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염혜란이 영화 ‘시민덕희’(감독 박영주)로 관객 앞에 섰다. / 쇼박스
배우 염혜란이 영화 ‘시민덕희’(감독 박영주)로 관객 앞에 섰다. / 쇼박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염혜란이 영화 ‘시민덕희’(감독 박영주)로 또 한 번 새로운 얼굴을 꺼냈다. 덕희의 친구이자 조선족 출신 봉림으로 분한 그는 능숙한 중국어 연기부터 유쾌한 코미디까지 폭넓게 소화하며 관객을 매료한다.

염혜란이 활약한 ‘시민덕희’는 보이스피싱을 당한 평범한 시민 덕희(라미란 분)에게 사기 친 조직원 재민(공명 분)의 구조 요청이 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 초청되며 실력을 인정받은 신예 박영주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으로, 동네 세탁소를 운영하던 평범한 중년 여성이 보이스피싱 총책을 잡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지난 24일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흥행 순항 중인 ‘시민덕희’에서 염혜란은 덕희의 세탁공장 동료이자 특별한 우정을 나누는 친구 봉림을 연기했다.

봉림은 타고난 눈치에 중국어 실력까지 갖춘 인물로, 덕희의 사기당한 돈을 찾기 위해 함께 중국 칭다오행을 결심하며 든든한 통역사 역할로 활약한다.

어떤 옷을 입어도, 어떤 역할을 맡아도 그저 그 인물로 존재하는 염혜란은 ‘시민덕희’에서도 봉림 그 자체로 살아 숨 쉬며 제 몫을 톡톡히 해낸다. 흠잡을 데 없는 중국어 실력부터 특유의 능청스러운 연기로 극에 유쾌한 활력을 불어넣는다. 라미란과의 ‘케미스트리’ 역시 합격점을 줄 만하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염혜란은 작품을 택한 이유부터 캐릭터 구축 과정, 촬영 비하인드 등 ‘시민덕희’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쉼 없는 행보를 이어오고 있는 그는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솔직한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시민덕희’로 또 한 번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 염혜란. / 쇼박스
‘시민덕희’로 또 한 번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 염혜란. / 쇼박스

-작품을 택한 이유는. 

“기본적인 줄거리가 너무 재밌었다. 게다가 라미란? 무조건 하고 싶었다.”

-봉림 캐릭터 구축 과정에서 감독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한 건 연변 출신으로 나오지만 지금까지 보던 모습과는 다른 모습으로 그려보자는 거였다. 특히 사랑스럽고 귀여웠으면 좋겠다고 해서 머리부터 의상까지 풍성하게 표현하고자 했다. 정서적으로 볼 때는 덕희가 하자는대로 다 도와주고 싶지만 현실에 발을 담그고 있고 어려움도 많이 겪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 일이 어려운 일이 될 것이고 결심이 어려울 거라는 걸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또 관객이 그런 봉림의 시선을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감독님이 잘 받아들여 줘서 추가된 대사들도 있었다.”

-연기에 중점을 둔 부분은.

“이 여자가 갖고 있는 관계성, 덕희와의 관계성에 집중했다. 신세진 사람이고 편견 없이 봐준 친구라서 다 해주고 싶지만 현실적인 걸 떠나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그 가운데 있어 보려고 노력했다. 그 안에서 정도를 지키면서 현실적인 것들도 생각해 봐야 하는 인물로 표현하고자 했다. (외적으로는) 의상도 신경을 많이 썼다. 나름 멋을 부리는 사람인데 보기에 세련된 멋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들이 있는 사람인 거다. 샌들에 신는 양말에도 디테일 살아있었다. 꽃무늬가 있다든가 시계 하나도 금색으로 하고 머리띠도 수없이 써봤다. 띠도 해보고 밴드도 해보고 여러 가지 시도하면서 구축한 거다. 옷도 진짜 많이 입어봤다.”

-언어도 중요했다. 준비 과정은. 

“연습 기간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중국어 선생님을 엄청 많이 만나긴 했다. 정해진 횟수가 있을 텐데 훨씬 넘겨버린 것 같다. 따로 뵙기도 하고 많이 괴롭혔다. 그냥 통으로 외우기보다 어떤 뜻인지, 병음도 적고 시제도 확인하고 하느라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대학교 때 교양수업으로 중국어 수업을 한 학기 들은 적 있는데 본격적으로 배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중국어 하는 분들이 마냥 흉내만 내진 않았구나라는 말이 가장 큰 찬사다.” 

