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픈 더 도어’로 뭉친 제작자 송은이(왼쪽)와 감독 장항준. / 컨텐츠랩 비보
영화 ‘오픈 더 도어’로 뭉친 제작자 송은이(왼쪽)와 감독 장항준. / 컨텐츠랩 비보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영화 ‘오픈 더 도어’(감독 장항준)는 미국 뉴저지 한인 세탁소 살인 사건 이후 7년, 비밀의 문을 열어버린 한 가족의 숨겨진 진실을 그린 미스터리 심리 스릴러다. 과거 교민 사회에서 있었던 실제 사건을 모티프 한 작품으로,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 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에 공식 초청돼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메가폰은 지난 4월 스포츠 감동 드라마 ‘리바운드’로 극장가에 온기를 불어넣었던 충무로 대표 스토리텔러 장항준 감독이 잡았다. 영화 ‘기억의 밤’(2017)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정통 미스터리 심리 스릴러로, 탄탄하고 쫄깃한 이야기를 완성하며 관객을 매료한다.

여기에 컨텐츠랩 비보 대표이자, 방송인 송은이가 영화 제작에 첫 도전해 큰 힘을 보탰다. 특히 20분짜리 짧은 단편에서 출발한 ‘오픈 더 도어’는 송은이의 참여로 장편으로 발전, 더 많은 관객과 만나게 됐다. 

32년 지기 절친에서 영화 하나로 뭉친 장항준 감독과 송은이는 최근 <시사위크>와 만나 ‘오픈 더 도어’의 출발부터 촬영 비하인드 등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서로를 향한 강한 신뢰를 드러내며 첫 협업에 대해 만족감을 표해 이목을 끌었다.

‘오픈 더 도어’가 관객을 매료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컨텐츠랩 비보
‘오픈 더 도어’가 관객을 매료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컨텐츠랩 비보

-‘감독’과 ‘제작자’로 첫 협업이었다. 어땠나.

장항준 감독 “송은이와 처음 만난 게 32년 전이더라. 대학교 신입생과 복학생으로 처음 만났다. 둘이 워낙 세상을 보는 가치관이 비슷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 일을 해결하는 방식도 비슷하다. 직업인으로서 송은이 역시 리스펙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송은이 “‘6번 정도 대판 싸우고 머리끄덩이 잡고 싸웠어요’ 해야 재밌는데, 그런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문제가 생겨도 ‘그럼 어떡하지? 내 생각은 이런데 넌 어때?’이라면서 늘 대화로 해결했다.”

장항준 감독 “고민할 일 있으면 같이 고민하고 의견을 모으고 해서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친한 사람들끼리 원래 일을 잘 안하잖나. 이유가 뭐냐면 좋을 때는 한없이 좋다가도 문제나 갈등이 발생했을 때 푸는 방식이 다르면 부딪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워낙 오랫동안 알았고 이야기도 많이 나눠왔기 때문에 불편한 것은 전혀 없었다.”

송은이 “서로에 대해 큰 기대가 없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하.”

-영화 첫 제작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감독을 향한 믿음이었나.

송은이 “맞다. 첫 제작이지만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선에서의 문제만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있었다. 상식 밖의 일이 아닌. 문제가 생기더라도 장항준 감독은 남의 의견을 잘 듣고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신뢰가 있었다. 내가 숟가락을 얹어도 되겠다는 확신이 있었다.”

장항준 감독 “유일하게 부딪친 부분은 세트를 질 것이냐 말 것이냐였다. 나는 지어야 한다고 했다. 외관이 미국집 같은 집이 한국에 적지 않은데 내부 공간은 한국식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미국 주택구조와 너무 달랐기 때문에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트 자체를 짓게 되면 억 단위를 넘어가게 되기 때문에 싸웠으면 거기서 싸웠을 텐데 결국 세트를 지었다.(웃음)”

송은이 “‘오빠가 봉준호 감독이야?’하면서 프로듀서들과 다른 장소를 찾아보자 하고 감독에게 몇 개 제안을 했는데 아닌 것 같다고 하더라. 뭔가 생각이 깊게 있겠구나 했던 것 같다. 그러면 지어야겠다 하고 지었다.”

