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감독이 넷플릭스 시리즈 ‘닭강정’로 돌아왔다. / 넷플릭스
이병헌 감독이 넷플릭스 시리즈 ‘닭강정’로 돌아왔다. / 넷플릭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넷플릭스 시리즈 ‘닭강정’은 의문의 기계에 들어갔다가 닭강정으로 변한 딸 민아(김유정 분)를 되돌리기 위한 아빠 선만(류승룡 분)과 그녀를 짝사랑하는 백중(안재홍 분)의 신계(鷄)념 코믹 미스터리 추적극​이다. ‘사람이 닭강정이 된다’는 기발한 소재, 허를 찌르는 유머와 스릴러의 균형 있는 조화로 많은 사랑을 받은 동명의 인기 웹툰이 원작이다.  

메가폰은 1,6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역대 한국 영화 흥행 2위를 달성한 영화 ‘극한직업’(2019)을 비롯해, 수작으로 평가받는 드라마 ‘멜로가 체질’(2019)까지 리드미컬하고 위트 넘치는 ‘말맛’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이병헌 감독이 잡았다.

이병헌 감독은 독특한 설정과 예측 불가한 유머 코드 등 원작의 매력을 고스란히 살리는 것은 물론, 감독 특유의 스타일을 더해 시리즈만의 새로운 재미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이끌어냈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이병헌 감독은 연출을 결심한 이유부터 각색 과정, 캐스팅 비하인드 등 ‘닭강정’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이제는 ‘코미디 장인’으로 거듭난 그는 “꼭 필요한 대사, 장면인가 스스로 항상 되묻는다”며 연출 철학을 밝히기도 했다. 

이병헌표 독특한 코미디 ‘닭강정’. / 넷플릭스
이병헌표 독특한 코미디 ‘닭강정’. / 넷플릭스

-공개 소감은. 주변 반응은 어떤가.

“호불호가 갈리고 있는데 좋아하는 이유는 각자 다른데 싫어하는 이유는 다 비슷한 것 같다. 기획 단계부터 어느 정도 예상하고 시작한 작품이라 재밌게 댓글, 리뷰를 감상하고 있다. 좋은 반응도 많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내 작품을 그렇게 깊게 분석하고 그런 적은 별로 없었는데 이번에는 어떤 재미를 느꼈는지 깊게 분석해 준 분들도 있었다. 감사하고 기운도 나고 그렇다.”

-‘극한직업’에 이어 또 한 번 ‘닭’이 중요한 소재였다. 원작의 어떤 점에 끌려 연출을 결심했나. 

“‘닭’에 대한 애착은 없다.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거다. 재밌는 소재를 찾아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웹툰을 접하게 됐고 제작사에서 ‘닭강정’을 보여줬다. 그때는 드라마화하고 싶다고 보여준 건 아니다. 내가 정말 재밌어할 것 같다고 그냥 보라고 보여줬다. 나를 상대로 낚시한 것 같기도 하고.(웃음) 닭에 대한 이미지가 내 안에 나도 모르게 있었나, 마음에 들었다. 그림체도 좋았고. ‘뭔가 이상하다, 이게 뭘까, 말이 안 되는데’ 하면서 다음 화를 넘기고 있더라. 알면 알수록 더 재밌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새로운 도전이기도 했다. 어떤 점이 가장 큰 도전으로 다가왔나. 

“전체적인 톤, 무드 자체가 새로웠다. 전작에서 현실감 있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연출했다면 이번에는 만화적으로 그려 넣었다고 해야 할까. 내 입장에서는 처음 해보는 연출이었다. 미장센도 그렇고 연기도 그렇고 만화적이고 연극적이고. 어떻게 보면 이질감이 드는 소재 자체에 대한 어색함이 오히려 그런 것들로 메워지지 않을까라는 계산했던 것 같다.”

-결말은 원작과 달랐다. 각색 기준은. 

“웹툰을 처음 봤을 때 완결이 안 된 상태였다. 결말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처음 접근했을 때는 ‘편견’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외모나 이런 것에 대해. 외계인이 등장하면서부터 여기서 끝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제가 확장되는 게 큰 재미로 느껴졌다. ‘이런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넓어지는구나’ 그런 재미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야기답게 만들어야 하고 처음 생각했던 형태에서 보충하며 중반부터 내가 이야기를 만들어 가야 했기 때문에 대본을 쓰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분량으로 따지면 크지 않은데도 시간이 되게 오래 걸렸다. 그러다 보니 엔딩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따라간 것 같다.”

코믹 열연을 보여준 안재홍(왼쪽)과 류승룡. / 넷플릭스
코믹 열연을 보여준 안재홍(왼쪽)과 류승룡. / 넷플릭스

-작정한 코미디였다. 연출하면서 견제한 지점이나 중요하게 생각한 게 있다면. 

“스스로 견제한 게 있다면 이 신이 필요한지 스스로 되물었을 때 필요 없는 걸 자꾸 하는 것에 대한 정도다. 가볍게 코미디로 접근하고 보면 말장난 같지만 사실 내 안에서는 그렇지 않은 장면, 대사들이다. 연출자로서 고민하는 건 그런 거다. 이 신이 필요한지, 그런 고민은 분명히 하고 있는 것 같다.”  