‘시민덕희’로 뭉친 염혜란(왼쪽)과 라미란. / 쇼박스
‘시민덕희’로 뭉친 염혜란(왼쪽)과 라미란. / 쇼박스

-라미란과의 호흡은 어땠나. 

“항상 호흡을 맞추고 싶었고 현장에서 어떤지 궁금한 배우였다. 함께 하면서 느낀 것은 정말 품이 넓은 사람이라는 거다. 현장을 즐겁게 만들어주고 인간적으로도 정말 괜찮은 사람이다. 연기적으로도 말랑함과 여유, 능청스러움이 훌륭한 배우라 발끝도 못따라가겠더라. 넘치지 않고 모자라지도 않다. 어떻게 저렇게 적확할까. 마음이 찢어져도 힘껏 힘을 주거나 하지 않는다. 나는 다른 맛이 있는 배우니까 위안하면서 (라미란의) 저런 면은 배우고 싶다, 훌륭하다하면서 작업했다.”

-3년 전 인터뷰에서 ‘염혜란 시대’라는 평가에 대해 ‘지금이 상승세일 뿐, 항상 상승세는 아닐 것’이라고 했는데 여전히 ‘염혜란의 상승세’는 유효하다.

“누구라도 자기가 한 것에 비해 좋은 결과들을 낼 때가 있잖나. 또 내가 한 것에 비해 터무니없이 실패로 끝날 때도 있다. 그런 어떤 흐름 같은 느낌이 든다. 그 주기가 길 때도 있고 짧을 때도 있다. 그렇게 위안받는 것 같다. 좋은 시기를 지나면 힘든 일도 있을 거다. 언젠가 고난의 시기도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지금을 보내고 있다.”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으며 믿고 보는 배우로 거듭난 염혜란. / 쇼박스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으며 믿고 보는 배우로 거듭난 염혜란. / 쇼박스

-다만 워낙 캐릭터 연구를 깊이 하는 배우인데 늘어가는 분량과 작품수로 인해 캐릭터 구축 과정에 들이는 물리적인 시간은 줄어들 것 같다. 이에 대한 고민도 하나.   

“‘시민덕희’ 때는 중국에 가서 있어보고 싶었다. 그런 건 정말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한 것이잖나. 그런 것을 못하게 될 때 다른 방식으로 대체하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불안한 마음이 든다. 결과적으로 다르지 않을 수 있지만 내가 과연 최선을 다했나, 거기까지 해봤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옛날보다 준비를 하지 않는 게 나 편하자고 이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하는 마음도 들고. 스며들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 

그래서 지금은 좀 시간을 갖고 있다. 실제적으로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한 것이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잘 준비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지금 준비하고 있다. 가진 것이 많은 배우는 준비가 돼있고 가진 것들이 닳아 없어지지 않는데 나는 닳아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동안 계속 달리긴 했지. 처음에는 일이 없는 시간을 못견디겠더라. 그런데 이제는 ‘열심히 했잖아, 견딜 수 있어’ 이런 마음가짐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주변에서 ‘왜 이렇게 짜증을 부리니, 왜 이렇게 화가 났니’ 하더라.(웃음)” 

-연기도 연기지만 매 작품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든다. 배우로서 굉장히 큰 강점 아닌가. 

“외모가 장점이 된지 얼마 안 됐다.(웃음) 애매하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차라리 살을 찌우라는 소리도 하더라. 그래야 캐릭터가 생긴다고. 뭔가 탁 짚을 만한 게 없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이제 시대가 정말 다양한 여성을 원하고 있고 그리고 있으니까 내가 쓰임을 받는 것 같다. 옛날 같았으면 내가 변호사를 할 수 있었을까 싶다. 우리가 생각하는 변호사의 이미지가 있잖나. 나조차 생각했던 이미지를 깨는 경험을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시미덕희’ 관람 포인트를 꼽자면.  

“서로 공감하고 위로를 주는 게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용기가 필요할 때가 얼마나 많나. 그럴 때 조금이라도 이 영화가 힘이 되고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 무겁게 진지하게 푸는 게 아니고 좌충우돌하기도 하고 하면서 유쾌하게 풀어나가니까 접근성도 좋을 거다. 쉽게 오셔서 올 한해를 살아가는 용기를 얻고 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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