장항준 감독이 ‘오픈 더 도어’의 출발을 떠올렸다. / 컨텐츠랩 비보  
장항준 감독이 ‘오픈 더 도어’의 출발을 떠올렸다. / 컨텐츠랩 비보  

-세트 제작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장항준 감독 “재미교포 가정의 이야기인데 미국에 없는 공간이면 이야기 자체에 대한 믿음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관객이 믿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컸다. 그래서 (송은이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본인도 그게 맞는 것 같다고 해서 세트를 지었다. 제작자로서는 쉽지 않은 선택을 한 거다.”

송은이 “이렇게 자세하게 자상하게는 이야기하지 않았고 그냥 ‘미국 같으면 좋겠다’고 했다.(웃음) 그래서 뭔가 깊은 연출 의도라고 생각했다기보다 생각이 있겠지 정도만 생각했다.”

장항준 감독 “내겐 같은 (송)은이와 (김)은희인데, 은이도 은희도 이렇게 하면 이유가 있겠지 하는 생각이 서로에게 기본적으로 있다. 신뢰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만든 영화다. 흥미를 느낀 지점은.

장항준 감독 “모티프가 된 사건을 접하면서 끈끈한 가족 사이에서 꿈틀거리는 욕망,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 성공하고 싶은 욕망이 느껴졌다. 또 그것들이 부딪치고 반할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지금의 한국이나 그때의 한국, 지금의 그때의 미국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것이 교민사회의 특수성에서는 더욱더 도드라지게 보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폐쇄적이니까. 주류에 편입되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송은이 “뉴스나 시사프로그램, 범죄 프로그램에서 많이 접할 수 있는 사건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에서는 끝은 없다. 오롯이 던져준다. 접하는 사람의 몫이다. 내가 다른 식으로 해소해야 하는 거다. 그러나 영화는 다르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나의 인생과 비춰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챕터를 나눠 과거로 역순 전개되는 플래시백 구조를 택했다. 이유는 무엇인가. 

장항준 감독 “첫 번째 챕터가 끝난 지점은 대부분 상업영화의 절정 부분이다. 사건 중심의 이야기일 때 그렇다. 상업영화적인 진행이었다면 범인이 누구냐가 정말 중요한 문제다. 그 범인을 가족 안에서 찾는 게 장르적 선택이었을 거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에서 왜 우리는 욕망했나, 이들은 어떤 관계였고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됐는지 과정이 훨씬 중요했다. 또 비극성을 높이는 것에 있어서 역순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챕터에서는 유일하게 문이 열려 있는데 그곳은 문이 열려있음에도 갈 수 없다. 그래서 더 안타깝고 아련하고 비극성이나 인물의 상황에 대해 관객에게 오래 기억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한정된 공간, 캐릭터들의 대화로 전개되는 구성이었다. 마치 연극 같기도 했다. 그래서 배우들의 연기가 매우 중요했다. 어떤 점을 강조했나.

장항준 감독 “원래 연극경험이 많은 배우들이었다. 각 배우마다 붙잡고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고 같이 고민도 많이 했다. 리허설도 꽤 많이 했다. 제작비 측면에서 압박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회차가 많이 진행될 수 없었다.(웃음) 그렇기 때문에 확실히 배분해야 했고 그래서 배우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촬영에 들어갔다. 표현하는 게 아니라 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사를 틀려도 상관없고 표현이 달라도 괜찮으니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반응했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영화 제작자로 새로운 도전에 나선 송은이. / 컨텐츠랩 비보  
영화 제작자로 새로운 도전에 나선 송은이. / 컨텐츠랩 비보  

-현장에서 경험한 감독 장항준의 강점은 무엇이었나.

송은이 “예능도 잘하는 감독이지만 사실은 온전하게 성공의 문법을 따르지 않고 비트는, 반골기질이 있다. 그런 점이 기존 작품에서 보지 않은 생각이나 그림을 완성하는 것 같다. 현장에서는 큰소리 내지 않는 감독이다. 모두의 의견을 다 같이 듣고 하나로 취합해서 길을 제시하는 태도를 지녔다. 요즘 보기 드문 감독이 아닌가 싶다. 이야기꾼으로서도 어떻게 이야기를 던져야 관객이 재밌어하는지 잘 아는 분이다.”

-제작자 송은이는 어땠나.

