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최성은은 영화 ‘시동’(2019)에서 가출소녀 소경주 역을 맡아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주며 데뷔와 동시에 주목을 받았다. 이후 드라마 ‘괴물’, 넷플릭스 시리즈 ‘안나라수마나라’, 영화 ‘십개월의 미래’ ‘젠틀맨’ 등 다양한 작품을 소화하며 차근차근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감독 김희진)에서는 한층 깊어진 연기력과 캐릭터 소화력으로 또 한 번 남다른 존재감을 발휘한다. ‘로기완’은 삶의 마지막 희망을 안고 벨기에에 도착한 탈북자 기완(송중기 분)과 삶의 이유를 잃어버린 여자 마리(최성은 분)의 만남과 헤어짐,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극 중 삶의 이유를 잃어버린 마리를 연기한 최성은은 강렬한 눈빛 연기부터 감당하기 힘든 슬픔과 분노, 기완을 만난 뒤의 변화까지 다양한 감정의 굴곡을 섬세하게 담아내며 제 몫을 해낸다. 함께 호흡을 맞춘 송중기와 김희진 감독 역시 “최성은은 ‘마리’ 그 자체였다”고 극찬했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최성은은 “소통의 중요성을 유독 더 느끼게 했다”며 ‘로기완’ 현장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앞으로 조금 더 만드는 재미를 느끼면서 계속해서 연기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김희진 감독이 오디션 현장에서 보자마자 확신했다고 했다. 어떤 준비를 해갔나. 본인도 마리에 대한 확신이 있었나. 

“오디션 때는 대본이 다 나와 있지 않았다. 어떤 캐릭터인지 큰 그림을 볼 수 없었고 오디션 막바지에 대본을 받았다. 내가 생각한 것 안에서 최대로 준비했다. 내가 생각하는 마리는 이런 옷을 입을 것 같고 이런 분위기를 풍길 것 같고 그런 생각 안에서 준비를 했다.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고 어려울 것 같았다. 합격 소식을 듣고 기분이 좋았지만 ‘어떡하지’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이 인물을 표현해야 할지 어렵다고 느꼈다. 불어도 해야 하고 멜로도 처음이고 베드신도 있었고. 여러 부분에서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김희진 감독은 어떤 이야기를 해줬나.

“오디션 현장에서는 별말 하지 않았고 다른 언어로 연기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는지, 다르게 표현해 볼 수 있는지 정도 물어봤다. 감독님이 말이 많은 편이 아니라 처음에는 그 정도 대화만 했다. 그러다 작업하기 전에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감독님이 이야기를 되게 잘 들어준다. 열려있다고 해야 하나. 수용적이다. 감독님과 만나서 전체적으로 (시나리오를) 다 읽어보기도 하고 시간을 많이 가졌다. 내가 편하게 느끼는 사람이기도 했고 나 역시 (감독에게)힘이 돼주고 싶었다.”

-마리의 현재를 이해하기 위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평도 있다. 어떤 전사를 가진 인물이었나.

“관계에 얽힌 전사일 텐데 원래 시나리오 안에서는 단계가 있긴 했다. 시릴과의 관계도 아빠와의 관계도. 시릴이 잘못된 방식으로 마리를 좋아하고 오랫동안 친구 사이였고 관계성을 나타내는 장면들이 있었다. 마리가 왜 시릴을 벗어나지 못하고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아빠와의 관계도 갑작스럽게 화해하는 게 아니냐는 반응도 있는데 그것도 여러 이유로 인해 덜어졌다. 시나리오 안에서는 그런 고리들이 있었고 나 역시 충분히 생각했지만 완성된 영화를 본 시청자들은 그렇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희진 감독이 수용적이라고 했는데 배우의 어떤 의견이 더해졌나.

“이런 느낌의 마리를 떠올렸다면서 사진을 보냈는데 그게 (의상, 분장)선생님들이 생각한 것과 잘 맞아서 그 지점에 대해서는 전혀 이견이 없었다. 감독님과도 마리에 대해 이야기할 때 생각이 크게 다른 건 없었다. 이해가 안 되는 지점이라든지, 왜 이런 선택을 하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촬영하면서도 장면 하나하나를 놓고 이야기를 많이 했다. 더 이야기가 필요한 장면은 후반부에 찍는다든지 그런 경우도 있었는데 그때 감독님의 의견, (송)중기 선배의 의견, 나의 의견, 제작사 대표님의 의견을 다 듣고 조율해서 다시 찍게 된 신들도 있었다. 소통을 많이 한 현장이었다.”

