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기판’, 차세대 AI반도체 핵심 기술로 급부상
인텔, 2030년까지 상용화 목표… 韓삼성·SKC도 개발 박차

고성능 인공지능(AI)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반도체 기술력 확보도 중요해지고 있다. 이때 기존 실리콘 기판 반도체의 성능을 뛰어넘을 반도체로 ‘유리 기판(Glass substrate)’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고성능 인공지능(AI)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반도체 기술력 확보도 중요해지고 있다. 이때 기존 실리콘 기판 반도체의 성능을 뛰어넘을 반도체로 ‘유리 기판(Glass substrate)’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반도체는 ‘인공지능(AI)’의 두뇌다. AI알고리즘의 작동, 데이터 처리 및 연산 등 모든 작업은 반도체를 통해 이뤄진다. 특히 사회 전반의 혁신을 가져오고 있는 ‘생성형 AI’의 성능은 반도체 기술력과 직결된다. 최근 AI기업들이 ‘유리 기판’ 기술에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유리 기판 반도체가 미래 AI산업 발전의 게임체인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 차세대 반도체 기술 ‘유리 기판’… 생성형 AI시대 ‘게임체인저’ 주목 

현재 반도체 기판 제작에는 실리콘이 가장 많이 사용된다. 내구성이 우수할 뿐만 아니라 전기 전도성 조절이 쉬워 전자 제어 성능이 뛰어나다. 하지만 고전압 환경과 150℃ 이상 고온에서 효율이 급감한다는 단점이 있다. 때문에 성능 향상에도 한계가 있다. 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실리콘 패키지 반도체 기술 확장은 2030년 한계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실리콘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기술이 ‘유리 기판(Glass substrate)’이다. 이름 그대로 유리를 소재로 한 반도체 패키지 기판을 의미한다. 유리는 높은 전기 절연성과 열 안전성, 우수한 평탄도 등 특성을 갖는 재료다. 때문에 반도체 기판으로 사용할 시 성능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 전력소모량의 경우 기존 반도체 대비 30% 이상 절감 가능하다.

아쉽게도 아직까지 유리 기판 반도체의 상용화는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제조 수율을 높이기 어려워 판매 단가가 너무 높아서다. 기판 제작에 사용되는 유리는 열과 전기엔 강하다. 하지만 유리의 특성상 외부의 강한 충격이나 압력에 취약하다. 제조 시 파손돼 버려지는 자원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반도체 업계에선 생성형 AI산업이 커질수록 유리 기판 산업 규모도 함께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글로벌시장조사업체 ‘마켓앤마켓(Markets and markets)’에 따르면 반도체 유리 기판 산업 규모는 2028년 84억달러(약 11조1,711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유리 기판이 생성형 AI산업의 게임체인저로 떠오르는 이유는 초미세 회로 제작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초거대 AI를 기반으로 구동되는 생성형 AI는 고성능 반도체 자원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실제로 대화형 AI서비스 ‘챗GPT’의 구동에는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가 1만개 정도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유리 기판 반도체는 유기 소재보다 더 딱딱해서 세밀한 회로 형성이 가능하다. 또한 초거대 AI를 구동할 시 발생하는 열에도 저항력이 뛰어나다. 훨씬 더 얇은 회로를 기판에 새기더라도 열로 인한 휘어짐, 변형 등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의미다. 즉, 제조 수율만 높일 수 있다면 실리콘 기판 반도체 성능을 크게 뛰어넘는 초고밀도 통합 회로 AI반도체 개발이 가능하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생성형 AI는 대량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처리하는 데 상당한 컴퓨팅 파워를 필요로 한다”며 “이를 위해 고성능의 반도체 칩이 필요하고 이러한 칩들은 고품질의 유리 기판 위에 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창민 KB리서치 연구원은 “기존 오버 스펙으로 분류됐던 유리 기판이 주목받는 것은 AI의 급격한 확산 때문”이라며 “이르면 2026년부터 인텔, 엔비디아, AMD 등 고성능 컴퓨팅(HPC) 업체들은 AI데이터 처리량의 기하급수적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유리 기판 채용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고 예상했다.

