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영 감독이 또 하나의 실화극 ‘소년들’로 관객을 찾았다. / CJ ENM
정지영 감독이 또 하나의 실화극 ‘소년들’로 관객을 찾았다. / CJ ENM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영화 ‘소년들’(감독 정지영)은 지방 소읍의 한 슈퍼에서 발생한 강도치사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소년들과 사건의 재수사에 나선 형사,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사건 실화극이다.  

1999년 삼례 나라슈퍼 사건을 극화한 작품으로, 영문도 모른 채 한순간에 살인범으로 지목된 순간부터 17년 만에 무죄가 입증되기까지, 세 소년의 아픈 삶과 그 안에 가려진 사건의 이면을 진정성 있게 담아내 호평을 얻고 있다. 

메가폰은 올해 데뷔 40주년을 맞은 정지영 감독이 잡았다. 영화 ‘남부군’ ‘하얀 전쟁’ ‘부러진 화살’ ‘블랙머니’ 등을 통해 한국 사회의 이면을 조명해 온 정지영 감독은 이번 소년들을 ‘소년들’을 통해 과거의 잊힌 사건이 아닌, 외면해서는 안 될 이야기를 전하며 함께 울고 분노하며 공감하게 만든다. 

정지영 감독은 최근 <시사위크>와 만나 ‘소년들’의 출발부터 캐스팅 과정, 촬영 비하인드 등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전했다. 40년간 다양한 작품을 통해 묵직한 울림을 전달해 온 정지영 감독은 “관객이 외면할 때까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묵직한 실화의 힘, 영화적 재미 모두 담아낸 ‘소년들’. / CJ ENM
묵직한 실화의 힘, 영화적 재미 모두 담아낸 ‘소년들’. / CJ ENM

-1999년 삼례 나라슈퍼 사건을 소재로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것이 가장 마음에 닿았나.

“원래는 약촌오거리 사건을 영화화 하고 싶었는데 다른 사람이 이미 준비하고 있다고 하더라. 그러다 삼례 나라슈퍼 사건을 접했을 때 이야기가 더 깊고 넓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에서 특별하게 나를 자극한 것은 검사가 대질신문을 하는데 가짜범인과 진범이 같이 운다는 거다. 그 부분이 크게 다가왔다. 한 사람은 겁이 나고 무섭고 억울해서 우는 거고 한 사람은 미안해서 우는 거다. 자기가 범인인데 범인이 아닌 걸로 결론이 나버려서. 미안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두렵기도 한 거다. 그런 복합적인 감정이 함께 울게 만드는 것에 상당히 꽂혔다. 그 부분을 내가 잘 찍었는지 못 찍었는지는 모르겠다.”

-영화를 통해 지금 이 시대에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나. 

“나는 사회 문제에 항상 관심이 있다. 인간과 관계 속에서 드러난 문제들이다. ‘소년들’은 특히 그들에 대한 배려를 거의 하지 않는 이 시대에, 그들이 못나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무관심하거나 외면하는 이 시대에 반드시 들여다봐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조직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우는데 과연 그게 명분일까? 황반장 말대로 진정 조직을 위한 것이라면 잘못을 인정하고 억울한 사람을 풀어주고 진범을 잡아야 하는 게 아닌가. 당시 경찰이나 검찰들은 그 사건을 아직도 합리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조직을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런데 한 사람의 삶이 조직으로 인해 그렇게 망가져야 할까. 그들은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 일이다. 그들의 입장을 알긴 알겠다. 하지만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때 그들은 불의를 저지른 거다. 다른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힘을 갖고 그 힘을 사용할 때 그것이 나쁘게 사용되는 공권력이라면 끊임없이 그것을 비판하고 지적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실제 사건에는 없던 인물인 형사 황준철을 내세워 극을 끌고 가게 했다. 인물을 설정하게 된 배경은.  