-기완을 향한 마리의 감정은 어떻게 해석하고 접근했나. 단순한 로맨스와는 또 다른 깊이와 결이었을 것 같은데.

“마리는 오랫동안 벨기에에서 이방인의 마음으로 살았을 거다. 어렸을 때 와서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오랫동안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고 형제도 없고 친구 사귀는 것도 힘들었을 거다. 그런 마리에게 사격은 큰 힘이 됐을 거다. 그런 시기를 거치다 어머니가 죽게 되고 스스로 솔직하지 못했던 마음을 아빠에게 돌리면서 자신이 누구보다 싫었을 거다. 그런 와중에 기완을 만나면서 큰 동질감, 비슷한 마음을 느꼈을 거다. 타인을 통해 마치 거울처럼 스스로를 봤을 것 같다. 마리는 사람에 대한 믿음, 뿌리 깊게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게 자랐는데 내가 나를 믿는 것보다 나를 더 믿어주는 사람을 만난 거다. 그 누구보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을 만나 큰 안정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송중기와의 호흡은 어땠나.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리허설도 많이 하고 식사를 하면서도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저렇게 해보면 어떨까 의견을 내고 또 다시 리허설을 하고 그런 순간들이 많았다. 나는 그냥 밥 먹으러 가려고 했는데(웃음). 집요함이 느껴졌다.”

-송중기도 본인을 두고 똑같이 ‘집요하다’고 표현하더라.

“하하. 약간 다른 종류의 집요함 같다. 중기 선배는 조금 더 넓은 의미의 집요함이다. 전체를 볼 줄 알면서도 자기 역할을 고집할 줄 안다. 그 밑에는 지금까지 쌓아온 시간, 엄청난 무언가가 한몫할 거다. 선배의 기질도 있을 것이고, 단단한 확신이 기반돼 있는 느낌이면 나는 나 자신과 싸우는 집념이다. 그게 마냥 좋은 건가 생각도 든다. 그 뿌리를 살펴보면 나의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다. 범위 자체가 너무 좁아져 있고 그걸 넓혀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좋은 점이기도 하지만 꼭 고수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칭찬이고 좋은 의미인 것은 알지만 개인적으로는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데뷔작 ‘시동’ 인터뷰 때 ‘행복한 연기를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잘 지켜오고 있나.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것에 대한 필요성과 그것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조금씩 하고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 최성은이 금이 가면서 말랑말랑해지는 부분이 나올 때까지 나 자신에 대한 고민을 더 해야할 것 같다. 그래야 연기를 할 때도 자연스럽게 변하지 않을까 싶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행복하게 연기하기 위해 조금씩은 나아가고 있다.” 

-‘로기완’을 통해서는 무엇을 얻고 배웠나. 

“작품이 끝나면 소통의 지점에서 제일 많이 배우는 것 같은데 유독 ‘로기완’에서 더 많이 느끼고 배웠다. 점점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감독님과 이야기하는 걸 너무 힘들어했다. 선배가 ‘이렇게 한 번 해보는 건 어때?’라고 하는 것도 ‘내가 잘못하고 있나?’하며 크게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런데 점점 상대 배우, 감독님, 스태프를 대하는 것에 있어 조금의 유연함과 여유가 생긴 것 같다. 또 그게 필요하다는 걸 많이 느꼈다. 소통이 전부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로기완’ 끝나고 유독 더 많이 느꼈다.”

-데뷔 후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오고 있다. 돌아보면 어떤가. 앞으로 계획도 궁금하다. 

“작품을 많이 했다기보다 하나하나씩 해온 것 같다. 작품이 잘 되든 안되든 감사하게도 좋은 사람들과 좋은 배움을 얻으면서 촬영했다. 앞으로 내가 바라는 것은 재밌는 환경에서 조금 더 만드는 재미를 느끼면서 계속하고 싶다는 거다. 이제는 밝은 역할이나 작품도 해보고 싶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