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혜수가 영화 ‘너와 나’(감독 조현철)로 관객 앞에 섰다. / 고스트스튜디오
배우 박혜수가 영화 ‘너와 나’(감독 조현철)로 관객 앞에 섰다. / 고스트스튜디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영화를 찍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전에 살았던 시간보다 ‘사랑해’라는 말을 더 많이 한 것 같아요. 진심을 다해 사랑을 말하고 표현하는 게 어색하지 않게 됐고 훨씬 더 쉬워졌죠. 그런 점에 있어서 삶의 큰 부분을 바꿔주고 채워준 영화예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세미에게 네가 알려주려고 했던 ‘사랑해’라는 말이 우리 영화를 통해 많은 분들에게 퍼져나가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배우 박혜수에게 ‘너와 나’(감독 조현철)는 그저 필모그래피에 추가된 하나의 작품이 아니다. 가장 절실한 순간 만나 결코 쉽지 않았던 그 시간을 견디게 했고, 당연하게 여겼던 삶, 주어진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깨닫게 했다. 놓치고 있던 사랑의 의미를 다시 알려줬고 그것을 표현하는 용기를 주기도 했다. 박혜수가 ‘너와 나’ 그리고 세미를 유독 보내기 힘든 이유다.

‘너와 나’는 서로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마음속에 담은 채 꿈결 같은 하루를 보내는 고등학생 세미(박혜수 분)와 하은(김시은 분)의 이야기를 담았다. ‘부스럭’ ‘대문아’ 등 단편 연출작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은 배우 겸 감독 조현철이 선보이는 첫 장편영화로, 다수의 영화제에 초청돼 호평을 받은 뒤 지난달 25일 개봉해 더 많은 관객을 만나고 있다.

영화는 하은과 세미, 두 여고생의 우정과 사랑을 통해 ‘사랑’과 ‘죽음’을 이야기하며 먹먹한 위로를 건넨다. 그리고 이는 2014년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이들에 대한 추모로 이어진다. 박혜수는 사건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거나 떠올리게 하는 것 대신 다양한 은유적 표현을 ‘진심’을 전달한 ‘감독’ 조현철의 언어에 마음이 매료돼 ‘너와 나’를 택했다고 했다.

“소재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시나리오를 봤는데 비극적인 사건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단서를 통해 유추할 수 있게 담겨있었어요. 두 여고생의 수학여행 전날 이야기,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는 것에서 감독님이 참사에 대한 애도나 위로의 메시지를 담기 위해, 또 방식에 대해 엄청 많이 고민을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방식이 정말 좋아서 이 작품에 꼭 참여하고 싶었죠.”

세미의 감정을 세밀하게 빚어낸 박혜수(왼쪽). /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
세미의 감정을 세밀하게 빚어낸 박혜수(왼쪽). /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

극 중 박혜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서툰 세미를 연기했다. 흘러넘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때때로 깨질 것처럼 불안하지만 사랑스러운 10대 소녀 세미를 현실감 넘치게 그려낸 박혜수는 “닮은 지점이 많아 세미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

“세미가 저와 닮아있는 지점이 많았어요. 그래서 시나리오를 처음 읽을 때부터 애정이 많이 갔죠. 지금은 반성하고 있는 부분인데 과거의 저와 닮아있어요. 세미는 감정 기복이 있고 사랑을 표현하는데 서툴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미숙한 친구인데, 그런 모습에 저 자신이 많이 투영되더라고요.”

가장 중점을 둔 것은 관객이 세미의 감정을 이해하고 몰입해서 따라올 수 있게 캐릭터를 더욱 세밀하게 빚어내는 거였다.

“세미가 극초반부터 영화를 끌고 가는 인물인데 관객이 보기에 힘들거나 세미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을까봐 걱정됐어요. 감독님한테도 ‘세미가 짜증을 너무 많이 내는 것 같아요’라면서 걱정을 내비치기도 했죠. 그래서 처음보다 세세한 부분을 조금 더 다듬어서 지금의 세미가 완성됐어요. 사랑을 표현하는데 서툰 것을 보여주면서도 하루가 끝나기 전에 하은의 마음을 비로소 이해하고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사과도 할 줄 아는, 반성할 줄 아는 용기 있는 인물로 그리고 싶었죠. 관객도 처음에는 답답하다가도 점점 그 마음이 해소될 거라고 생각해요.”