“약촌오거리 사건을 다룬 영화 ‘재심’을 보는데 황반장이라는 형사반장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이 거의 안 나오더라. 변호사가 주인공이었다. 삼례 나라슈퍼 사건에는 영화를 끌고 갈 주인공이 사실 없었다. 실제로는 감옥에 있는 소년 중 한 사람에게 교화위원이 다가가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범인이 아닌 것 같은 거다. 그래서 친척 중 변호사가 있어서 억울하게 들어온 것 같으니 소년을 만나봐라 했고, 만나보니 분명히 범인이 아닌 것 같은 거다. 그러다 힘에 부치니 재심 전문가 박준영 변호사를 찾아갔고 그때부터 같이 추적을 해 나간 거다. 원래대로 스토리를 전개하면 약간 복잡해진다. 관객이 한 호흡으로 따라가기 힘들다. 그래서 황반장이라는 사람을 빌려와서 이 사람이 끌고 가는 드라마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지영 감독이 삼례 나라슈퍼 사건을 영화화한 이유를 밝혔다. / CJ ENM
정지영 감독이 삼례 나라슈퍼 사건을 영화화한 이유를 밝혔다. / CJ ENM

-취재 과정도 궁금하다. 

“이 작품은 ‘부러진 화살’처럼 취재를 많이 하진 않았다. 황반장도 자료 속에 있는 인물을 두고 캐릭터를 만들었고 세 소년도 마찬가지였다. 캐릭터를 만들고 나서 실제 인물들을 만났다. 그런데 만들고 나서 그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면 안 된다. 무슨 말이냐면 흔들린다. 캐릭터를 이렇게 바꿀까 흔들린다. 작품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 그래서 많이 만나진 않고 내가 그들에게 피해만 안 주는 선에서 캐릭터를 잘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특별히 취재를 많이 한 것은 없었다.”

-마지막 법정 신이 큰 울림을 줬다. 설경구가 해당 장면을 시나리오로 봤을 때 다소 촌스러웠는데 촬영 당시 크게 감동을 느꼈다고 했다. 감독은 어떤 고민을 했나.  

“상당히 막막했다. ‘나는 살인범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것을 분명히 했어야 했는데 그것을 어떻게 연출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 소년들 마음에 들어가야 하거든. 감독이 연출을 할 때 캐릭터의 마음을 읽고 그 안에 들어가서 배우들에게 연기 디렉팅을 하잖나.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그런데 그 장면은 내가 못하겠더라. ‘나는 살인범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것까진 할 수 있는데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찍을 때 세 연기자(소년들 역할)에게 ‘어떻게 할래’ 하고 물어봤다. 그들은 감정 이입을 한 아이들이잖나. 그들이 하는 걸 보고 컨트롤 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들이 앞으로 튀어나오더라. 형사들이 나가고 난 다음에도 계속 외쳤다. 뭉클하면서 한편으론 과하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 그래서 정지를 시켜놓고 고민을 해봤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것이 나의 마음이라는 거다. 과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와 관객의 입장인 것이고 당사자들이 중요했다. 소년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래서 이해를 해버린 거다. 소년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순수하다. 사회생활을 많이 못했다. 부딪히지 못했다. 순수한 데다 10여 년을 당하고 쌓아두기만 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그 말을 외쳤다는 것은 터져 나온 거거든. 그래서 저게 맞다는 생각을 했다.”

정지영 감독이 설경구를 캐스팅한 이유를 전했다. / CJ ENM
정지영 감독이 설경구를 캐스팅한 이유를 전했다. / CJ ENM

-왜 설경구여야 했나. 

“시나리오 쓸 때부터 설경구를 생각했다. 두 가지 측면일 텐데, 황반장이라는 인물이 무모하고 계속 고하는 인물로 설정을 하니 옛날 ‘공공의 적’ 강철중이 생각났다. 두 번째는 17년이라는 기간이 필요한데, 그것을 확실히 구분시켜 줄 얼굴이 누군가 했을 때 설경구가 제일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설경구를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썼다.” 

-‘블랙머니’에서 함께한 조진웅도 힘을 보탰다.  

