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해준이 영화 ‘서울의 봄’으로 관객 앞에 섰다.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배우 박해준이 영화 ‘서울의 봄’으로 관객 앞에 섰다.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노태건은 박해준 덕에 구상했던 것보다 더욱 살아 숨 쉬는 캐릭터로 탄생했다.” 영화 ‘서울의 봄’ 김성수 감독이 극 중 노태건으로 분한 박해준을 두고 한 말이다. 감독의 말처럼 박해준은 군사반란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9사단장 노태건을 입체적으로 빚어내며 제 몫을 다한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렸다. 영화 ‘비트’ ‘아수라’ 등을 연출한 김성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한국 영화 최초로 12‧12 군사반란을 스크린에 펼쳐냈다. 지난 22일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점령, 흥행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박해준은 전두광(황정민 분)의 친구이자 반란군의 2인자로 전두광과 함께 군사 반란을 주도하는 인물 노태건을 연기했다. 다양한 작품을 통해 선 굵은 연기와 묵직한 존재감을 보여준 박해준은 탄탄한 연기력과 탁월한 캐릭터 해석으로,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전두광에게 끌려가는 듯 보이지만 실은 누구 못지않은 권력욕을 가진 노태건의 이중적인 모습을 입체적으로 그려내 호평을 얻고 있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박해준은 ‘서울의 봄’을 택한 이유부터 캐릭터 구축 과정, 노태건을 연기한 소감 등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특히 “완성된 영화를 보고 머리가 하얘질 정도로 재밌었다”고 자신감을 드러내며 관람을 독려했다.

-역사적 사건을 다룬 데다 실존 인물을 모티프로 한 캐릭터였다. 처음 제안을 받고 어땠나.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는데 감독님을 만나고 편해졌다. 역사가 기억하는 사실은 가져왔지만 그 사람들이 무엇을 했고 어떤 교류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잖나. 다른 매체에서도 다룬 이야기지만 다 드라마니까, 그렇게 접근했다. 인물에 대한 모사나 이런 것이 필요 없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재밌게 촬영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노태건은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했고 어떻게 표현하고자 했나.  

“시나리오상에서 노태건이라는 인물은 오히려 주체적으로 자기 일을 해나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전두광이 행동이 앞선 불같은 느낌이 있다면 그걸 뒤에서 수습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불장군 같은 아빠가 있고 그의 곁에서 살림을 하는, 엄마 역할을 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다가가려고 했다. 행동이 굉장히 앞서면 실수할 일도 많고 하잖나. 그런 부분을 항상 의심하고 체크해 주고 그렇게 하는 사람이면 재밌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두광을 100% 믿진 않는 느낌도 보이면 좋겠다고 했다. 언제 문제가 생길지 모르니 항상 준비를 해두는 인물로 표현하려고 했다.” 

-노태건에게 전두광이라는 존재는 어떤 의미였을까.  

“예전에 공연할 때 조연출 같은 일을 했었는데 연출이 굉장히 독불장군이었다. 나쁜 사람은 아닌데 주어지는 숙제가 너무 많은 거다. 너무나 똑똑하고 훌륭한 연출이지만 목표지점이 너무 높이 있었다. 슬리퍼를 신고 큰 산을 넘어야 하는 꼴이었다. 배우들도 힘들어했다. 그래서 이 사람을 어느 정도 포기시켜야 하고 또 그가 또 다른 이야기를 했을 때 의심해야 하고 다른 스태프나 배우들 중간에서 계속 이어주는 역할도 해야 했다. 그때 그 경험이 노태건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고 와닿았다. 그 경험이 많이 표현된 것 같다.”

탁월한 캐릭터 해석력으로 노태건을 더욱 입체적으로 완성한 박해준.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탁월한 캐릭터 해석력으로 노태건을 더욱 입체적으로 완성한 박해준.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모사가 되지 않기 위해 고민도 많았을 것 같은데.

“감독님을 만나기 전에는 견제했다. 똑같이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생각을 하긴 했지만 감독님 만나고 그런 게 사라졌고 황정민 선배와 리딩을 하고 나서는 ‘이렇게 재밌는 대본이 어딨어’라고 생각하고 들어갔다. 그렇게 해야 훨씬 더 많은 상상력이 나오고 훨씬 더 재밌는 작품이 나올 거라고 생각을 했다. 거기에 사로잡혀 있으면 아무것도 못할 거라고 판단해서 (실존 인물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고 접근했다. ‘믿어주세요’라는 대사도 우리가 아는 뉘앙스가 나오지 않길 바랐다. 급박한 상황인데 그 대사를 하면 자꾸 그런 뉘앙스가 풍기는 거다. 최대한 안 나오게 할 수 없을까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오히려 더 비슷하지 않게 하려고 신경 쓰다 보니 그런 지점에서 더 생각하게 만들던 것 같다.”

