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제갈민 기자  “기아 노조가 고용세습 안 해 준다고 파업한다던데 제 정신인건가.”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실제로 작성된 내용이다. 국민들 사이에서 이러한 질타가 이어지는 이유는 기아의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임단협)에서 노조가 사측의 ‘단체협약(단협)의 고용세습과 관련된 조항 삭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아 노사 간 임단협은 4개월째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기아 사측이 올해 임단협에서 노조에 요구한 사항 중 하나는 ‘단협 27조 1항’의 삭제다. 기아 노조 단협 27조 1항은 ‘재직 중 질병으로 사망한 조합원의 직계가족 1인, 정년퇴직자 및 장기근속자(25년 이상) 자녀를 우선 채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실상 고려·조선시대 당시 ‘공신 또는 당상관의 자손이나 친척을 과거에 의존하지 않고 관리로 채용’하는 음서제와 다를 바 없는 고용세습 조항이다.

사측이 고용세습 관련 단협 조항 삭제를 요구하는 이유는 단순히 외부의 곱지 않은 시선도 일부 작용했을 것으로 보이나 근본적으로는 고용노동부가 지적을 하면서 법적조치를 취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올해 들어 노동부는 기아 노조의 우선·특별채용 단협 조항에 대해 채용 기회의 공정성을 해치는 ‘위법’이라고 지적하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사측은 노동부의 명령에 따라 노조에 의견을 전달하고 단협 수정을 요청했으나 노조 집행부의 반발에 가로막혀 단협 개정이 이뤄지지 못했다. 참다못한 노동부는 지난 4월 노사 대표를 노동조합법 위반 혐의로 입건하는 등 법적조치까지 취하고 나섰다. 명분을 얻은 사측은 고용세습 관련 단협 조항을 삭제하자고 노조 측에 지속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그럼에도 기아 노조는 “고용세습은 수년 전부터 실행하지 않아 개정(삭제)할 필요가 없다”면서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에서 정의선 회장으로 내려오는 재벌 경영 세습에 대해 먼저 답하라”고 말하며 몽니를 부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조는 사측이 자신들의 요구조건을 받아주지 않자 오히려 파업을 예고했다.

이를 두고 국민들 사이에서는 기아 노조에 대해 비판과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고용승계가 되든 안 되든 ‘내가 여기 다녔으니 내 자식도 다니게 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 “무슨 고려시대 문벌귀족인가”, “생떼 쓰는 노조” 등 대부분 노조의 행태에 혀를 차고 있다.

사실상 기아 노조의 주장은 공감대 형성을 하지 못한 셈이다. 그럼에도 고용세습 단협 조항을 물고 늘어지는 이유는 다른 것을 얻어내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게 ‘64세 정년 연장’이다. 현재 노령연금을 수령하는 나이는 1969년 이후 출생자는 65세부터다. 퇴직 후 바로 연금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얘기인 셈이다.

그렇다할지라도 기아 노조 집행부의 방식은 도를 넘었다. 노동부가 위법하다고 판단한 고용세습 단협 조항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본인들이 칼자루를 잡았다는 이유만으로 사측에 다른 것을 내놓으라고 하는 행태는 인질극이나 다름없다.

기아 노조가 알아야 할 점은 ‘고용세습 관련 단협 삭제’는 애초에 사측의 제안이 아닌 정부기관인 노동부가 법에 따라 지시한 명령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이를 따르지 않고 생떼를 쓰며 ‘이거(고용세습 조항)와 저것을 바꾸자’는 식의 협상 요구는 몰상식한 행동이다.

‘법’은 인간이 사회에서 공동으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준이다. 보통 법을 어기면 철퇴를 맞게 돼 있다. 기아 노조가 원하는 것을 얻고 싶다면 최소한 법은 지키며 요구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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