“조진웅은 ‘블랙머니’ 하고 나서 친해졌다. 잠깐 나오는 것이지만 상당히 중요한 역할이었다. 어차피 대중영화인데 무게감이 있는 배우가 필요했다. 그래서 조진웅에게 연락했고 기꺼이 하겠다고 해서 함께하게 됐다.”

-‘대중영화’라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상업영화와는 궤를 달리한다는 의미일까.  

“내 영화를 상업영화라고 표현하기엔, 상업영화로 평가받기엔 억울하다. 상업영화는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거다. 그런데 내 작품은 한 번도 투자를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 흥행은 했다. 영화를 만들어서 흥행은 잘 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작품 들어가면 쉽게 투자가 안 된다. 그들이 볼 때 상업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나는 돈을 번다기보다 내 영화가 많은 대중과 함께 호흡하도록 소통하도록 노력한다. 예술영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망할 영화도 아닌데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대중과 만나는 영화를 하고 있다.”

-실화 소재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책임감이나 사명감을 느끼나. 

“영화를 만들거나 소설을 쓴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반영한다는 거다. 우리의 삶을 반영하는 데 있어 이야기보다 사실에서 더 절실하고 진지하게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소재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더 다가갈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또 정지영이라는 사람의 관심 자체가 인간과 사회의 관계에 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살고 있고 왜 살고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 때문에 그런 쪽에 포커스를 두는 것 같다. 특별한 책임의식이라기보다 그냥 체질이 그런 거다.(웃음)”

영화를 향한 식지 않은 열정을 드러낸 정지영 감독. / CJ ENM
영화를 향한 식지 않은 열정을 드러낸 정지영 감독. / CJ ENM

-실화를 연출할 때 견제하는 것은 무엇인가.   

“실존 인물들에게 피해가 가면 안 되잖나. 그것이 가장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예를 들어 이번에 세 소년 같은 경우는 물론 그들이 허락해서 영화를 만들긴 했지만 그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게 아닌가, 생각하고 싶지 않은 걸 다시 들춰내는 게 아닐까 조심스러운 부분이었다. 그런데 다행히 시사회 때 세 소년 중 한 사람이 꽃다발을 갖고 왔더라. ‘감사합니다, 감독님’이라는 멘트도 쓰여 있었다.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하고 그랬다.”

-설경구가 ‘꼰대가 아닌 정지영 감독처럼 나이 들고 싶다’고 하더라.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감독만의 비법이 있나. 또 자신의 현장은 어떤 모습이길 바라나.   

“비법이 있는 건 아니다. 그냥 철이 덜 들면 된다. 우리 나이 정도 되면 보통 무게도 있고 그런데 나는 철이 덜 든 것 같다. 마음이 젊으면 된다.(웃음) 현장이 즐거웠으면 좋겠다. 나의 모토다. 현장에서 사람들은 긴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싹 긴장하고 집중해서 잘 찍어야 한다고. 그런데 너무 과한 긴장은 오히려 손해를 끼친다. 실제 내 현장에 와본 사람들은 화기애애하다고 한다.” 

-40년간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감독에게 영화란 어떤 의미인가. 

“40주년이 되니까 돌아봤다. 절대 돌아보지 않는데 40주년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행사도 만들고 그러다 보니 돌아보게 됐다. 돌아보며 내가 영화를 통해서 무엇을 하고 있나 보니까, 개인적으로 나는 허무주의자인데 영화를 통해 자꾸 비전을 찾는 것 같더라. 억울한 이야기, 비극적인 이야기를 그리면서도 마지막에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영화를 통해 그런 것들을 극복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언제까지 영화를 만들고 싶나. 

“관객이 외면할 때까지. 정지영을 관객이 외면할 때까지는 만들어야지. 위기가 언제 올지 생각한다. 시대가 바뀌면서 바뀐 감성이나 트렌드를 의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의식해서 나의 테크닉을 바꿀 순 있다. 하지만 그것을 의식해서 나의 콘텐츠까지 바꾸진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이  나의 작품을 보기 싫다고 하면 그때 끝나는 거다.”

-‘소년들’은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나.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찾아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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