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라미란이 영화 ‘시민덕희’로 돌아왔다. / 쇼박스
배우 라미란이 영화 ‘시민덕희’로 돌아왔다. / 쇼박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라미란이 영화 ‘시민덕희’(감독 박영주)로 관객 앞에 선다. 전 재산을 잃게 된 절망 속에서도 자신의 상황을 능동적으로 헤쳐가려는 덕희로 분해 주연배우로서 제 몫을 다한 그는 “나밖에 없었다”며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으로 ‘시민덕희’를 향한 자신감과 애정을 드러냈다. 

라미란이 열연한 ‘시민덕희’는 보이스피싱을 당한 평범한 시민 덕희(라미란 분)에게 사기 친 조직원 재민(공명 분)의 구조 요청이 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 초청되며 실력을 인정받은 신예 박영주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으로, 동네 세탁소를 운영하던 평범한 중년 여성이 보이스피싱 총책을 잡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가슴 저린 모성애부터 코믹 연기까지,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으로 관객을 매료해 온 라미란은 전화 한 통에 전 재산을 잃은 평범한 시민 덕희를 현실감 넘치는 인물로 빚어내 공감대를 자극하는 것은 물론, 특유의 유쾌한 매력과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을 보여주며 또 한 번 자신의 진가를 입증한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라미란은 작품을 택한 이유부터 캐릭터 구축 과정, 촬영 비하인드 등 ‘시민덕희’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쉼 없는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그는 “할 수 있을 때 열심히 해야 한다”면서 더 다채롭게 채워질 앞날을 예고하기도 했다.

-신인 감독과의 작업이었다. 어떤 점에 끌려 작품을 택했나. 

“시나리오가 재밌었고 덕희라는 인물이 용감해 보였다. 존경스럽고. 또 실화라고 하니까 그 인물을 하고 싶었다. 박영주 감독님을 처음 봤을 때 학생 같았다. 소녀 같고 그랬는데 감독의 전작을 너무 재밌게 봤고 믿고 갈 수 있겠다 싶었다. 현장에서도 의외의 카리스마가 있었다. 조곤조곤 원하는 것을 다 이야기하더라. 첫 상업영화 연출이고 나이도 젊고 해서 현장에서 위축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전혀 그런 게 없더라. 잘만 따라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라미란표’ 영화였다. 스스로도 잘 해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나. 

“다른 사람을 (덕희 역에) 세워봤더니 별로 어울리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하는 게 제일 낫겠다고 생각했다.(웃음)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지점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이름이 촌스러워서 그런가.(웃음) 의심은 없었다. 어떤 역할은 부담이 되는 경우도 있거든. 어떻게 보면 비슷한 역할이라고 느낄 수 있는데, 내게 나오는 이미지나 느낌이 이런 인물에 가장 근접하기 때문인 것 같다. 변신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덕희 그 자체로 분한 라미란. / 쇼박스
덕희 그 자체로 분한 라미란. / 쇼박스

-어떤 점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했나. 

“덕희라는 인물 자체가 평범하고 이웃에 있을법한 인물이잖나. 그런 면에서 가장 비슷하지 않나 생각했다. 관객도 그렇게 생각해 주시는 것 같다. 평범함의 대명사처럼.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연기했다. 어떻게 접근했나. 

“자료조사는 박영주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쓸 때 많이 했다. 극 중에서 덕희가 많은 피해자들을 만나잖나. 그러면서 들었던 것도 있고 주변에도 피해자가 많더라. ‘시민덕희’ 이야기를 하니 나도 경험이 있었다면서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 너무 무섭게 진화하고 있고 정말 모르고 당하겠구나 생각이 들더라. 자료를 찾아보고 경험담을 듣긴 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덕희 입장에서 생각하는 거였다. 실제 사건은 모티프만 갖고 온 거라서 이것은 그냥 ‘덕희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덕희라는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면 됐고 오롯이 느끼면 되는 거라 좋았다. 든든한 친구들도 있었고 실화라 더 힘이 났다.”

-덕희는 어떤 인물이었나. 