장항준 감독 “비보에 와서 보니 송은이가 하는 게 맞구나 싶은 게 이빨 없는 짐승들이 있는 곳 같다. 이유식이나 미음 같은 것을 먹는 초식동물들이 모인 화사 같았다. 대표가 어떤 사람이냐, 어떻게 경영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그런 그들이 콘텐츠를 만들고 매니지먼트를 하고 있는 거다. 매운맛과 단맛이 판치는데 선한맛 슴슴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선한 영향력을 느낄 수 있는 기분 좋은 작업이었다.”

송은이 “하지만 회식은 고기로 한다. 그때 치아를 사용한다.(웃음)”

-과거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여성예능인이 설 자리가 없어 엑셀 자격증을 준비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콘텐츠를 만들다 영화 제작까지 나서게 됐다. 돌아보면 어떤가.

송은이 “사업을 꿈꾸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적극적으로 새로운 생존 방식의 하나로 팟캐스트를 시작한 거다. 모두가 말리긴 했다. 그거 할 시간에 방송국 PD랑 차를 한 잔 마시라든가 하면서. 하지만 그건 하고 싶지 않았고 별로였고 내가 재밌게 하고 감을 잃지 않고 평생 할 수 있는 걸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팟캐스트였다. 뜻밖에 사랑을 받아서 다른 프로그램도 제작하게 됐고 많은 채널에서 비보와 함께 뭔가 하고 싶다는 제안이 오고 그러면서 지금의 회사가 됐다. 우상향할 수 있게 끌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냥 재밌는 걸 하자는 창작에 대한 열정과 욕구였던 것 같다. 그랬기 때문에 셀럽파이브도 할 수 있었고 거기에 확장해서 매니지먼트도 하게 됐다. 좋은 사람들을 모아 오래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어보자는 게 꿈이다. 영화 또한 콘텐츠 제작에 대한 재미를 들이면서부터 사실은 굉장히 하고 싶었던 일이다. 그래서 5년 전에 영화 제작 프로듀서를 영입해서 같이 여러 일을 해오고 있다. 장르와 형식이 점점 무너지고 있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어떻게든 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  그게 ‘오픈 더 도어’까지 이어진 거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영화계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앞으로 어떤 방향성을 갖고 나아갈 계획인가.

장항준 감독 “한 번도 본 적 없는 위기에 처한 것 같다. 비단 한국영화만의 문제는 아니다. 영화의 위기는 결국 극장의 위기라는 건데 코로나19부터 시작해서 티켓값이 급등하고 관객이 체감하는 게 너무나 클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극장을 통한 수익으로 영화를 제작하고 다시 극장에서 틀어지고 선순환구조가 꾸준히 있었는데 그 흐름이 끊긴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다시 돌려야 하는지 방법을 찾고 있는 사이에 OTT가 등장하고 거스를 수 없는 환경이 된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멈출 것인가, 극장이 힘들다고 해서 극장에 틀 영화를 만들지 말아야 할 것인가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는데, 그래도 나는 다시 해보고 싶고 증명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혼자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극장 세대로서 착잡하고 안타까운 마음이다.”

송은이 “대중이 뭘 좋아하는지 따라가기보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중심 있게 하는 제작자가 되고 싶다. 잘되는 문법에 준하는 이야기가 많다보니 했어야하는 이야기를 지나온 것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물론 내가 선택한 것이 유행이 되면 더 좋겠지. 계속 이야기를 잘 찾고 기획하고 만들고 싶다. 말초를 깨우는 영화는 많다. 그런데 생각을 깨우거나 심장을 깨우는 영화들은 오히려 점점 외면받기도 하고 잘 만들었지만 많은 대중에게 닿지 못 한 거 같다. 그런 이야기가 결국 성공할 수 있다는 걸 걸 증명하고 싶은 이상한 욕심이 있다.” 

-‘오픈 더 도어’를 통해 이루고 싶은 성과가 있다면.

장항준 감독 “당연히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거다. 손익분기점을 넘기면 송은이 대표가 전 직원에게 외제차를 사줄 거다.(웃음) 손익을 넘긴다면 더 신박한 이야기를 만들어야겠지. 감독에게 있어 손익을 넘긴다는 것은 직업적 성취이기도 하지만 다음 기회가 열리느냐의 의미기도 하다. 손익을 넘겨서 더 신박하고 더 생각하지 못했던 정말 재밌는 이야기를 선보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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