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겸 감독 조현철이 첫 장편 연출작 ‘너와 나’로 관객 앞에 선다. /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
배우 겸 감독 조현철이 첫 장편 연출작 ‘너와 나’로 관객 앞에 선다. /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영화 ‘너와 나’(감독 조현철)는 서로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마음속에 담은 채 꿈결 같은 하루를 보내는 고등학생 세미(박혜수 분)와 하은(김시은 분)의 이야기를 담았다. 

‘부스럭’ ‘대문아’ 등 단편 연출작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은 배우 겸 감독 조현철이 선보이는 첫 장편영화로,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 △제11회 무주산골영화제 △제23회 가오슝영화제 △제18회 파리한국영화제 등 유수의 영화제에서 먼저 소개돼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이끌어내며 일찌감치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2016년 개인적인 일을 겪으면서 죽음을 하루 앞둔 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는 ‘감독’ 조현철은 하은과 세미, 두 여고생의 우정과 사랑을 담은 ‘너와 나’를 통해 ‘사랑’과 ‘죽음’을 이야기하며 먹먹한 위로를 건넨다. 그리고 이는 2014년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이들에 대한 추모로 이어진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조현철은 개인적인 경험, 사회적 사건 등을 겪으며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며 “꼭 해야만 하는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 그 기억이 나를 잡아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너와 나’를 세상에 꺼낸 이유를 밝혔다.   

먹먹한 위로를 건네는 ‘너와 나’. /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
먹먹한 위로를 건네는 ‘너와 나’. /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

-‘너와 나’를 세상에 내보이기까지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무엇인가.  

“시나리오 자체에 대한 만족이 안됐다. 지원 사업에 내도 다 떨어졌다. 4~5번 정도 떨어졌던 것 같다. 일이 많았다. 그 와중에 코로나19가 터져서 완전히 접어야 하나 생각까지 했다. 생각해 보면 때가 안됐던 것 같다. 이 영화가 내 안에서 충분히 익지 않았다는 느낌이 계속 있었던 것 같다. 때가 되면 자연히 과열이 열리듯 이 작품도 완성되지 않을까 싶었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떠올렸고, 세월호 참사를 다루게 된 배경도 궁금하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출발해서 어떤 일들을 겪고 삶이나 죽음에 대해 다르게 볼 수 있는 관점이 생겼다. 그냥 지나치거나 잊으려고 했던 사건을 다시 바라보게 됐다. 상실이나 쉽게 잊힐 수 있는 죽음에 대해 그래도 의미를 부여하고자 이 작업을 시작했던 것 같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죽음을 하루 앞둔 어떤 여학생의 하루가 떠올랐고 그것을 이 사건과 엮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민감한 소재기도 하다. 그럼에도 꼭 해야 했던 이유가 있다면.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무슨 느낌인지 모르겠는데 정말로 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할아버지를 본 적은 없지만 의사였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많이 해서 그 당시 고문을 많이 당했다. 왜 그런 말을 꼭 해야 할까 생각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 또한 할아버지와 비슷한 감정이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이 이야기를 기억해야지 꼭 해야지라기보다, 이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고 이 사건을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야기가, 그 기억이 나를 잡아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세미와 하은, 두 여고생의 우정과 사랑을 이야기한 ‘너와 나’. /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
세미와 하은, 두 여고생의 우정과 사랑을 이야기한 ‘너와 나’. /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

-사건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거나 떠올리게 하는 것 대신 다양한 은유적 표현을 사용했다. 어떤 고민을 했나.  

“이 소재를 영화적인 스펙터클이나 소재 자체로 이용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거부감이 들었다. 그래서 시작할 때부터 은유적이고 보편적인 방식으로 다루고자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는 게 느껴지더라. 처음에는 ‘난 이런 영화를 찍을 거야’라는 말을 하면 바로 그 사건을 떠올렸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알아채지 못하더라. 얼마큼 드러내야 하는지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해서 수정했다. 

아이들이 배에 타거나 침몰하는 장면은 보여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보는 사람에 따라 상처가 될 수 있는 것은 견제하고자 했다. 그렇다고 아예 모른 척하는 것도 싫었다. 당사자가 내 눈앞에 있는데 마음이 아파서 눈은 똑바로 못쳐다보겠고 그런데 말과 위로는 건네고 싶고, 그게 이 영화의 윤리이자 예의였던 것 같다. 자세를 낮추고 고개를 숙이고 말을 전하는 느낌이었다.”