“추진력이 있고 용감하기도 하고 무대포기도 하고. 그런데 영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본인의 억울함이나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한 일이다. 시민의식이나 그런 것보다 지극히 개인적이라고 봤다. 공적인 뭔가를 하는 게 아니잖나.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시민덕희’라고 하지만 거창한 의미나 메시지를 주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한 개인의 홀로서기 같은 느낌, 덕희의 성장, 자존감을 일으키는 지점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라미란이 캐릭터 구축 과정을 전했다. / 쇼박스
라미란이 캐릭터 구축 과정을 전했다. / 쇼박스

-실화를 모티프로 한 작품이기 때문에 표현의 수위에 대한 고민도 했을 것 같은데. 

“보통 이런 영화라고 하면 시원한 액션이 있잖나. 그런데 실화다보니까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래서 덕희가 직접 총책을 잡으러 가는 것도 친구들의 도움이 없이는 힘들다고 생각했다. 실화에서는 제보를 전달하는데 영화처럼 직접 가는 것은 다르기 때문에 그럴싸하게, 그럴 법하게 공감이 기본적으로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액션도 그랬다. 진짜처럼 보이고 싶어서 너무 과하지 않게 내가 할 수 있는 정도를 했다.”

-실제 덕희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제보를 받았다고 해도 아마 경찰한테 알려주는 정도였을 거다. 그 이후까지는 못 갔을 것 같다. 덕희처럼 매달릴 수는 없었을 것 같다. 다만 내 인생에 막다른 길에 가게 된다면 앞으로 나아갈 거다. 제 인생에 어려운 상황이 온다면 덕희처럼은 못하더라도 앞으로는 나아갈 것 같다.” 

-염혜란, 장윤주, 안은진 등 ‘덕벤져스’와의 호흡은 어땠나. 

“말해 뭐하겠나. 정말 잘 맞았고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재미없을 수가 없었다. 네 명이 계속 노래 부르고 화음 쌓고 끊임없이 그렇게 있었다. 염혜란은 동생이지만 친구 같다. 언젠가는 ‘쌍란’으로 뭔가 해야 할 것 같다. 성격이 비슷하다. 수줍음도 많고 낯도 가리고 어디 가서 말도 못하고 부끄러워한다. 연기할 때만 그렇게 거침없다. 장윤주는 텐션이 높으면서도 나른하잖나. 되게 빨리 피곤해하고 그래서 원래 성격인가 했는데 갑상선저하증이 있는 걸 시사회 때 알았다. 괜히 미안하더라. 너무 불러냈나 싶고. 장윤주도 텐션이 높은데 안은진이 더 높다. 안은진은 스스로 막내를 자처하면서 늘 사랑을 갈구했다.(웃음) 편안하고 즐거웠다.”

-앞서 연기 변신을 언급하기도 했는데 필모그래피를 쌓아가는 데 있어 어떤 고민을 하고 있고 어떻게 균형을 맞추고자 하나. 

“캐릭터가 바뀌지 않으면 시대라도 바뀌어야 한다. 사극이든 뭐든. 뭐라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늘 똑같은 배역을 하고 싶어 하는 배우는 많지 않을 거다. 주변 사람들도 그렇잖나. 항상 더 새로워지려고 노력할 거다. 계속 비슷한 역을 하면 하는 사람도 재미가 없고 보는 사람도 그렇다. 뭔가 다른 걸 하고 낯선 걸 할 때 재미를 느끼고 이 일을 오래 하고 싶으니까 많이 가리는 편이다. 잘 안돼서 그렇지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고 있다.(웃음)”

-쉼 없이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지치진 않나. 

“드라마든 영화든 텀 없이 계속 나오고 있는 것 같아 (보는 분들이) 피로도가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한다. 그런데 멈출 수가 없다. 언제 일이 끊길 줄 모르기 때문에 그냥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런데 또 (염)혜란이 같은 애들이 치고 오잖나.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지고 어차피 조금 있으면 쉬게 돼 있다.(웃음) 할 수 있을 때 열심히 하자는 마음이다.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 하하. 되게 재밌다. 하는 역할이 다 달라서 재밌고 만나는 사람들도 늘 다르다. 배우 일을 하면서 가장 좋은 게 그거다. 질릴 틈이 없다는 것. 예를 들어 비슷한 역할을 맡아도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은 바뀐다. 또 다르게 비칠 수 있고 똑같이 할 수도 없다. 똑같이 하기도 힘들고. 그래서 늘 새로운 삶을 사는 이 일이 재밌다. 오히려 쉴 때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유를 조금 챙겨야겠다는 생각은 한다.”

-끝으로 ‘시민덕희’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나’를 일으켜주는 작품이다. 같이 일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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