.  

내가 노력하는 것은 항상 실수할 수 있고 틀린 선택을 할 수 있고 잘못된 것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준비를 가급적 잘하자는 거다. 그게 연출에 임하는 나의 기본적인 태도다. 현장에서는 모든 노력하는 것들에 대해 잘 반응해 주려고 한다. 잘 웃고. 현장에서 어려운 장면을 촬영하고 나면 박수를 잊지 않고 치려고 한다. 내 현장이 노동의 강도가 세고 준비해야 할 것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그 현장에서, 그 자리에서 보상받을 수 있게 하자는 마음이다. 물론 잘 안될 때도 있다. 하지만 가급적이면 즐거운 장면에서 더 크게 웃고 안타깝고 힘든 장면에서는 그것에 걸맞은 반응을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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