-류승룡, 안재홍의 코믹 열연도 인상적이었다. 두 배우를 내세운 이유는.  

“2명이지만 어벤져스 같은 느낌이 드는 게 각자의 코미디 연기를 굉장히 잘하는 분들이다. 색깔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 두 사람을 모아놨을 때 작가이자 감독으로서 뿌듯함이 있었다. 대단한 팀을 만들었다는 감격도 있었고. 각자 다른 작품에서 작업을 해봤기 때문에 ‘닭강정’에서 어떻게 연기할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현장에서 어떻게 할지 너무 잘 아니까. 어떻게 하다 보니 싱크로율까지 맞아서 이 두 사람을 캐스팅할 수 있다면 나도 현장에서 편할 수 있겠다, 익숙하게 잘 아는 것을 활용해 내가 조금 편해 보자는 생각도 있었다. 실제로도 너무 편했다.” 

-리듬감 있는, 독특한 대사 톤이 감독 작품의 특징 중 하나다. 이번 작품에서는 유독 더 강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톤을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도 내가 어떻게 하다가 그렇게 된지 모르겠다. 스스로 그게 재밌다고 느끼나 보다. 모든 신에서 그렇진 않은데 기본적인 바탕은 내가 그런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불필요한 대사가 많지 않고 길게 하는 것뿐인데 이걸 또 천천히 하면 맛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대사 한 줄을 읽어도 어떤 리듬을 타고 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무작정 따발총처럼 내뱉는 게 아니라 어떤 호흡에서는 쉬어주길 배우에게 요구하기도 하고 리듬이 맞지 않으면 여기서는 호흡을 쉬어달라고, 여기는 속도가 빠를 필요가 없다고 배우에게 설명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다.”

이병헌 감독과 재회한 류승룡. / 넷플릭스
이병헌 감독과 재회한 류승룡. / 넷플릭스

-연기하는 배우 입장에서는 결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럼에도 훌륭히 소화했다.

“배우들과 길게 리딩하거나 그러지 않고 ‘우리 작품이 이랬으면 좋겠다, 만화적이고 연극적이고 뮤지컬이라고 생각해도 좋고 그런 톤이 어울리는 것 같다’ 정도만 말을 했다. 배우들이 얼마나 똑똑한 분들이냐면 1회에 잔뜩 톤을 올려서 연기를 하고 아주 만화적으로 대사뿐 아니라 제스쳐까지 하고 나서 서서히 조금씩 톤을 낮췄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 선에서 스며들었을 때 자연스럽게 끝까지 갈 수 있는 계산을 한 것 같더라. 시간 순서대로 찍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현장에서 연기하는 걸 보면서 정말 엄청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의미로 현장에서 의견이 없었다. 하는 걸 보고 나서 큰 대화를 나눈 게 없다.”

-감독의 전작인 ‘멜로가 체질’을 활용한 장면들도 인상적이었다.

“코미디적인 장치라고 생각하고 사용했다. 앞으로는 안 그럴 것 같은데 ‘멜로가 체질’에 대한 애정이 크다. 물론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지만 본방송할 때 아쉬움이 있잖나. 내가 너무 좋아하는 작품인데 처음에는 왜 이렇게밖에 사랑받지 못했을까 하는, 아픈 손가락 같은 마음이 있어서 더 활용한 것 같다. 지금은 넷플릭스를 통해 많이 봐주시더라. 마지막 애정의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촬영이나 장면을 꼽자면.  

“머릿속으로 생각했을 때 재밌었는데 막상 하니 ‘현타’가 온 것은 미사일 핵 장면이다. 후반 작업하면서도 어떡하지 싶더라. 이것도 되게 호불호가 갈리겠다 싶었다. 그런데 나처럼 재밌어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배우들이 진지하게 잘해줬다. 준비하는 과정부터 진지하게 연습도 많이 하고.”

안재홍이 또 하나의 매력적인 캐릭터를 완성했다. / 넷플릭스
안재홍이 또 하나의 매력적인 캐릭터를 완성했다. / 넷플릭스

-고백중의 노래들도 재미를 더했다. 어떻게 만들어졌나. 

“원작에 있는 설정의 곡들과 ‘닭강정 랩소디’처럼 이야기가 새롭게 만들어지면서 필요한 음악이 있었다. 음악감독과 회의하면서 만들었다. 음악감독도 고생을 참 많이 했다. 활자로 있는 것을 만들어야 하니까. 처음 설정은 고백중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 진지한 꿈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 설정을 채워 넣다 보니 ‘닭강정 랩소디’ 같은 진지한 곡도 필요했다. 원작에 드러난 콘셉트의 음악은 다 만든 것 같다.”  

 -정호연이 등장하는 장면도 화제가 됐다. 캐스팅 과정이 궁금하다. 