2023년 7월 인텔이 개발한 유리 기판 테스트칩의 모습./ Intel

◇ 앞서가는 인텔, 바짝 좇는 한국 기업

유리 기판 반도체 시장의 아직 리드 기업은 없다. 이에 국내외 반도체 업계선 선점을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현재 앞서가는 기업은 미국의 ‘인텔(Intel)’이다. 인텔은 지난 2013년부터 10년 간 반도체 유리 기판 기술을 개발해왔다. 이를 위해 10억달러(약 1조 3,295억원) 이상을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에 연구개발(R&D)라인도 구축했다.

막대한 투자 결과, 인텔은 차세대 기술 개발에 성공, 지난해 9월 신형 반도체 유리 기판을 공개했다. 인텔에 따르면 이 유리 기판은 우수한 고온 내구성을 가지고 있고 패턴 왜곡 발생률은 기존 실리콘 반도체 대비 50% 줄었다. 또한 유리 기판 내 회로 밀도를 10배 이상 높일 수 있다. 인텔은 이 유리 기판을 2030년 출시한다는 목표다.

인텔은 “유리는 실리콘, 유기 기판에 비해 매우 낮은 평탄도, 우수한 열적·기계적 안정성을 가지고 있어 AI와 같은 데이터 집약적 작업에 필요한 고성능 반도체 패키지 제작에 효과적”이라며 “인텔은 2025년과 2030년 사이에 완전한 유리 기판 솔루션을 시장에 선보일 계획이며 이를 통해 2030년 이후에도 무어의 법칙을 이어가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이 같은 시장 흐름에 맞춰 국내 기업들도 관련 기술력 확보에 속도를 높이는 중이다. 그 중심에는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디스플레이를 필두로 한 삼성그룹 전자계열사들이 있다. 14일 KB증권에 따르면 삼성그룹 전자계열 3사는 유리 기판 상용화를 위해 연합 전선을 구축하고 공동 연구개발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주축이 될 것으로 보이는 계열사는 ‘삼성전기’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기는 유리 기판의 연구개발 및 양산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는 반도체와 유리 기판의 결합, 유리 공정 관련 역할을 맡게 될 전망이다.

실제로 삼성전기는 지난 1월 개최된 세계 IT·가전박람회 ‘CES 2024’에서 유리 기판 사업 추진을 발표한 바 있다. 1월 10일 행사 간담회 현장에서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은 “삼성전기는 해 세 차례의 샘플 제작에 성공해 유리 기판 기술 상용화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현재 세종 사업장에 시제품 상산라인을 구축하고 있으며 2026년 이후 양산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성그룹 전자계열사들과 함께 주목받는 기업은 ‘앱솔릭스’다. 앱솔릭스는 SK그룹 계열사인 ‘SKC’의 자회사다. 고성능 유리 기판 개발 등을 목표로 2021년 출범했다. 최근 미국 조자이주 애틀랜타에 유리 기판 공장을 완성하며 양산 체계 구축에 성공했다.

유리 기판 제조 및 검사 장비 기업들의 수혜도 예상된다. 업계에 따르면 ‘HB테크놀로지’는 SKC 앱솔릭스에 유리 기판 검사(AOI) 및 수리 장비를 납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필옵틱스’도 주목받는 기업 중 하나다. 필옵틱스는 유리 기판 절단 장비를 개발하는 업체다. 대표 제품으로는 레이저글라스관통전극(TGV)와 다이렉트이미징(DI) 노광기를 꼽을 수 있다. 각각 유리 기판에 초정밀 홀을 뚫고 미세회로 패턴을 형성하는데 사용되는 장비다.

이창민 KB리서치 연구원은 “유리 기판의 상용화가 전망됨에 따라 양산을 계획 중인 삼성전기와 앱솔릭스와 레이저 드릴링 장비 업체인 필옵틱스, 유리 기판 검사장비 공급이 예상되는 HB테크놀로지와 기가비스 등의 수혜가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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