-하은과 세미, 두 여학생의 미묘한 심리를 섬세하게 담아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것 같은데.

“여학생으로 설정한 것은 왜 그럴까. 내 안에 소녀가 살고 있어서 그런가 되게 자연스러웠다.(웃음) 남자아이들은 상대적으로 거칠잖나. 무뚝뚝하기도 하고. 거칠고 과격하고 그런 면이 있는데 여자아이들을 생각했을 때는 따뜻하고 다정한 느낌이 들었다. 두 아이의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그 사랑의 형태가 굳이 남녀가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여자인 것도 보통의 일이다. 퀴어의 특이성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평범함을 그려내고 싶었다. 이 아이들이 결국에는 한 번쯤 맞닿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유튜브나 브이로그도 보고 영화과 입시학원에 가서 특강을 하면서 여학생들을 관찰하고 취재를 많이 했다.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까 두려움이 와서 신경을 많이 썼다. 또 배우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리허설을 많이 하면서 생생함을 더 살려낼 수 있었다.”

몽환적인 화면 연출이 인상적인 ‘너와 나’. /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
몽환적인 화면 연출이 인상적인 ‘너와 나’. /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

-빛을 활용, 몽환적인 느낌의 화면을 주로 사용했다. 어떤 의도를 담았나. 

“처음부터 누군가의 꿈처럼 느껴지길 바랐다. 하은의 꿈처럼 느끼길 바랐고 하은은 또 누군가의 마음으로 대변될 수 있는 인물이길 원했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희미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전체적으로 꿈처럼 느꼈으면 했고 세미가 꿈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오히려 현실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음악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엔딩 크레딧 음악은 무음에 가까운 효과음처럼 느껴졌는데. 

“오혁 음악감독과 작업했다. 촬영 감독님이 오혁 음악감독과 오랫동안 작업해서 그 인연으로 의뢰할 수 있었다. 엔딩 크레딧 음악은 무음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낮은 음역대가 존재한다. 거기에서 오는 진동이나 떨림 같은 게 지금 이곳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존재를 쉽게 느낄 수 없는 어떤 것처럼 느껴졌다.”

배우, 그리고 감독 조현철. /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
배우, 그리고 감독 조현철. /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

-넷플릭스 ‘D.P.’에 이어 최근 ‘애마 부인’ 합류까지 배우로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감독과 배우, 어떻게 균형을 맞춰가고자 하나.

“하나(연출)를 끝내고 나니 바로 다음 작업을 의욕적으로 할 에너지는 아니고, 연기를 하면서 다른 인물에 몰입하다 보니 마음의 편안함이 있다. 그래서 지금은 연기를 열심히 하고 싶다. 내가 균형을 맞춘다기보다 상황에 따라 맞춰지는 것 같다. 세속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연기는 내가 애쓴 노동의 총량보다 보상이 조금 더 크다. 압축해서 일한 시간만큼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된다. 균형을 잘 맞춰서 두 가지를 잘해 나가고 싶다.”

-지금 관심을 쏟고 있는, 영화로 만들고 싶은 새로운 이야기가 있나. 

“최근 제주도에 한 달 정도 다녀왔는데 인간의 죽음이나 이야기뿐 아니라 그와 연관된 혹은 인간이 아닌 종에 관한 이야기에 관심이 생겼다. 제주의 숲에 관한 것 같은. 그 이야기에 4‧3 사건을 엮어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 머릿속으로 굴려 보고만 있다. 아는 게 별로 없기 때문에 알고 싶어서 제주도에 갔다 온 것도 있다. 의미가 있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는 ‘감독’이 되고 싶나. 그 시작인 ‘너와 나’가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나. 

“어떤 이유로 고(故) 김용균(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묘지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용균 군의 영정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다고. 나조차 처음에는 죽음이 너무 무서웠다. 공포가 엄청났다. 죽음에 대해 다들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 우리가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조금은 되새기면 좋지 않을까.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우리가 조금은 다른 선택을 하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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