“‘오징어 게임’ 전부터 친분이 있었다. 한창 ‘오징어 게임’ 잘되고 있을 때 ‘닭강정’이라는 재밌는 기획을 하고 있다는 걸 정호연이 듣고 본인이 먼저 관심을 보여줬다. 너무 재밌을 것 같다고 하기에 그렇다면 특별출연을 하자고 제안했다. 정호연도 그 정도로 대사가 길고 그럴지 몰랐을 거다. ‘오징어 게임’ 이후 노출된 한국작품이 없기 때문에 개인적인 부담도 있었을 건데 준비를 너무 잘해와서 대사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어떤 디렉션을 받아도 줄줄 하더라. 류승룡 선배도 엄청 칭찬했다. 안재홍과 ‘티키타카’를 하는데 내가 쓴 대사지만 나 역시 온전히 관객이 된 것처럼 재밌게 관람했다. 정호연한테 정말 깜짝 놀랐다.”

짧지만 강한 임팩트를 남긴 정호연(왼쪽)과 개성 넘치는 연기를 보여준 (오른쪽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태훈 황미영 정순원 이하늬,  정승길(오른쪽 아래). / 넷플릭스
짧지만 강한 임팩트를 남긴 정호연(왼쪽)과 개성 넘치는 연기를 보여준 (오른쪽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태훈 황미영 정순원 이하늬,  정승길(오른쪽 아래). / 넷플릭스

-‘이병헌 사단’이라고 불리는 배우들도 대거 출연했다. 캐스팅 기준은 무엇인가. 

“측근에 있는 사람을 우선에 두진 않고 리스트 먼저 뽑아서 어떤 사람이 어울릴까 고민하고 잘 어울리겠다 싶어 던지는데 던질 때마다 이상하게 시간이 된다. 안 됐던 적이 없다.(웃음) 친분으로 선택한 적은 별로 없었다. 코미디적인 퍼포먼스라고 생각했을 때 카메오 같지 않으면서 의미 있고 비중 있고 임팩트 있게 등장하고 빠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배우들 하나하나 떠올리는 편이다. 본능적으로 이 사람이 어울리겠다고 생각해서 연락한 분도 있고. 캐스팅 과정도 그런 게 재밌다.”

-그중에서도 정승길의 호연이 돋보였다. 감독에게 정승길은 어떤 강점이 있는 배우인가.

“가진 능력치에 비해 아직은 소비가 덜 된 배우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대중에게 소개하는 게 내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승길이) 되게 진중한데 그 안에서도 되게 재밌다. 리얼 톤의 연기를 되게 좋아하는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 강점도 있고 그냥 단순히 말하자면 연기를 정말 잘한다. 아직도 현장에서 대사 토씨 하나 틀려본 적 없는 분이다. 배우로서의 태도도 너무 좋은 분이다.”

독창적인 스타일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병헌 감독. / 넷플릭스
독창적인 스타일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병헌 감독. / 넷플릭스

-이병헌식 코미디에 대한 익숙함, 이로 인한 호불호에 대한 고민도 있나.  

“지금 엄청나게 하고 있다. 아, 이제 읽혔구나, 재밌는 작품을 하면서 내 이름이 걸림돌이 되는구나. 작품을 너무 많이 했나 싶기도 하다. 1년에 한 번씩 하니까 너무 빨리 들켰다 싶은 생각도 들고 다방면으로 고민하고 있는데 그래도 나를 좋아해 주는 분들을 보며 일을 하고 있다. 큰 변화라기보다 다음 작품이 그런 톤은 아니라서 작가로서 재정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코미디는 내가 정말 좋아한다. 이제는 해외 시청자, 해외 관객도 고민해야 하는 상대라고 생각한다. 전작들도 해외 관객이 많이 봤다. 코미디는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른 사람에게 어필하기 가장 어려운 장르잖나. 코미디는 하고 싶고 많은 사람에게 어필하고 싶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닭강정’이라는 소재를 택하면서도 생각했다. 이런 장르라면 해외 관객이 어떻게 반응할까. 이런 데이터가 계속 쌓이면 나뿐만 아니라 이 장르를 좋아하는 창작자에게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글로벌 시청자를 저격하기 위해 고민한 지점도 있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나서 이것이 어떻게 관객에게 반응을 얻을지 생각하는 것이지 그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따로 한 것은 없다. 한국인으로서 한국 안에서 한국인의 정서로 만든 코미디가 어떻게 어필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했다.”

-앞서 제작발표회에서 의미 있는 이야기가 될 것 같아 연출을 결심했다고 했다. 어떤 의미,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대사로 다 쓴 것 같다. 백정의 대사 중에도 있었고 내가 바라는 방향이기도 하고. 살면서 전쟁을 너무 많이 한 것 같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 왜 이렇게 싸웠지, 좋은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원작을 보면서 했다. 원작에 대한 존경도 있었고 그래서 초반에는 원작 대사를 많이 가져왔다. 중반 이후부터는 이야기가 필요한 부분이 있어서 내가 썼다.

-작품을 관통하는 대사를 꼽자면. 

”‘인간은 배려를 바탕으로 진화한다’는 대사다.  ‘인간은 배려를 바탕으로 진화했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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