-김성수 감독이 노태건이 박해준을 만나 시나리오보다 더 살아있는 인물로 완성됐다고 했다. 배우의 어떤 해석이 더해졌나. 

“나의 의견은 아니고 감독님이 제안해 준 것이 많다. 이 사람의 말투나 디테일한 부분에 대해서 대본을 매번 고쳐가면서 만들어 갔다. 촬영 전까지도 계속 수정했다. 사실 되게 어려운 일이다. 나는 좋고 편할 수 있지만 전체적인 틀에 있어서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잖나. 김성수 감독님이 계산하고 더 좋다는 확신이 있었으니 바꾸셨을 거다. 그런 부분이 신기했다. 전체적인 방향을 어떻게 그렇게 확실히 잡고 가기에 이렇게 할 수 있었는지 참 대단한 분이다.”

-정우성은 ‘서울의 봄’이 끝나고 흰머리가 생겼다고 하더라. 그만큼 김성수 감독의 현장이 치열했다고.    

“나는 흰머리는 생기지 않았다.(웃음) 감독님이 항상 필요한 부분을 말해 주셨다. 연기하고 나서 모니터를 항상 하게 만들었다. 이 부분은 좋고 이 부분은 조금만 고쳐보면 어떨까, 이런 마음이면 어떨까. 항상 좋은 것을 제시해 주셨고 난 그 방식이 좋았다. 생각하지 못한 것을 더 말해 주시니까 신도 살아나고 인물도 더 살아났다고 생각한다. 되게 즐거웠다. 생각보다 편하게 촬영했다.”

박해준이 김성수 감독과 작업한 소감을 전했다.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박해준이 김성수 감독과 작업한 소감을 전했다.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배우들의 앙상블도 돋보이는 영화였다. 호흡은 어땠나. 

“리허설을 굉장히 철저히 했다. 보통 여러 명 나오는 신은 한 시간 이상 했다. 오히려 그게 더 시간을 아끼는 방법이다. 나중에 배우들이 각자 캐릭터가 생기고 움직이는 게 굉장히 유기적으로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이것을 진두지휘한 감독님도 대단하고 배우 대표로 움직이게끔 하는 (황)정민 선배도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배우들도 다 관록 있는 분들이라 금방 캐치해서 움직임을 만들어 냈다. 신기하고 재밌었다. 마치 공연을 하는 것 같았다. 배우들이 가진 힘이 되게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황정민은 어떤 배우였나. 

“판을 만드는 분이다. 슛이 들어가면 시작하는 순간 딱 분위기를 만든다. 텐션을 만드는 능력이 있다. 나는 거기 안에 편승한 것밖에 없을 정도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특수 분장도 빈틈이 하나도 없었다. 가까이 봐도 그렇고. 진짜 전두광이 돼 있어서 깜짝 놀랐다. 에너지가 굉장했다. 정말 훌륭한 배우다.”

-노태건 외에 도전해 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다면.  

“노태건도 정말 재밌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이태신이 진짜 멋있더라. 시나리오에서도 멋있다는 걸 알았지만 진짜 멋있고 감동이 있었다. 이태신이 군인으로서 도리를 끝까지 다하는 게 정말 감동적이더라. 사실은 당연한 건데 그게 왜 감동적일까 의문을 갖게 하기도 했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책임을 갖고 끝까지 해내는, 계속 지켜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생각도 했고 왜 더 깊게 몰랐을까 반성하기도 했다. 자신의 본분을 충실히 다한다는 게 굉장히 중요한 거구나 싶었다. 부끄럽기도 했다. 나는 저렇게 살 수 있을까. 그렇게 못살았으니 비겁한 것 같기도 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말 이렇게 재밌을지 몰랐다. 영화를 보고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재밌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보고 얻고 나가는 영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서울의 봄’은 여운이 길고 감동도 있고 재미도 있고 볼거리도 기가 막히다. 배우들 연기까지 꽉 채워져 있다. 기대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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