박혜수가 연기에 중점을 둔 부분을 밝혔다. / 고스트스튜디오
박혜수가 연기에 중점을 둔 부분을 밝혔다. / 고스트스튜디오

거의 모든 순간 ‘세미’로 존재했지만 문득문득 터져 나오는 ‘박혜수’의 감정을 비워내는 것도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세미를 연기할 때 박혜수의 감정이 절대 들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너와 나’라는 작품과 이 사건에 대해 너무 들어가 있다 보니 촬영하다가도 세미는 신나게 웃고 있는데 컷하고 나면 갑자기 눈물이 터지고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이 너무 많더라고요. 그래서 ‘사랑해, 갔다 올게’라는 대사도 세미는 정말 갔다 돌아올 것이고 보고 싶을 거고 조이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마음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말 행복하고 들뜬 마음으로 표현하고자 했죠.”

‘감독’ 조현철과 호흡을 맞춘 소감도 전했다.

“감독님의 언어를 듣고 있으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남다르다는 게 느껴져요. 그래서 같은 일에 대해서도 감독님의 언어로 말하면 다르게 다가오고 환기가 되는 힘이 있죠. 얼마나 많은 고민 끝에 이 작품을 썼을지 느껴지고 또 그 글을 연출하면서 얼마나 더 세세한 세계를 완성했는지 느낄 뿐이었어요. 참 많이 배웠어요. 사랑으로 모든 것을 대하는 자세를 보면서 참 좋은 어른 같아 보였거든요. 감독님으로서도 좋지만 인간으로서도 굉장히 좋은 어른이었어요.

(연기적으로도) 정말 자유롭게 열어줬어요. 그래서 스스로에게 신뢰가 없다면 조금은 힘든 현장이기도 했죠. 매번 좋아요, 테이크를 다시 가도 ‘좋은데 그냥 한 번 해볼게요’라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나 자신에게 신뢰가 정말 필요했는데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감독님과 워낙 대화를 많이 나눴고 제가 하는 것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보내줬기 때문이에요. 그 덕에 믿음을 갖고 할 수 있었죠. 배우로 하여금 그 캐릭터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만들어줬고 그 과정이 연기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게 했다고 생각해요.”

‘너와 나’를 향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낸 박혜수. / 고스트스튜디오
‘너와 나’를 향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낸 박혜수. / 고스트스튜디오

‘너와 나’는 박혜수가 처음 경험한 독립영화 현장이었다. 그동안 주로 규모가 큰 상업영화, 이미 잘 짜인 판에 들어가 자신의 역할을 해냈다면, 이번 ‘너와 나’는 시작부터 함께였다. 같이 뜻을 모으고 함께 팀을 꾸려나가며 이 영화가 생명력을 얻기까지 모든 과정, 모든 순간을 함께했다. 그래서 더 각별하고 책임감도 남달랐다. 

하지만 촬영을 앞두고 학교폭력 가해 의혹에 휩싸였고 지금까지 진실을 두고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너와 나’는 그 순간에도 박혜수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함께하는 결정을 내려줘서 감사했다”며 “그냥 최선을 다하는 것밖에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많이 집중했다. 다른 생각 없이 정말 작품에 몰두했다”고 떠올렸다.

박혜수에게 ‘너와 나’는 구원이자 사랑이다.

“‘너와 나’에 이렇게까지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가 시작은 집중할 것이 필요해서였을 수도 있어요. 그러다 이 영화를 너무 사랑하게 됐죠. 영화에 담긴 메시지와 세미와 하은, 아이들과 조이와 진식이까지 이 영화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됐어요. 지난 시간이 제겐 ‘너와 나’로 가득 차 있어요. 촬영 끝나고도 스태프들과 다 같이 만나는 시간이 많았고 영화제도 계속 다니면서 지속적으로 교류가 있었거든요.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 덕에 그렇게 지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단단해지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해요.”

‘너와 나’ 그리고 세미를 처음 만났던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도 했다. 

“‘너와 나’ 사무실 첫 출근 날로 돌아가고 싶어요. 이 팀과 함께한다고 결정하고 사무실이 생기고 내가 그곳에 처음 갔던 날. 그때가 진짜 시작이었거든요. 다시 시작해서 되풀이해도 좋을 만큼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단 한 번도 시간을 돌리고 싶은 적이 없어요. 매번 열심히 했기 때문에 지금이 좋다고 생각했었죠. ‘너와 나’도 정말 열심히 했는데 또 해도 좋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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